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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훈

미국 땅 밟은 제약바이오, 이제 성과를 보여주세요

2023-01-13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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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뉴시스)
[뉴스토마토 동지훈 기자] 우리나라는 꽤 오래 전부터 세계를 기준으로 한 자기 평가를 즐겼습니다. 늘 글로벌 무대에서 우리가 가진 경쟁력이 얼마나 되는지 강조했고, 어떤 분야에서든 세계 무대 진출을 성공의 바로미터로 삼았습니다.
 
제약바이오업계 역시 사정은 다르지 않습니다. 이름만 들어도 알 만큼 거대해진 외국계 기업이 선점한 시장에서 제네릭 위주로 성장한 우리 기업 역사를 보면 당연한 일이기도 합니다.
 
다행히도, 그리고 자랑스럽게도 우리 기업은 짧은 시간 안에 빠른 성장을 거쳐 세계에서도 주목받는 위치에 올랐습니다. 바이오업계의 대세라고 불리는 위탁생산(CMO), 위탁개발생산(CDMO)에서 독보적인 질적 양적 기반을 마련한 것만 봐도 알 수 있죠.
 
'참가만 해도 영예' 옛말
 
달라진 한국 제약바이오기업의 위상을 볼 수 있는 장면은 매년 열리는 세계 최대 규모의 업계 행사인 JP모건 헬스케어 컨퍼런스입니다. 올해 행사만 놓고 보더라도 JP모건 헬스케어 컨퍼런스에 참여한 우리 기업은 두 자릿수가 넘습니다.
 
지금이야 JP모건 헬스케어 컨퍼런스 참가 명단에 우리 기업이 있는 게 낯익은 일이지만, 불과 수십년 전만 해도 이례적이었습니다. 그만큼 JP모건 헬스케어 컨퍼런스에 참가하기 위해 미국을 찾는 해외 기업들의 덩치는 컸고, 반대로 우리는 아주 영세한 수준이었으니까요.
 
몇 해 전 만난 업계 관계자가 들려준 말도 이런 인식을 잘 보여줍니다. 코로나19도 터지기 전이었던 2019년 한 관계자는 "예전에야 JP모건 헬스케어 컨퍼런스에 간다고 하면 경천동지할 일이었지만 지금은 파이프라인 하나만 잘 키워도 얼마든지 노릴 수 있다"고 했죠.
 
한국도 잭팟 주연 대열 합류
 
JP모건 헬스케어 컨퍼런스 참가 기업이 늘어난 만큼 이역만리 타지에서 잭팟을 노리는 기업은 많습니다. 지난 1983년 투자은행 H&Q의 바이오 전문 IR 행사로 시작한 JP모건 헬스케어 컨퍼런스는 2003년 JP모건이 인수하면서 간판을 바꿔 달고 매년 1월 열립니다. 이 행사에는 제약바이오업계 관계자뿐 아니라 투자자들도 몰려 유망 기업과 파이프라인을 훑어봅니다.
 
사례가 없었던 것도 아닙니다. 2015년 한미약품(128940)은 JP모건 헬스케어 컨퍼런스에 참가해 자체 플랫폼 기술 '랩스커버리'를 소개했고, 결국 사노피와 기술이전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당시 계약 규모만 해도 5조원대였는데, 우리 기업도 JP모건 헬스케어 컨퍼런스에서 기술수출에 성공할 수 있다는 걸 증명한 순간이었습니다. 당연히 국내 업계는 굉장히 떠들썩했습니다.
 
JP모건 헬스케어 컨퍼런스에서의 잭팟 신화는 3년 뒤에도 이어졌습니다. 당시에는 유한양행(000100)이 잭팟 선봉장으로 나섰죠. 유한양행이 기술수출한 파이프라인은 '레이저티닙'으로 지금은 우리나라에서 '렉라자'라는 이름의 국산신약으로 허가를 받았습니다. 기술수출 상대는 얀센이었고 금액은 1조4000억원이었습니다. 얀센은 레이저티닙의 한국 출시와 무관하게 글로벌 임상시험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성과를 보여줄 때
 
두 건의 계약에서 길게는 8년, 짧게는 4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 기업들은 미국 땅에서 잭팟 신화 재현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사실 기술이전 계약이라는 게 JP모건 헬스케어 컨퍼런스 기간에 만나 운을 떼서 바로 체결까지 이어지진 않습니다. 컨퍼런스 개막 전부터 잠재적 계약 상대방과 수많은 데이터를 주고받으면서 긴 시간을 보내야 가능합니다. 이건 JP모건 헬스케어 컨퍼런스뿐 아니라 연구 데이터를 발표하는 학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계약이 어렵다고는 하지만 이제는 장밋빛 미래가 현실로 다가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런 바람은 특히나 JP모건 헬스케어 컨퍼런스 참가 소식을 대대적으로 홍보하는 시기에 짙어집니다.
 
넉넉잡아 행사가 열리기 한 달 전인 연말이면 도처에서 JP모건 헬스케어 컨퍼런스에 참가한다는 보도자료가 성행합니다. 물론 세계적인 행사에 우리 기업의 행차를 홍보하는 게 필요하긴 합니다. 그래도, 앞에서도 말했듯이 이제 우리는 세계적인 행사가 어찌 보면 익숙해졌잖아요. 이제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춘 자체 평가 기준은 행사 참가가 아니라 실질적인 성과로 삼자구요.
 
동지훈 기자 jeeho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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