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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승진

(뉴스북)차단봉과 어리석은 판단

2022-04-12 22:23

조회수 : 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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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동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지하철 에스컬레이터에서 추락해 숨졌다는 소식을 듣고 A씨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A씨가 사고가 난 지하철 역과 가까운 곳에 직장을 다니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역시 전동휠체어를 타는 장애인으로, 저는 며칠전 취재차 그의 출근길을 함께했습니다.
 
A씨는 전화를 받지 않았습니다. 차츰 마음이 초조해졌습니다. 그가 지하철 엘리베이터 앞에서 사람들에게 자리를 양보하기 위해 뒤에 물러서 있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그에게는 엘리베이터를 탈 우선권이 있는데, 매번 뒤에 섰습니다. 이유를 물으니 그는 씨익 웃으며 “휠체어가 너무 커 사람들이 불편해 하잖아요”하고 나지막하게 말했습니다. 주변 사람들은 그의 휠체어를 힐끔힐끔 보면서도, 양보하지는 않았습니다.
 
에스컬레이터에 차단봉이 설치된 것은 전동휠체어를 타고 오르는 일이 그리 드문 게 아니라는 걸 증명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몇몇 장애인들은 엘리베이터 이용이 원활하지 않으니 급한 마음에 에스컬레이터에 오르게 된다고 말합니다. 휠체어를 타도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는 게 쉽지만은 않습니다. 전동휠체어가 에스컬레이터를 타는 건 몹시 위험하지만 100% 사고로 연결되는 것도 아닙니다.
 
서울 서대문구 신촌동 자치회관 앞 진입계단에 설치된 2단 상하행 에스컬레이터. (사진=뉴시스)
 
사고 역사는 ‘민자역사’로 서울교통공사가 아닌 서울메트로의 관할입니다. 이 때문에 서울시는 안전장치 설치가 원할하지 못했다고 주장합니다. 반면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비겁한 핑계”라고 말합니다. 사고가 나면 죽음으로 이어질 걸 알면서도 서울시가 돈 핑계를 대며 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일각에서는 에스컬레이터를 탄 장애인이 ‘어리석은 판단’을 했다고 몰아세우기도 합니다. 왜 엘리베이터를 놔두고 그런 선택을 했냐는 거죠. 하지만 마음이 바쁠 때, 위험하지만 지름길을 택한 적이 없었던가요? 늘 횡단보도를 찾고, 빨간불에서는 멈추고, 평생 작은 울타리도 뛰어넘지 않았던 사람은 몇이나 될까요?
 
국가는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할 책임이 있습니다. 이는 국가와 시민의 약속입니다. 시민들은 국가에 인신구속 권한을 넘기고, 국가는 이에 시민을 보호할 의무를 지게 됩니다. 만약 국가가 죽음을 막을 방법이 있는데도 이를 시행하지 않았다면 계약을 위반한 겁니다. 그렇다면, 빠른 길을 택한 자와 돈 때문에 신뢰를 무너뜨리고 약속을 지키지 않은 자, 이 둘 중 누구를 어리석다고 불러야 할까요?
 
수차례 전화와 문자에도 A씨는 답이 없었습니다. 떨리는 마음으로 그의 직장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A씨의 직장 동료가 전활 받았고 저는 A씨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닌지 물었습니다. A씨의 직장 동료는, 무척이나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지금 옆에 있에 있어요, 멀쩡히 잘 있는데요? 아아, 일하느라 핸드폰을 못 봤나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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