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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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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1부장 이승형입니다
(이승형의 세상만사)'양들의 침묵'…자멸로 가는 일본

2022-04-04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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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지난달 출간돼 큰 반향을 일으킨 책이 있다. 일본 원로 경제학자 노구치 유키오(81) 국립 히토쓰바시대 명예교수가 쓴 '일본이 선진국에서 탈락하는 날'.
일본이 지난 50년간 선진국의 지위를 누렸지만, 20년 뒤에는 개발도상국 수준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내용이 책의 골자다. 노구치 교수는 그 근거로 1인당 국내총생산(GDP) 추이를 들었다. 그는 "아베노믹스 이전 시기에 일본의 1인당 GDP는 명목 수치에서 한때 미국보다도 많았고 한국에는 커다란 격차로 앞서 있었지만, 이제는 상황이 바뀌었다. 아베노믹스 기간 중 일본은 미국 수준에서 한국 수준으로 떨어지고 말았다"고 말했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13일 오전 도쿄의 한 호텔에서 열린 제89회 자민당 당대회에서 연설하고 있다.(사진·도쿄=연합뉴스)
2000년 일본의 1인당 명목 GDP는 3만 9172달러로, 미국의 3만 6317달러보다 8% 가량 높았다. 그러나 2020년에는 4만 146달러로, 미국 6만 3415달러의 63%에 불과하다. 20년간 미국은 74.6%의 GDP 증가율을 보인 반면 일본은 1.4% 늘어난 데 그친 탓이다. 이에 따라 2000년 일본의 3분의 1 수준이었던 한국의 1인당 GDP는 2020년 3만 1496달러로, 78%까지 따라잡았다. 
노구치 교수는 이런 추이가 지속되면 2030년쯤 일본의 1인당 GDP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불과 8년 뒤면 일본은 더 이상 선진국이 아니라는 말이다.
나아가 20년 뒤에는 1인당 명목 GDP가 한국 8만 894달러, 일본 4만 1143달러로 한국이 2배 가까이 앞설 수 있다고 전망했다.
미국과 함께 G2라 불릴 정도로 한때 세계경제를 호령했던 일본이 이 지경까지 이르게 된 원인은 무엇일까. 노구치 교수는 80년대말 버블경제 붕괴 후 일본이 '아무 것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이런 상황에서 일본인은 과거를 반성하고 현재를 바꾸려고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 것인가"라고 반문한다. 결국 그의 말은 지난 30년간 정체돼 있는 일본으로 귀결된다. 굳이 초고령층 사회에 진입했다는 사실을 상기하지 않더라도 일본은 활기를 잃은 것이 분명하다.
노구치 교수는 딱 꼬집어 말하지 않았지만 가장 큰 원인은 다름아닌 '정치'다. 일본 정치는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지역구 세습, 정언유착의 폐단과 맞물려 우경화의 길로 가고 있다. 자유민주당(자민당) 독재 체제가 더욱 공고해지는 가운데 새로운 정당과 인물의 탄생을 기대하는 일이란 하늘의 별따기다. 일본은 겉으로는 정부, 의회, 사법부 등의 조직은 갖췄으나 민주주의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내년에 일선 학교에서 사용되는 것을 목표로 일본 문부과학성에 검정을 신청한 일본 고교 교과서에 한국 영토인 독도가 '다케시마'(竹島·일본이 주장하는 독도의 명칭)로 표기돼 있다. 지난달 29일 문부과학성의 검정을 통과한 지리총합(1종), 지리탐구(3종), 지도(1종), 공공(1종), 정치경제(6종) 교과서는 모두 독도가 일본 "고유 영토"라는 주장을 담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 가운데 다수는 한국이 "불법 점거"하고 있다고 표현했다. (사진·도쿄=연합뉴스)
여기에 더해진 일본 시민들의 후진적 민주주의 의식은 치명적이다. 이것이 일본의 이른바 '사이비 민주주의'를 낳고, 키워준 토양이다. 일본인들은 여전히 봉건사회를 살고 있다. 국민이 국가에 무조건 복종하는 사회에 머물러 있다. 일부 지식인들의 목소리를 빼면 사회를 복종심과 정치에 대한 무관심이 지배하고 있다.
그 좋은 예를 지난 2019년 7월 참의원 선거에서 찾아볼 수 있다. 당시 효고현 선거구 개표 결과 투표를 한 사람보다 투표용지가 21표나 많았다. 누가 봐도 부정선거였다. 그러나 선거관리위원회는 "설명할 수는 없지만 어쩔 수 없다"며 개표 결과를 확정했다. 한국이나 유럽이었다면 규탄시위라도 벌어졌을 큰 사건인데도 아무 일 없다는 듯 넘어갔다. 이런 사건들은 일본에서는 비일비재하다. 이렇게 투개표 부정이 발각돼도 뭉개고 지나간다. 거짓으로 주소 이전하고 부정투표하는 일도 다반사다. 
그런데 일본인들은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 '양들의 침묵'이다. 정치가 또는 경제가 왜 이 모양이냐고 따지는 언론도, 시민도 없다. 그러니 정치인들도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 아무도 아무것도 하지 않으니 아무 일 없이 넘어간다. 일본은 정치가 엉망이면 모든 것이 엉망이 된다는 모범적 사례를 보여주고 있다. 우리에게는 반면교사가 아닐 수 없다. 
지난주 일본은 또 우리나라를 향해 도발했다. 독도도 그렇고, 역사교과서도 그렇다. 눈길을 끄는 것은 일제강점기를 기술한 부분이 해를 거듭할수록 그 왜곡의 수위가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나마 있었던 일제강점기 조선인의 '강제연행'과 '일본군 위안부'라는 표현이 올해에는 빠졌다. 이런 식으로 슬금슬금 역사 왜곡을 넘어 역사 개조 수준으로 가려는 속셈이다. 자민당의 전범 후손들이 정치를 독점하고 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다. 
거짓말하는 교과서를 보고 자란 일본 학생들은 그것을 곧이 곧대로 믿을 것이다. 언젠가는 과거를 반성하고 사죄하는 일본인은 단 한 명도 없을지 모른다. 자신들이 일으켰던 끔찍한 과거의 만행을 모두 잊어버리는 일, 그것은 무서운 일이다. 히틀러의 나치 독일이 그러했다. 사양길에 접어든 경제와 극우 정치, 왜곡된 역사관을 가진 시민들이 결합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를 일이다. 
우리는 항상 극도로 경계해야 한다. 정부와 시민사회가 모두 나서서 눈을 부릅뜨고 지켜봐야 한다.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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