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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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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항으로 치부되긴 너무 슬픈 동물원 얼룩말 탈출기

2023-03-30 06:00

조회수 : 2,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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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토마토 윤민영 기자] 최근 서울어린이대공원을 탈출해 도심을 활보하다 포획된 얼룩말 '세로'가 화제였습니다. 포획 당시 세로는 다리에 살짝 까진 상처를 제외하고는 건강에 이상이 없었으며 세로의 탈주로 인한 인명·재산 피해도 없었다고 합니다.
 
세로는 탈출 3시간 30분 만에 대공원으로 돌아가면서 짧은 탈주극은 마무리됐지만, 세로를 둘러싼 스토리는 의인화 돼 사람들에게 화제가 됐습니다. 지난 1월 서울시설공단 유튜브 채널에 올라온 '반항마' 세로의 사연이 다시 인기를 끌었는데요.
 
사육사들의 설명에 따르면 세로는 어린이대공원에서 같이 살던 엄마 '루루'와 아빠 '가로'의 잇단 죽음 이후 반항이 부쩍 심해졌다고 합니다. 내실로 들어오지도 않고 이웃인 캥거루와 싸우고 밥도 잘 안 먹는다고요. 실내 기둥을 머리로 치는 등 자학도 한다네요.
 
대공원 측은 세로가 탈출하지 못하도록 울타리를 보강 공사하고 외로움을 덜 타도록 여자친구를 만들어 줄 계획이라고 합니다. 사후약방문인 셈이지요.
 
여기서 잠시, 얼룩말의 특성이 궁금해 네이버 백과사전을 검색해봤습니다.
 
"사하라 사막 이남의 아프리카에 분포하며 사바나, 목초지, 시야가 트인 덤불 등에 서식한다. 작은 무리를 이루거나 수천 마리의 큰 무리를 이루고 영양이나 기린과 더불어 산다. 적에 대해서는 집단으로 방어한다. 가축으로 사육 시험을 시도해 봤으나 말이나 당나귀보다 내구력이 결핍돼 실패했다. 수명은 약 25년."
 
정말 슬프지 않나요?
 
얼룩말은 무리와 함께 넓은 광야를 달리며 살고, 적이 나타나면 합동해 방어하는 특성이 있네요. 세로는 외롭고, 외부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힘든 환경이었으며 좁은 동물원에 갇혀서 질주 본능까지 억눌리며 살고 있었습니다.
 
특히 늙은 수컷은 우두머리가 된다고 하는데, 수컷인 세로가 남성미를 내뿜을 기회는 있을지 모르겠네요. 가족도 없는데 이끌 무리가 있을리가요. 다른 얼룩말도 들여오기 힘든 사육 환경인데요.
 
동물권에서도 문제 지적이 이어집니다. "부모를 잃고 반항하기 시작했다", "삐쳤다" 등은 잘못된 의인화라는 것이죠. 사람이 사람 마음 알기도 힘든데, 동물 마음을 어떻게 알까요? 세로의 상황이 좋지 않다는 걸 알아도 저런 식으로 단정 지어 '심각한 상황'이 아니라는 듯 치부하는 건 동물 인권과 관련된 문제라고 봅니다.
 
겨우 여자친구 만들어 주는 것으로 외로움을 달랠 수 있다는 발상은 어디서 나왔을까요. 세로의 탈출은 단지 사춘기 시기의 반항, 그리고 가족이 없는 외로움 때문이었을까요. 세로는 고통스러움을 표현했다고 봅니다.
 
동물원은 야생에서 생존하기 힘들거나 종 보존과 연구를 위한 목적에서는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러나 자연에서 살아야 하는 동물을 단지 사람들의 구경거리를 위해 가둬 두는 점에 대해서는 존재의 이유를 다시 짚어봤으면 합니다.
 
23일 오후 서울 광진구 주택가에 어린이대공원에서 탈출한 얼룩말 세로가 나타난 모습. (사진=광진소방서)
 
윤민영 기자 min0@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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