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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익도

(시론)표절과 레퍼런스

2022-07-2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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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문화는 3단계의 발전과정을 거친다. 모방-응용-창조다. 개인으로 생각하면 쉽다. 음악에 꽂혀 악기를 산 후 처음부터 자작곡을 만드는 이는 극히 드물다. 코드를 익혀 자기가 좋아하는 노래를 카피한다. 거기서 나가면 자기에게 익숙한 장르나 스타일로 어설픈 자작곡을 만든다.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은 노래들이 나온다. 이 단계에 이르면 최소한 무대에 설 수 있는 정도가 된다. 여기에 재능과 노력이 더해지면 완전히 자기 스타일이 된다. 세상의 누군가는 분명히 주목할 것이다. 한 국가나 집단의 문화도 같은 과정을 거친다.
 
문제는 세대다. 한국 같은 급성장하는 문화권에서는 세대간 경험과 그로 인해 세계를 판단하는 관점이 매우 큰 차이를 보이기 마련이다. 부모와 자식 정도가 아니라 10년 단위로 과거와 현재의 탄탄한 벽이 세워진다. 최근 유희열의 표절 이슈가 뜨겁다. 진위를 막론하고, 어쨌든 그는 '유희열의 스케치북'을 비롯한 모든 방송에서 하차했다. 불은 여기서 꺼지지 않고, 온갖 뮤지션들에게 옮겨 붙으며 케케묵은 표절 논란으로 확장될 전망이다. 언론은 물론이고 조회수에 눈먼 유튜버들까지 먹잇감을 노린다.
 
사실 이 논란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인터넷 초창기 시절부터 이 노래도 표절, 저 노래도 표절이며 칼날을 휘두르는 이들이 존재했다. 대부분은 묻혔다. 아니, 동조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다. 유희열도 종종 그 칼날 앞에 섰지만 역시 별다른 피해를 입지 않았다. 호응하는 이들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같은 불이 더 커졌을까. 레퍼런스의 개념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유희열이 활동을 시작한 1990년대의 레퍼런스와 현재의 대중이 받아들이는 레퍼런스는 그 개념이 다르다.
 
1980년대 중후반 유재하, 이영훈-이문세 같은 이들에 의해 가요는 클래식의 문법을 입었다. ‘뽕끼’가 사라지고 팝에서만 듣던 세련된 멜로디를 얻었다. 팝과 가요의 장벽은 서서히 허물어졌다. 팝 음반만 사던 젊은 이들이 가요 음반을 사기 시작했다. 이 시기 리듬이나 사운드 같은 요소는 멜로디의 보조 수단이었다.
 
누구나 레퍼런스를 가져온다. 넓게는 한 뮤지션의 편곡 및 코드 진행 스케일을 가져올 때도 있고, 좁게는 사운드 메이킹 방식을 참조한다. 세션에게 부탁할 때, 엔지니어와 이야기할 때, 마스터링을 거칠 때, 레퍼런스는 종종 등장한다. 필수라 해도 무방하다. 우리가 아는 거의 모든 노래들에는 레퍼런스가 있다. 문제는 범위다. 레퍼런스로 삼은 노래의 분위기를 따오기 위해서는 편곡방식과 리듬, 그리고 코드 진행 같은 게 필요하다. 그 위에서 창작자들은 자신의 멜로디를 만든다. 비슷하게 지은 건물도 인테리어는 천차만별이 될 수 있는 것과 비슷하다. 하지만 한국의 음악 작업이 모방과 영향의 단계에 머물렀던 시절, 산업의 생산자들(제작자와 작곡가)은 해외 히트곡을 그대로 가져오다시피 했었다. 역시 건축에 비유하자면 남의 건물 설계도를 그대로 재활용했다는 얘기다.
 
반면 시장의 패러다임은 서서히 바뀌어왔다. 1990년대 댄스 혁명 이후 대중음악의 주도권은 멜로디에서 리듬과 사운드로 넘어갔다. 멜로디 중심의 음악이 코드 및 스케일 진행을 바탕으로 멜로디를 우선 만든 후 편곡을 거치는 반면, 흑인 음악을 바탕으로 리듬을 먼저 쌓고 메인 테마가 되는 리프를 바탕으로 단순한 음계의 멜로디를 얹는다. 아이돌 시대가 열리며 흐름은 굳어졌다. 즉, 음악을 받아들이는 기준이 달라졌다는 얘기다. 1990년 출생자가 현재 30대이니 온라인 여론을 주도하는 세대는 대부분 음계의 유사성 보다는 ‘실질적 유사성’, 즉 음악의 핵심적 인상을 중시한다고 볼 수 있다.
 
해외에서도 비슷한 흐름이다. 몇 년전 저작권 침해 판정을 받은 로빈 시크의 ‘Blurred Lines’가 좋은 사례다. 세계적인 히트를 기록한 이 노래는 마빈 게이의 ‘Got To Give It Up’을 표절했다는 소송을 당했다. 메인 테마를 이루는 베이스 라인이 마빈 게이의 노래와 유사하다는 근거였다. 로빈 시크를 비롯한 창작자들은 “노래의 분위기를 가져오려 했지만 완전히 다른곡”이라며 표절을 부인했지만 법정은 원고인 마빈 게이 유가족의 손을 들어줬다. 창작자의 시대와 리스너의 시대가 일치하지 않았을 때 발생하는 간극, 어쩌면 현재 상황의 원인인지도 모른다. 
 
김작가 대중음악평론가·일일공일팔 컨텐츠본부장(noisepop@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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