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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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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호자 어디 계세요? 언제 오세요?"

2023-05-11 16:13

조회수 : 3,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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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살면 아플 때 가장 서럽다는데, 혼자 산 지 한두 해도 아니고 한두 번 아픈 것도 아니어서 서러움은 0g이었습니다. 병원에서 보호자를 애타게 찾기 전까지는요.
 
지난 8일 서울의 한 병원에서 어버이날을 맞아 카네이션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변소인 기자)
 
지난 황금연휴 남들은 오순도순 즐겁게 보냈을 테지만 저는 연휴내 침대와 한몸이 되어 지냈습니다. 비가 유난히 많이 내린 탓으로만 알았습니다. 날이 좋지 않으면 으레 몸이 처졌으니까요. 그렇게 몸이 주는 신호도 무시한 채 지내다 결국 응급실을 찾게 됐습니다.
 
링거 한 대 맞고 갈 요량으로 대기하는데 온갖 검사를 하더니 지금은 기억에도 잘 없지만 의사가 토끼눈을 하고 뛰어와서 무어라 설명을 한 뒤 이내 입고 왔던 잠옷은 벗겨지고 환자복으로 환복을 당해야 했습니다. 스스로 하겠다고 했더니 안 된다며 누워있으라 했고, 화장실을 가겠다고 했더니 걸을 생각 말라며 굴욕적인 처치를 시켰습니다. 전 분명 응급실을 걸어갔는데 말이죠.
 
입원이 결정되면서 보호자 타령이 시작됐습니다. 혼자 왔느냐, 보호자가 없느냐, 보호자 전화번호를 대야 한다. 처음에는 아버지 전화번호와 근처에 사는 친구 전화번호를 적었습니다. 응급실 내에서 자리가 옮겨지고 저를 처치하는 사람들이 바뀔 때마다 보호자 유무와 보호자 도착 시간을 물었습니다. 보호자를 여러 번 언급했던 것만은 꼭 기억이 납니다.
 
중환자실에 가서는 더 했습니다. 보호자가 대체 언제 오느냐고 안 오면 안 될 것처럼 계속 물었습니다. 이제는 보호자 없다고 대답하는 것도 지칠 지경이었습니다. 오밤중에 700리 남짓 떨어진 부모님이 이곳에 당장 달려올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이 소식을 알리는 것도 너무 꺼려졌습니다. 멀쩡하던 애가 대뜸 중환자실에 있노라면 친구도 놀랄 판인데 부모의 마음은 어떻겠습니까. 게다가 어버이날을 앞두고 이런 불효가 어딨겠습니까.
 
이곳만 그런 것인지 모르겠지만 중환자실에 도착하자마자 휴대전화를 사용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전파 교란 등의 문제로 휴대전화는 금고에 따로 보관해놓겠다고 가져갔습니다. 그래놓고서는 보호자 연락처를 물었습니다. 이미 아래에서 말했다고 해도 이번에는 법적인 보호자가 될 수 있는 가족의 연락처를 꼭 기입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것도 2명이나요. 속으론 가족이 없는 이들은 어떻게 하겠느냐는 생각이 들었지만 기력이 없어 아버지 전화번호만 적고 버텼습니다. 하지만 단호하시더군요. 꼭 2명을 모두 기입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하는 수 없이 어머니 전화번호도 적고나서야 보호자를 묻는 절차는 일단락되는 듯했습니다. 휴대전화가 없는 상태에서 번호를 물어보니 사실 생각나는 번호도 그 2개뿐이더군요.
 
물론 중환자실의 경우 상태가 급격히 나빠지면 조금이라도 빨리 소식을 전하기 위해, 최대한 연락이 닿도록 2개의 전화번호가 필요했겠지만 소식을 들은 부모님의 후폭풍이 더 우려됐던 저는 웬만하면 꼭 연락을 하지 말아달라고 정말 간곡히 부탁했습니다. 중환자실에서 일반병실로 이송 시 문자메시지가 간다기에 제가 연락하겠다고 메시지 보내지 말아달라고 또 부탁했습니다.
 
1인가구로서의 설움을 이날 좀 느낀 것 같습니다. 보호자가 당연히 있어야 한다는 질문이 저를 설움으로 이끌었습니다. 보호자가 수시간 떨어진 거리에 있는 부모님이어야만 한다는 것도 그랬습니다. 국내서 1인가구 비율은 점차 높아지고 있고, 가장 대중화된 가구 형태가 돼가고 있는데 이 보호자 정책 앞에서는 상당히 비정상적인 형태로 비춰졌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많은 1인가구들이 이 같은 부가적 고통을 느끼고 있겠죠?
 
그나마 코로나19 영향으로 면회가 전면 금지돼 병실에서 보호자 없는 것이 저에게는 다행이었습니다. 이제 코로나19에 감염이 돼도 격리 의무가 사라졌으니 보호자 면회도 다시 살아나겠네요. 저는 병원에서 의료진들이 해준 보호로 충분했는데, 아플 때를 대비해 보호자를 어디서 구해놔야 하나 싶은 심정이네요.
 
  • 변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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