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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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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1부장 이승형입니다
(이승형의 세상만사)'가벼운 시대'의 넋두리

2022-03-14 16:48

조회수 : 5,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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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무거운' 시대가 있었다. 아날로그라 부르던 시대. '라떼는 말이야'라는 말로 꼰대들이 기억을 소환하던 시대. 멀고 먼 옛날이 아니다. 스마트폰이 없었던 80~90년대 이야기다. 
그때에는 눈으로 실체를 확인하고 손으로 질감을 확인했다. 지폐와 가상화폐의 차이랄까.
SNS라고 부를 만한 것도 없어서 타인들에 대한 관심은 통화를 하거나 직접 만나 대화를 통해 풀었다.
세상에 대한 정보 역시 방송이나 신문을 통해 얻었다.  
개인 차가 있겠으나 교류의 창구가 적다보니 지금에 비해 인간관계의 폭은 좁았다. 하지만 그 깊이는 더 깊었던 것 같다. 관계의 의미가 좀더 '진했다'고나 할까.  
 
무겁다는 것은 느리고 단순하다는 뜻이다. 하나의 관계를 만드는 데 품은 많이 들지만 더 오래 간다.
물론 당시에도 쉽게 만나 쉽게 끊어지는 인연 또한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지금만큼은 아니었던 것 같다. 무겁다는 것은 불편함을 뜻하기도 한다. 가령 제때 연락하지 못해 바람 맞은 청춘들이 많았다. 비맞으며 하염없이 기다리던 첫사랑에 대한 기억 하나쯤은 있었다는 말이다.
무겁다는 것은 무섭다는 뜻이기도 하다. 군부독재와 그 잔여물들이 횡행하던 시절에는 말도, 글도 움츠러들었다. 무거운 것은 그것이 좋든 싫든 추억을 부른다. 굳이 별그램에 사진 한 장 남기지 않더라도.
영화 '그녀'의 한 장면, (사진=(주)더쿱)
      
세상은 바뀌었다. 지금은 모든 게 솜털처럼 가볍다. 말도, 글도 온라인이라는 허공에서 부유한다. 음악도, 영상도 그렇다. 액정 화면 속 활자화하지 못한 수많은 글이 흩어지고, 찰나의 순간에 다른 글로 대체됐다 또 그렇게 사라진다. 책과 음반에는 뽀얀 먼지만 쌓인다. 책갈피를 넘기고, LP를 닦던 정성과 보람은 개인의 독특한 취미가 됐다. 소장보다는 소비가, 소비보다는 소멸이 더 활발한 시대.
 
그 중심에 스마트폰이 있다. 개인 생활의 거의 모든 것이 이 안에서 이뤄진다. 의식주는 물론 대부분의 인간관계도 이 안에서 해결한다. 
여기에서는 평생 만나본 적도 없는 사람들이 친구라는 이름으로 존재한다. 이웃집 사람의 얼굴은 몰라도 SNS 친구들의 얼굴은 안다. 굳이 알지 않아도 될 누군가의 시시콜콜한 개인사까지 알게 되지만 그렇다고 '그 사람을 아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가볍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다.
 
뉴스도 그렇다. 가짜친구들처럼 가짜뉴스도 많다. 
우리는 대부분의 시간과 에너지를 가짜친구와 가짜뉴스를 생산하거나 분류하거나 소비하는 데 허비한다. 
 
가볍다는 것은 빠르고 편리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돈만 제대로 지불하면 편리한 일상을 제공받는다. 돈을 더 내면 더 편리해진다. 마치 그 옛날 극장 표를 사기 위해 줄을 서는 일이 싫어서 웃돈 주고 암표를 샀던 것과 비슷한 이치라 하겠다. 인공지능(AI)이나 메타버스의 시대도 멀지 않았으니 아마도 더 편리한 세상이 올 것이다.
 
그러나 편리가 곧 편안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아마도 몇몇 사람들은 이 세상이 편리하지만 결코 편안하지는 않다고 느낄 수도 있다. 
 
가까운 미래를 그린 영화 '그녀(her)'에는 AI를 이성으로 사랑하게 된 중년의 남자 주인공이 등장한다.
고독하고 불안한 현대인의 초상이다. 어떻게 실체도, 질감도 없는 가짜인간을 사랑할 수 있냐고 물을 수 있겠지만 지금 우리는 어떠한가. 누구든 영화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그래서일까. 최근 목격한 TV 광고는 왠지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광고에서는 홀로 사는 70대 어르신이 AI와 대화하며 "이제 외롭지 않다"고 말한다.  AI는 똑똑하다. 어르신의 심리를 파악하고 말을 건네니 사람보다 낫다. 가족들이 흩어지고 1인 가족이 봇물처럼 늘어나는 요즘, 광고에서 우리의 노년을 엿본다.
그런데 저러면 진짜 외롭지 않을 수 있을까. 공허하거나 허무하지는 않을까.
 
더 늦기 전에 조화로운 삶이 필요하다. 무거운 것과 가벼운 것의 조화 말이다. 느림과 빠름, 아날로그와 디지털, 오프와 온의 조화. 책상 앞에 앉아 손가락만 누르지 말고, 실제로 무언가를 직접 행하는 수고로움이 더 많아지면 좋을 일이다. 예를 들어 오래된 책장을 넘기는 일, 가족에게 손편지를 쓰는 일, 진짜 친구들과 춤을 추는 일 같은 것 말이다. 코로나 시대 세번째 봄은 그렇게 무겁고, 가볍게 맞이하면 좋겠다.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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