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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라

bora11@etomato.com

정확히, 잘 보겠습니다.
그래도 다 살아가더라

2022-11-08 17:00

조회수 : 1,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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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한강진 부근에 갔다. 전쟁박물관쪽에서 이태원 방향으로 쭉 올라갔다. 하필 볼 일이 있는 그 곳이 이태원 근처라 한때 내 마음은 심란했다. 일요일 아침이라 한산했다. 심장은 요동쳤다. 뒷좌석에 탄 딸아이에게도 사람들이 많이 죽었다는 그 곳을 지나간다고 했다. 
 
갈색 벽돌 건물이 보인다. 심장이 방망이질 친다. 들어가보는 것도 아니고 차를 타고 지나가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괜히 눈매가 촉촉해진다. 눈물이 고인다. 눈물이 떨어지려는 찰나, 시야에서 골목이 벗어났다. 다행이다. 시종일관 쫑알대던 딸아이도 해밀턴호텔을 지날 때만큼은 조용했다. 아마 바리케이드가 쳐진 그곳을 쳐다봤나보다.
 
경찰들이 주욱 늘어서 있었다. 한 눈으로 봐도 너무나 좁은 골목. 얼핏 보기에는 2미터 밖에 되어 보이지 않는다.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저 곳에 그 많은 사람이 끼여 있었다는 사실을 듣고도 믿고 싶지 않다. 사실 지금도 믿을 수 없는 일이다. 
 
이태원 역을 지나, 한강진 공영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걸어나왔다. 늦가을의 이태원의 아침은 일주일 전 비극을 아는지 모르는지 고요하고, 평화롭기까지 했다. 이태원에서 한강진으로 이어지는 메인로드의 핫한 샵들은 이 어지러운 상황 속에서도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브런치 카페는 여전히 사람이 많았다. 일요일 오전 10시 반 정도로 주말치고 이른 시간이었음에도 15분 정도 빈 자리가 나기를 기다렸다. '풀드 포크 오픈 샌드위치'와 '연어와플에그 베네딕트'와 '오늘의 수프'를 주문했다. 집에서 해먹기 힘든 '요리' 수준의 브런치메뉴가 이내 테이블로 전달됐다. 
 
이태원 참사는 잠시 잊은 채 일요일 아침의 여유를 즐겼다. 브런치로 유명한 이 가게는 여전히 사람이 많았다. 먹는 중간 중간 사람들은 택시를 타고 혹은 발렛을 맡기고 브런치 가게를 방문했다. 음식점은 시끄럽지는 않았지만 또 그냥 그렇게 고요하지 않았다. 여기 있는 사람들이 모두 이태원 참사를 잊은 것은 아닐테다. 그냥 '한 끼' 식사를 하는 것일 뿐. 
 
그 장소가 이태원이라 할지라도 살아있는 사람은 또 살아갈 거다. 이태원에서 한강진으로 이어지는 메인로드의 샵들 가운데 '당분간 영업을 중지합니다'라는 메모를 쓴 가게는 단 한군데였다. 나머지 가게들은 분주하게 영업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태원 방문객도 하나둘 모여들고 있었다.
 
그렇게 또 우리는 살아간다.
 
주말에 먹은 브런치 메뉴.
  • 이보라

정확히, 잘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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