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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방열의 한반도 나침반)“미국은 50년 숙적, 일본은 500년 숙적, 중국은…”

2023-01-2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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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3월 31일부터 4월 1일까지 평양을 극비리에 방문한 마이크 폼페이오(왼쪽) 미국 국무장관이 김정은(오른쪽) 북한 국무위원장을 만나 악수를 하고 있다. 백악관은 4월 26일(현지시간)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김 위원장을 만날 당시 사진 2장을 공개했다. (사진=뉴시스)
 
[뉴스토마토 황방열 통일·외교 선임기자] 마이크 폼페이오 전 미국 국무장관이 자신의 회고록에, 2018년 3월 평양 방문 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중국의 위협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려면 주한미군이 필요하다고 말했다고 소개한 비화가 우리 언론에 쏟아져 나왔습니다.
 
전반적인 얼개는 ‘워터게이트 특종기자’ 밥 우드워드가 2020년 9월에 낸 ‘분노’(RAGE)를 통해 이미 알려진 것이지만, 저는 폼페오가 이를 전하면서 “이것이 그(김정은)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과소평가했다”고 한 대목에 눈이 갔습니다.
 
김정은의 중국에 대한 인식과 이에 직결되는 주한미군의 존재에 대한 입장은, 사실 김일성과 김정일도 똑같았습니다.
 
2016년에 비밀 해제된 외교문서를 보면, 김일성은 1980년 초에 ‘절친’인 캄보디아의 노로돔 시아누크 전 국왕에게 "소련(러시아)은 믿을 수 없고(cannot rely on), 중공(중국)은 믿지 않는다(doesn't rely on)"고 토로했습니다. 따지고 보면, 북한의 통치이념인 주체사상도 소련과 중공의 ‘대국주의 횡포’에 대한 김일성의 반발이 그 탄생 배경이었습니다.
 
김일성은 이 무렵 대미 관계개선을 시도하기도 했습니다. 1982년 봄에 제네바 주재 북한 대사가 함께 제네바에 있던 미국 대사에게 “북미 간 제반 문제를 타결하기 위한 김일성 주석의 제안이 봉투에 들었으니 미 정부에 전달해 달라”고 요청했으나, 미국 대사는 국무부 지시로 뜯지도 않은 채 다음날 돌려보냈습니다. 같은 해 6월에도 유엔 북한대표부 차석대사가 유엔에서 미국대표부 직원에게 서류봉투를 건넸으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김일성·김정일 “중국을 믿지 말라”
 
김일성은 10년 뒤인 1992년 1월에는 김용순 노동당 국제담당비서를 뉴욕에 특사로 보내 아놀드 캔터 미 국무차관에게 “조미 수교를 해주면 미군 철수를 요구하지 않겠다. 미군이 지위와 역할을 변경해 평화유지군 같은 역할을 해주기 바란다”는 뜻을 전했습니다.
 
당시 통일연구원 부원장으로서 노재봉 청와대 비서실장을 통해 이를 알았던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북한이 주한미군에 대해 남침 억지를 위한 무장력일 뿐 아니라 동북아의 균형자, 안정자 역할(stabilizing role)을 하면서 사회주의권 붕괴 상황에서 남한의 북한 흡수도 막아줄 수 있다는, 코페르니쿠스적 인식 전환을 한 것이었다”고 평가합니다. 그러나 미국은 북한도 곧 무너질 거라 보고 이를 무시했습니다.
 
2000년 6월 남북 정상회담에서 김정일은 김대중 대통령에게 ‘김용순 특사’ 얘기를 소개하면서 같은 얘기를 했고, 그해 10월 평양을 방문한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에게도 이를 반복했습니다.
 
이 무렵 중국과의 친밀도를 과시하는 한국 정부 인사들에게 김정일은 “중국은 우리가 더 잘 안다. 중국은 절대 믿으면 안 된다. 한 마음에 보따리가 여러 개 있다”고 했습니다. 북한의 중간 간부나 학자들도 남쪽 사람들에게 “미국은 50년 숙적이고, 일본은 500년 숙적인데, 중국은 5000년 숙적”이라는 말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1954년 10월 1일 베이징 천안문 망루에서 열병식을 함께 지켜보는 김일성 전 북한 주석(오른쪽 둘째)과 마오쩌둥 전 중국 주석(오른쪽). (사진=연합뉴스)

그렇다면 북한 지도부는 왜 이렇게 중국에 대한 거부감을 갖게 됐을까요. △1970년 미중 화해, 중소 갈등 △중국 개혁개방 후 북한에 대한 무상·특혜 지원 대폭 감소 △1992년 한중 수교 △2017년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에 중국 찬성 등이 큰 이유일 겁니다.
 
결국 중국과 주한미군에 대한 김정은의 인식도, 3대 세습된 셈입니다.
 
이처럼 북중관계 현실은 ‘북중 혈맹’이라는 우리의 일반적 판단과는 많이 다릅니다. 중국의 경제지원이 북한 경제와 체제 안정에 도움이 되는 것은 분명하지만, 북한은 중국이 이를 이용해 과도하게 간섭하는 것은 허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여기서 자연스럽게 의문이 생겨납니다. 미국은, 우리는 이 틈을 파고들 수는 없었을까?
 
브룩스 전 주한미군 사령관·임호영 전 한미연합사부사령관 “북한을 동맹으로 만들자”
 
“북한을 한미의 동맹으로 만들자” 연구자의 자유분방한 아이디어 정도로 들리지만, 이는 빈센트 브룩스 전 주한미군 사령관 겸 한미연합사령관과 임호영 전 한미연합사령관의 주장입니다. 2016년, 2017년에 한미연합사에서 함께 근무했던 두 예비역 대장이 2021년 8월 저명한 미국 외교 전문지 ‘포린어페어스’에 공동명의로 기고한 ‘북한과의 일괄 타결’에서 한 제안입니다. “북한을 중국으로부터 떼 내 한미 동맹이 주도하는 질서에 끌어들이자”는 겁니다.
 
“(북미 간)정치적 관계의 전환은 미국과 북한 사이에 전략적 목표를 공유하지 않은 한 어렵다. 그 전략은 구체적으로 중국에 대한 견제일 수 있다. 그럼 베트남처럼 중국으로 공동의 적으로 삼아 미국이 북한과도 손잡을 수 있을까? 그럴 수만 있다면 이는 1972년 닉슨이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 중국과 손을 잡았던 사건에 비견될 만하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소개해서 유명해진 ‘지정학의 힘’(2020년 11월, 김동기 변호사) 주장입니다. 2018년 3월에 미국 항공모함 USS 칼빈슨이 베트남 다낭에 입항한 ‘일대 사건’처럼 북미 관계를 그렇게 만들자는 것입니다.
 
그런데 미국은 김일성 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북한이 중국에게 갖고 있는 안보 불안을 과소평가하거나 아예 무시해왔습니다. 폼페이오가 이번에 밝힌 대로 말입니다. 
 
황방열 통일·외교 선임기자 hby@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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