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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방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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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방열의 한반도 나침반)또 도둑처럼 등장한 ‘통일 도둑론’

2023-02-06 06:00

조회수 : 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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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1월 5일, 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열린 통일준비위원회 회의에 참석, 입장하는 장면. .(사진=뉴시스)
 
[뉴스토마토 황방열 통일·외교 선임기자] “내가 통일부 차관과 장관을 지내고 통일 문제를 평생의 화두로 삼고 있는 사람이지만 통일은 먼 훗날의 일이고, 그 전에 남북관계 개선부터 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통일이라는 말을 잘 쓰지 않는다. 지금 한반도 안팎의 상황이 통일이라는 말을 많이 쓸수록 통일에서 멀어진다.”
 
김대중정부의 마지막 통일부 장관에 이어 노무현정부의 첫 통일부 장관으로 2년 5개월간 일했던 정세현 전 장관의 토로입니다.
 
박근혜정부가 2014년, 20515년에 ‘통일’ 드라이브를 걸고 나섰을 때였습니다. 1977년부터 남북관계에 직간접 관여해온 정 전 장관은 “사랑이라는 말도 남용하면 진정성이 없어 보이는데, 최고지도자가 통일이라는 말을 너무 많이 쓰는 것이 오히려 불안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2014년 신년 기자회견에서 “통일은 대박”이라면서 통일준비에 착수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를 계기로 당시 여권에서는 ‘통일 대박’이 구호가 됐고, 그해 7월에는 대통령이 직접 위원장을 맡은 민관협의체 통일준비위원회가 출범했습니다. 항간에는 통일대박이 ‘통일대통령 박근혜’의 줄임말이라는 말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앞서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가 같은 해 신년사에서 남북관계 개선을 제의했고 분단 70년을 불과 1년 앞둔 시점이기는 했습니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북한 핵문제 악화 상황 등을 고려할 때 바로 통일 준비에 착수하자는 것은 ‘자다가 봉창’이었습니다. 김영삼정부 이래 면면히 내려온, 북한의 갑작스러운 붕괴로 “통일은 도둑처럼 올 것”이라는 ‘오래된 미망’이 그 배경이었습니다.
 
그로부터 불과 2년도 안 된 2016년 10월 박 대통령은 북한의 핵실험과 장거리로켓 발사에 대한 제재 차원에서, ‘통일 한국의 축소판’ 개성공단을 폐쇄했습니다. 결국 통일준비위원회도 문재인정부가 출범하면서 문을 닫았으니, 일찍부터 예고된 결말이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월 27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통일부·행정안전부·국가보훈처·인사혁신처 업무보고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북한에 100배, 1000배 응징이라더니, 갑자기 통일미래기획위원회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27일 통일부 업무보고 자리에서 “통일은 갑자기 찾아올 수 있으니 준비된 경우에만 그것을 실현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
 
정부는 통일미래기획위원회도 만들 예정입니다. 각계 권위 있는 전문가로 구성하는 민관 협업 플랫폼을 표방했으니, ‘통일준비위원회’의 재판 격입니다. 대한민국 정부의 공식통일방안인 민족공동체통일방안도 발표 30주년을 맞아 수정한다고 합니다.
 
남북 간에 군사적 긴장이 최고조로 올라가면서 올봄 국지전 우려까지 나오는 상황에서 갑자기 웬 별천지 같은 얘기들입니까? 대통령이 직접 ‘북한에 100배, 1000배 응징 능력을 확보하라’고 지시한 게 3주도 안 됐습니다.
 
‘통일 도둑론’이 도둑처럼 또 등장한 것입니다.
 
윤 대통령은 “북한이 남쪽보다 더 잘산다면 그쪽 중심으로 (통일이) 돼야 될 거고, 남쪽이 훨씬 잘산다면 남쪽 체제와 시스템 중심으로 통일이 돼야 되는 게 상식 아니겠느냐”라고도 했습니다. 1973년을 기점으로 남북 간 국력이 역전됐다는 점에서, 1960년대 통일됐다면 북한 체제로 갔어야 한다는 뜻인지 아리송한 발언이기는 하지만, 윤 대통령이 흡수통일을 염두에 두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흡수통일? 감당할 수는 있습니까
 
윤 대통령의 ‘흡수 통일’ 시사 발언이 북한을 자극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우리가 이걸 감당할 수는 있습니까. 2021년 기준 기초생활수급자가 236만명 정도됩니다. 갑자기 통일이 되면 북한 인구 2500만명 중, 2000만명 이상이 기초생활수급자가 될 것입니다. ‘우리의 통일은 전쟁’이라는 소설이 화제가 된 것도, 이런 상태에서의 통일을 국민들이 우려하고 있기 때문 아니겠습니까?
 
북한 경제가 겨우 버티는 수준을 넘어서고 그 과정을 통해 남북한의 마음이 통합되지 않은 상태에서 하는 통일은 재앙이 될 것이 분명합니다.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은 1989년 9월에 노태우 대통령이 국회에서 발표한 ‘한민족공동체통일방안’을 김영삼 정부에서 이름 정도만 바꿔서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1989년에 이홍구 통일원 장관이 독자적인 통일론을 갖고 있던 김대중을 비롯해 김영삼, 김종필 총재 등 야당의 뜻을 모두 모았고, 화해·협력-국가연합-통일국가 완성이라는 3단계를 통해 ’사실상의 통일‘ 개념을 집어넣은 합리성 때문에 30년 넘게 생명력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한 세대가 바뀌었으니 손봐야 할 대목도 있겠으나, 자칫 도둑 통일론과 흡수통일 시각이 들어가지나 않을지 걱정입니다.
 
황방열 통일·외교 선임기자 hby@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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