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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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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1부장 이승형입니다
(이승형의 문화다방)선거 트라우마를 겪는 사람들을 위한 소설 5선

2022-03-17 16:41

조회수 : 5,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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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가 끝났다. 
자신이 찍지 않은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후유증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제법 많다.  
뉴스도 보기 싫고, 정치 이야기는 더더욱 싫다.
이럴 때 일수록 그동안 미뤄왔던 취미생활에 충실한 것이 여러모로 정신건강에 도움이 된다.
특히 혼자 하는 취미가 좋다. 선거에 쏟아부었던 공력을 회복하자. 운동도 좋고, 독서도 좋다. 
혹시 소설을 읽어보기로 결정한 사람들을 위해 5편의 책을 추천한다. 소개할 작가들은 모두 자신만의 일가를 이룬 소설 장인들이다.
  
백번 천번을 읽어도 결코 질리지 않을 소설 첫 번째는 미국의 여류작가 애니 프루의 ‘시핑뉴스’.
영화 ‘브로크백 마운틴’의 원작자이기도 한 애니 프루는 가난하고 고독한 이들의 이야기를 세밀화처럼 그려낼 줄 아는 몇 안되는 작가들 중 한명이다.  
'시핑뉴스'는 가난한 한 가족이 행복을 찾아가는 과정을 담은 성장기다. 
시어를 능가하는 탁월한 표현력, 긴 호흡으로 주제를 이끌어가는 힘, 입체적으로 살아있는 등장인물들, 철저한 취재와 고증을 바탕으로 한 생명력 넘치는 문장.
블랙코미디식 유머와 페이소스는 덤이다.
두 번째 소설은 일본 작가 아사다 지로의 '칼에 지다'.
아사다 지로는 타고난 이야기꾼이다. 소설마다 주제와 소재가 다채로워서 같은 사람의 작품이 맞나 싶을 정도다. 
근세에서 현대까지 아우르며 그 시대를 살아간 인물들의 애환을 가감없이 묘사한다. 그는 영화 '철도원'의 원작자이기도 하다. 
가난한 사무라이의 생애를 그린 '칼에 지다'는 어른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답을 던진다. 눈물이 절로 나는 가족애가 주는 감동이 제법 묵직하다.
영화 '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의 한 장면. 마르케스의 소설을 영화화했다. (사진=무비꼴라쥬)
세 번째 소설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
마르케스는 근현대 세계 소설 역사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작가다. 
마술적 사실주의라고 부르는 그의 문예사조는 숱한 후배 작가들을 탄생시켰다. 
한국인이 좋아하는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도 그에게 많은 빚을 졌다. 노벨문학상은 거저 받는 것이 아니다. 
일종의 자전적 소설 성격을 지닌 '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은 90살 노인의 이야기다. 영화화됐지만 소설보다 못하다.
마르케스 특유의 문장을 밑줄 그으며 읽는 것만으로도 큰 즐거움이 될 것이다. 
'성당의 종소리가 7시를 알렸을 때 장밋빛 하늘에는 아주 밝은 별 하나만이 떠 있었다. 배는 처량한 작별의 고동을 울렸다.
그러자 나는 내 사랑이 될 수 있었으나 그러지 못했던 모든 사랑들로 목이 메였다.'  
네 번째 소설은 척 팔라닉의 '다이어리'.
척 팔라닉을 모른다면 영화 '파이트클럽'을 봐라. 그가 원작자다. 브래드 피트와 에드워드 노튼의 연기도 일품이다. 
그는 소설에 자본주의 사회 밑바닥 인생들을 가차없이 등장시켜 충격을 선사하는 작가다. 마약쟁이, 창녀, 난봉꾼, 건달, 사이비교주들이 스스럼 없이 주인공이 된다.
그의 문장은 그대로 '날 것'이다. 불결하고 발칙하다. 
'다이어리'는 '고통없는 예술은 없다'는 인식에서 그려낸 소설이다. 출판사 서평을 빌리자면 '탐욕으로 가득 찬 세상을 비트는 음울한 동화'란다.
마지막으로 다섯 번째 소설은 헝가리 여류작가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존재의 세가지 거짓말'.
아무 생각없이 읽었다가 어리둥절하게 빠져들게 되는 작품이다. 소설가 신경숙, 김연수 등 많은 명사들도 이 책을 필독도서로 꼽았다고 한다. 
작가의 문체는 건조하다. 기교 따위는 보이지 않는다. 감정 표현이 거의 없는데도 모든 감정이 전달되는 문장이다.    
그래서 더 슬프다. 전쟁이라는 최악의 고통을 담담하게 그려낸다. 너무 담담해서 더 슬프다.
'그렇죠. 책이야 아무리 슬프다고 해도, 인생만큼 슬플 수는 없지요.'
  • 이승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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