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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철

(시론)대선 후보의 사과와 책임

2022-02-1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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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와 일본의 외교 문제가 발생할 때 일본은 종종 유감이라는 표현을 사용해서 우리 국민의 화를 돋우곤 했다. 유감이라는 말의 풀이가 분분하지만, 유감이 사과와 동격이 아니기에 진정한 사과가 아니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유감은 “마음에 차지 아니하여 섭섭하거나 불만스럽게 남아 있는 느낌”이라고 한다. 엄밀하게는 죄송하다거나 잘못했다는 게 아니다. 속뜻을 풀이하자면 “이렇게 되어 안타깝다”라고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그 안타까움의 대상은 너희가 아니라 나로 해석될 수도 있다. 즉 “이렇게 되어 미안하다”로 볼 수도 있지만, “이렇게 되어 나도 속상하다” 정도로 비친다.
 
사과에는 먼저 잘못에 대한 인식에서 출발하고, 잘못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는 자세가 들어있어야 한다. 그런데 유감과 같은 자세는 문제를 더 키우는 결과를 낳는다. 유감에는 잘못에 대한 인식과 책임 의식이 들어있지 않기 때문이다.
 
유감이라는 표현을 가장 많이 사용하는 곳은 정치권이다. 정치권은 최대한 사과를 피하려는 문화가 있는 듯하다. 그 사람이 잘못으로 느끼는지, 그렇지 않은지 하는 근본적인 문제이니까 우리가 어쩔 도리는 없다. 그러므로 사과는 책임을 지는 자세인지 아닌지로 그 진정성을 평가해야 한다.
 
2월 15일부터 대통령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되었다. 앞으로 선거운동 기간에는 더욱 심해지겠지만, 지금까지만 해도 거대 양당의 대통령 후보들은 참 여러 번 사과를 해야 했다. 이번처럼 대통령 후보들의 사과를 여러 차례 목격하는 경우가 있었나 싶을 정도다. 심지어는 두 후보의 배우자들도 공식 석상에서 사과했다. 
 
거대 양당 두 후보의 사과 스타일은 좀 다른 듯하다. 이재명 후보는 사과를 신속하게 하는 편이고, 윤석열 후보는 사과에 늦는 편으로 평가받는다. 늦는 것보다는 빠른 게 좋기야 하겠지만, 신속하거나 늦음과 같은 사과의 적시에 대해서는 뭐라 평가하기가 어렵다. 그보다는 사과에서 중요한 건 앞의 두 가지, 잘못에 대한 인식과 책임 의식이 들어있는지가 중요하다.
 
그동안 두 후보의 여러 차례 사과를 보면 때로 사과가 책임이나 상황 회피로 사용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기도 한다. 그것이 빠른 사과이든 늦은 사과이든 마찬가지다. 엄중한 문제 제기에 빠르게 사과하는 자세도 그렇고, 마지못해 사과하겠다는 자세도 그렇다. 그 안에는 잘못에 대한 인식이나 책임을 지겠다는 의지보다는 사과할 테니 넘어가자는 투로 느껴진다. 진정성 있고, 과연 그런 사과를 진정성 있는 사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가벼운 사과에는 나에게 책임이 있지 않다는 인식이 들어있다. 혹은 그렇게 인식되기를 바라는 목적이 들어있다. 말에서는 “나에게 책임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에 대한 책임지는 모습이 이어지지 않는다면 그걸 진정한 사과라고 받아들일 수는 없다.
 
“부끄러워하면 죄가 된다.” 드라마 '철인 왕후'에서 순원왕후(배종옥 분)가 한 대사다.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면 죄가 되지 않는다는 취지의 말이었다. 그 대사를 듣는 순간 그동안 수많은 정치인을 비롯하여 권력형 비리를 저지른 이들이 왜 순순히 죄를 인정하지 않았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잘못은 인정하는 순간 잘못이 된다. 정치인들은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면 떳떳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래서 대부분 정치적 탄압이나 가짜뉴스로 인한 것이라고 말한다. 만약 열렬한 지지자에 둘러싸인 정치인이라면 더 순순히 잘못을 인정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어쩌면 잘못을 인정할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결국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책임지지 않는 정치인에 대해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것은 나라의 주인인 국민밖에 없다. 무슨 잘못을 했고, 어떤 사과를 하고 책임을 졌는지 꼼꼼히 기억할 때다. 
 
김한규 법무법인 '공간' 변호사·전 서울지방변호사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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