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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윤서

(영상)해마다 반복되는 예산안 진통…근본적 문제 있었다

정기국회 내 처음 처리 불발, 최장 지각 예산안 '불명예 기록'

2022-12-1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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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00회국회(정기회) 제400-14차 본회의에서 '한국전력공사법 일부개정법률안(대안)'이 부결되고 있다. (사진=뉴시스)
[뉴스토마토 장윤서 기자] 제21대 국회가 국회선진화법 도입 이후 처음으로 정기국회 내 예산안 처리 불발이라는 불명예를 얻었다. 특히 올해는 '최장 지각 예산' 기록도 세우면서 불명예의 끝판왕이라는 오명까지 덧씌워졌다. 
 
문제는 늑장 처리를 반복하는 예산안 협의의 구조적 문제다. 내년도 예산심사는 100일간의 정기국회가 막이 오르면 본격화된다. 하지만 각 상임위원회와 예산결산특별위원회의 예산안 심사의 분업이 명확하지 않다 보니, 툭 하면 밀실로 숨기 일쑤다. 
 
특히 여의도 이슈마저 정기국회를 덮칠 경우 예산안 심사는 올스톱된다. 올해도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해임건의안은 물론, 윤석열 대통령의 협치 불가 태도가 예산안 한가운데를 파고들면서 상임위와 예결위 파행을 가속시켰다.
 
17일 정치권에 따르면 국회는 2014년 국회선진화법을 도입했다. 국회의장이 여야가 합의한 법안만을 직권상정할 수 있도록 요건을 엄격하게 해 날치기 통과를 금지했다. 그 대신 신속처리안건 지정(패스트트랙)제도를 도입해 정쟁의 장기화를 방지하도록 한 것이다. 하지만 국회선진화법이 통과된 이후 법정시한인 12월2일까지 예산안이 본회의를 통과한 사례는 2015년도와 2021년 예산안, 단 두 차례에 불과하다. 
 
특히 올해는 법정시한보다 14일(16일 기준)이나 초과하면서 국회선진화법 이후 최장 지각 기록도 세웠다. 이전까지는 2019년도 예산안이 법정시한보다 8일을 넘기면서 최장 지각이라는 불명예를 얻었다. 국회선진화법 이후 정기국회 내에 예산안 처리가 불발된 것은 올해가 처음이다. 
 
주호영(왼쪽) 국민의힘 원내대표와 박홍근(오른쪽) 민주당 원내대표가 1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국회의장 주재 원내대표 회동에 참석해 김진표 국회의장의 발언을 듣고 있다. (사진=뉴시스)
 
윤석열정부 출범 이후 처음으로 편성된 예산안인 만큼 어느 정도의 진통은 예견된 일이었다. 하지만 올해의 경우 여야가 예산안과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해임건의안,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 법인세 최고세율 인하 등 굵직한 정치 현안과 연계하면서 협상이 고차방정식으로 격상된 탓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국민의힘과 민주당은 지난달 11월 예산안과 이태원참사 국정조사를 연계하면서 협상을 벌였다. 당시 국민의힘은 ‘선 경찰조사 후 국정조사’라는 입장을 가지고 있었지만, 야3당이 단독으로 국정조사를 불사하겠다고 의지를 보이고 여론마저 이들에 우호적이자 ‘선 예산안 후 국정조사’로 선회했다. 예산안을 먼저 처리한 뒤에 국정조사를 실시하자고 연계한 것이다. 
 
이후 민주당이 이 장관에 대한 해임건의안을 추진했으나,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정국은 또다시 얼어붙었다. 특히 민주당은 앞서 박진 외교부장관에 대한 해임건의안을 윤 대통령이 거부했던 사례를 통해 이 장관에 대한 탄핵소추안까지 고려하고 있다고 압박하면서 예산안 협상 분위기가 꽁꽁 얼어붙었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지난 4일 민주당을 향해 “이 장관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내면 예산안 타협에 이를 수 없다”고 하면서 탄핵소추안과 예산안을 다시금 연계했다. 
 
법정시한을 넘긴 이후 여야가 서둘러 협상에 나섰지만 이번엔 윤 대통령이 자신의 관심 사항인 법인세 최고세율 3%포인트 인하(현행 25%→22%) 등을 관철시키려 국회 예산 협상 타결을 건건이 막아섰다. 특히 지난 15일은 김진표 국회의장이 제시한 예산안 처리 마지막 시한으로, 김 의장은 이날 통과를 위해 여야 원내대표에게 법인세 최고세율 1%포인트 인하와 국민감세 3법(중소·중견기업 법인세 감면, 소득세 최저세율 적용 대상 확대하는 소득세법 개정, 월세 부담을 낮추는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을 수용하라고 중재안을 냈다.
 
정부여당이 주장하는 법인세 최고세율 일부를 인하하는 방안을 민주당이 받아들이고, 민주당이 주장하는 국민감세 3법을 수용하면서 여야 모두 각자 한 발씩 양보해 수용하라는 것이었다. 당초 주 원내대표도 민주당이 법인세 최고세율을 1%포인트~2%포인트 수준은 인하하는 방안을 수용해야 한다고 주장해온 만큼 여야 모두 김 의장 중재안에 동의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윤석열정부가 법인세 최고세율 1%포인트 인하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반대하면서 여야 협상은 다시 깨지게 됐다. 
 
중재안을 냈던 김 의장은 지난 16일 여야 원내대표 회장에서 “정치를 하는 사람들이 최소한의 양심이 있어야 하지 않냐”고 질타한 뒤 “아직까지 계속 합의를 안 하고 있으면 어떻게 하나. 예산안이 경제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인데 이렇게 되면 집행이 어렵다”라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16일 경기 성남 분당구 한국잡월드에서 열린 국제기능올림픽 선수단 격려 오찬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전문가들은 대안으로 예산심사 기능 재분배를 통한 구조적 개선을 주문했다. 예결위가 예산 총량을 심의하고 상임위에서 부처별 세부 사업을 조정하는 톱다운(하향식) 예산 심의방식을 도입한다면 여야가 시한에 쫓기고, 정치적 현안 등에 따라 부실하게 심의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예컨대 예결위가 총세입·총지출·국가채무 등 국가재정운용계획의 중장기 심사를 집중하고, 각 상임위가 예산 심의지침을 제시, 소관 분야별로 세부 조정을 하는 방식이다. 
 
또 미국과 같이 예산 편성·확정권을 국회가 갖는 방안도 제시됐다. 현재는 국회는 정부가 예산안을 편성해 넘기면 감액만 할 수 있고, 증액은 할 수 없다. 때문에 예산안 협상에서 정부가 개입할 여지가 큰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를 미국처럼 국회가 예산 증액, 감액권을 가져 예산안을 편성하고 확정한다면 정부에 의해 예산안 협상이 가로막히는 일을 방지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아울러 전문가들은 윤 대통령의 협치 정신을 당부하기도 했다. 김두수 시대정신연구소 대표는 <뉴스토마토>에 “이번에 예산안 처리가 지연된 가장 큰 원인은 윤 대통령에게 있다고 생각한다”며 “대통령이 국회와 협치하는 게 중요한데, 윤 대통령은 국회에 내 말을 따르라고만 하면서 타협의 정신을 훼손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장윤서 기자 lan4863@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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