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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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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어나는 만선호프, 커지는 불편함

2023-02-07 17:22

조회수 :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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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시내 곳곳에 만선호프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을지로 3가에서 시작한 만선호프가 을지로3가 골목을 점령한 뒤 다른 지역에서도 계속해서 세를 늘리는 모습입니다.
 
지난해 4월21일 을지로 3가 노가리 골목의 원조인 '을지OB베어'가 철거된 모습. (사진=변소인 기자)
 
며칠 전 구로디지털단지역을 지나다 '만선호프' 간판을 보게 됐습니다. 젊은이들이 가득한 곳에서 만선호프는 을지로 3가에서 그랬듯 구로동에서도 오픈발과 유명세로 위용을 떨치고 있었습니다.
 
북쪽에 있던 만선호프가 어쩌다 여기까지 내려왔나 싶어 지도 앱을 켜서 만선호프를 검색했더니 지도 화면이 금세 만선호프로 빼곡해졌습니다. 을지로 3가에서만 골목대장 노릇을 하는 줄 알았던 만선호프는 서울을 넘어 일산, 부평, 용인, 수원까지 진출해 있었습니다. 심지어는 수도권을 넘어 부산에서도 영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만선호프가 사세를 키울수록 제 마음 속 불편함은 커졌습니다. 을지로 3가 골목에서 만선호프와 함께 영업을 하던 가게들이 사라지는 것을 두 눈으로 목격했기 때문입니다. 상생은 뒷전으로 한 채 실리만 좇아 만선호프의 왕국이 만들어지는 형국을 똑똑히 기억해서입니다.
 
지난해 4월21일 을지로 3가 노가리 골목의 원조인 '을지OB베어'는 강제 철거당했습니다. 여느 날처럼 을지OB베어를 찾았다가 황망한 표정을 짓고 한참동안 자리를 뜨지 못한 부부가 떠오릅니다. 날도 좋고 기분도 좋아 맥주 한잔의 즐거움을 단골 가게에서 만끽하고 싶었던 부부는 다 뜯겨나가다시피한 가게와 빨간 글씨의 경고문 앞에서 추억을 뺏겨야 했습니다.
 
을지OB베어는 저렴한 가격으로 마음의 쉼터가 돼주는 소박한 공간이었습니다. 오랫동안 운영해온 공로를 인정받아 2015년에는 서울시가 '서울미래유산'으로, 2018년에는 중소벤처기업부가 '백년가게'로 선정했습니다. 자본과 힘의 논리 앞에서는 무용지물이었지만요.
 
이런 사연을 아는 일부 시민들은 만선호프를 피해 다른 가게를 찾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사연을 모르는 이들은 이미 유명할 대로 유명해진 만선호프로 쉽게 향합니다. 그럴수록 만선호프는 더 많아지겠지요. 만선호프가 망하길 바라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상생에 얄짤 없었던 만선호프의 행동은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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