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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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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실리콘밸리가 지배하는 우크라이나 전쟁

2022-12-12 06:00

조회수 : 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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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대 연세대 통일연구원 객원교수
우크라이나 동부의 한 외진 전투 구역에서 얼굴이 심하게 훼손된 러시아 병사의 시신이 발견되었다. 등에 문신이 발견된 것을 제외하고 신원을 확인할 수 있는 단서는 없었다. 그런데 우크라이나 군과 경찰은 안면 복원 기술로 죽은 병사의 얼굴 이미지를 생성한 후, 이를 이미지 검색 엔진의 검색창에 입력한다. 불과 수 분 만에 인공지능은 이 병사의 신원을 알아내고 등에 문신이 있다는 특징도 찾아낸다.
 
이 데이터는 3만명 정도로 편성된 우크라이나 정보군(IT Army)에 전달된다. 주로 해커로 구성된 정보 요원들은 사망한 병사의 가족이나 친구의 소셜 미디어나 이메일 계정을 찾아낸다. 유가족들은 러시아 정부보다 먼저 우크라이나 정부로부터 병사의 사망 사실을 전달받게 된다. 동시에 러시아 주민이 죽은 병사의 시신 인도를 우크라이나 정부에 신청하도록 안내한다.
 
지난 4월부터 우크라이나 정부가 러시아 주민에게 개시하고 있는 서비스다. 이 서비스가 얼마나 효과적인지는 일체 알려지지 않았다. 이미 3월에 <로이터> 통신은 우크라이나 경찰을 비롯한 7개 정부 기관에서 미국의 안면인식 기술 제공업체인 클리어뷰와 협력하고 있다는 사실을 단독 보도했다. 이에 대해 우크라이나 정부는 일체 논평을 거부하고 있으나 전문가들은 전사자 신원 확인, 불심검문에 이 기술이 광범위하게 활용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지난달 24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도네츠크주 바흐무트 인근 전선에서 우크라이나 군인들이 러시아 진지를 향해 다연장포를 쏘고 있다. (사진=뉴시스)
 
여름에 이 사실이 화제가 되자 클리어뷰는 이미 러시아 내부 인터넷 망을 통해 10억장 이상의 개인 사진을 확보하고 있었으며, 이 데이터를 학습한 인공지능은 훼손된 러시아 병사 시신이라도 95%이상의 정확도로 신원을 확인할 수 있다고 직접 밝히고 나섰다. 인권단체들이 "신원확인에 오류 가능성이 있다"며 이 회사를 비난하였으나 우크라이나 정부의 치안과 군사작전에 이 기술은 굳건히 뿌리를 내리고 있다. 러시아 병사의 지문과 치아 배열, 또는 유전자 정보를 확보하지 못한 우크라이나는 안면 인식 기술 외에 신원을 확인할 수 있는 다른 대안이 없다.
 
2015년경부터 계산 물리학자와 알고리즘 연구자들이 참여한 클리어뷰는 미국 내에서 구글, 페이스북, 트위터로부터 개인 사진 정보를 무단으로 수집하였다고 고소를 당한 상태다. 일리노이주 법정에서 이 기술의 윤리성에 대한 논쟁이 진행되는 동안 충격적인 사실이 밝혀졌다. 이 회사는 이미 전 세계 소셜 미디어 계정에서 1000억장 이상의 인물 사진을 확보하였고,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 3200개 공공기관이나 법 집행 기관이 진즉 이 회사의 기술을 사용하고 있었다. 개인정보 활용 규제로 미국 내에서는 은밀하게 사업을 해 온 이 회사에게 우크라이나 전쟁은 어떤 규제로부터도 자유로운 새로운 해방구였다.
 
안면 인식 기술은 새로운 전쟁의 일면에 불과하다. 이제껏 전쟁은 상대 국가의 전략적 중심을 파괴하고 인프라를 마비시키는 하드파워의 전쟁이었다. 반면 새로운 전쟁은 상대의 연결망 깊숙이 침투하여 선별적으로 정보를 제공하고 인간의 심리를 조작하며 전쟁 의지를 사라지게 만드는 정보와 심리의 전쟁, 즉 소프트파워의 전쟁으로 변모하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인류 역사상 처음 디지털로 연결된 사회에서의 전쟁으로, 그 양상은 과거와 확연히 다르다.
 
2010년경부터 대니얼 에봇을 비롯한 미국의 전쟁학자들은 디지털 네크워크 전쟁의 출현을 예견하며, 이를 '제5세대 전쟁'이라고 불렀다. 이들은 전쟁에 지면서도 지는 것을 모르게 만드는 심리 조작 기술이 출현하며, 위계적인 군대 조직이 아니라 휴대폰과 노트북으로 전쟁을 하는 초강력 개인(Trans-Human)들이 전쟁의 주역이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이번 전쟁에서 미군과 나토는 단 한 명도 우크라이나에 파병되지 않았으나 실리콘밸리의 빅테크기업과 스타트업의 기술인력이 바로 그 예언을 실현하고 있다.
 
2016년 3월8일 에릭 슈밋 알파벳 회장이 서울에서 구굴의 인공지는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바둑 시합을 앞두고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모습이다. (사진=뉴시스)
 
사실 이번 전쟁은 안면 인식 기술 외에도 초소형 위성이 제공하는 위성 와이파이, 우버 택시가 제공하는 물류와 배급체계, 인공지능이 제공하는 전장 네트워크에 완전히 지배당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기술들은 대부분 미군조차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실리콘밸리의 독창적이고 치명적인 전쟁 능력이다. 향후 인류의 문명을 바꿀 이 기술기업들은 자국 내에서는 각종 규제로 기를 펴지 못하다가, 도덕과 규제로부터 자유로운 전쟁터에서 그 가공할 위력을 드러낸다. 9월에 우크라이나를 방문한 에릭 슈밋 구글 회장은 "기술은 어떻게 전쟁을 변화시켰나"라는 짧은 논문을 발표하게 된다. 그 논문은 일종의 새로운 문명 선언이었다.(내일 계속)
 
김종대 연세대 통일연구원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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