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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영

(차기태의 경제편편)'선진국' 한국의 전신거울

2021-10-27 06:00

조회수 : 5,6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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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드라마 '오징어게임'이 전세계를 정복했다.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오징어게임은 전세계의 넷플릭스 가입가구 2억여명 가운데 절반 이상이 시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해 영화 '기생충'에 이어 이번에 또다시 기념비 같은 성과를 이룩했다. 총이나 그 어떤 무기를 동원하지 않고 세계를 정복한 셈이다. 
 
한국 작품들의 빛나는 성취는 1차적으로 창작의 자유가 보장받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라고 여겨진다. 창작자들이 그 어떤 눈치와 간섭을 의식하지 않고 자유로운 상상력으로 작품을 완성한 것이다.
  
한국에서는 1987년 6월 항쟁을 통해 민주화가 성취됨으로써 상상력이 해방됐다. 그 이전까지는 모든 예술작품에서 알게모르게 작용했던 소재와 비평의 제한이 사라졌다. 덕분에 문화예술인들이 창의적인 예술정신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고대 그리스에서 병영국가였던 스파르타와 달리 아테네에서는 민주주의와 상상력이 자유롭게 꽃피웠다. 그 결과 철학과 수학 등의 학문과 연극 미술 등 우수한 문화예술작품이 활발하게 창작된 것과 비슷한 이치가 아닐까 한다. 
 
그렇지만 여건이 조성됐다고 우수한 작품이 탄생하는 것은 아니다. 궁극적으로는 문화예술인들이 시대의 흐름 흐름을 제대로 읽고 정직하게 작업했기에 열매를 맺은 것이다.
 
기생충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오징어게임 역시 한국의 심각한 빈부격차 속에서 분투하는 사람들의 애환과 좌절을 소재로 삼았다. 예술가들의 이런 창작태도는 진작부터 형성돼 있었다. 이를테면 황석영의 소설 <객지>,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공> 등이 1970~80년대 개발연대에 한국 노동자들의 현실을 소재로 쓰여졌다. 풍자나 비유가 아니라 정면으로 다룬 작품들이다. 풍자 형식으로 시대의 아픔을 다룬 작품들은 훨씬 더 많을 것이다. 
 
그것은 한국의 개발연대와 독재의 사슬을 끊어내고자 한 기나긴 노력의 일환이기도 했다. 기생충이나 오징어게임 등의 작품도 바로 이런 전통의 연장선상에 서 있다고 이해된다. 
 
필자 같은 저널리스트나 학자들은 객관적 사실을 파고들고 이를 담백하고 냉정하게 서술하는데 그친다. 이와는 달리 문화예술인들은 통해 자신의 상상력을 발휘하고 메시지를 담아 작품의 구성을 짠다. 오징어게임의 경우 우리가 어린 시절 즐겨하던 놀이를 끌어들인 것은 그야말로 탁월한 상상력이었다. 
 
지금 시대에 오징어게임이나 기생충 같은 작품이 나오게 된 데는 한국 사회의 난해한 현실이 깔려 있다. 이를테면 많은 가구가 반지하주택에 거주하고 있고, 급여생활자 10명 가운데 3명은 월 200만원 이하의 급여로 살아간다. 법정 최저임금도 받지 못하는 노동자가 지난해에도 300만명을 웃돌았다.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조사결과 2018~2019년 기준 한국의 상대적 빈곤율은 16.7%로 조사 대상 37개 회원국 중 4위로 나타났다. 전체인구 중 기준 중위소득의 50%에 미치지 못하는 인구의 비율이 대부분의 선진국보다 높다는 것이다. 
 
특히 지난해 코로나19 전염병 사태가 닥친 이후에는 이런 아픈 현실이 더욱 곪아들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극단적 저금리를 이용해 손쉽게 돈버는 자산가의 소득은 크게 늘어난 반면 비정규직이나 자영업자의 생활은 더 어려워졌다. 한국이 코로나19 방역을 잘했다는 국내외의 평가는 이들의 눈물과 한숨을 딛고 얻어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크나큰 좌절감을 느꼈을 것이다.
 
오징어게임에서도 다뤄졌듯이 이들의 부채증가가 특히 걱정된다. 자영업자 중 가장 소득이 낮은 1분위(소득 하위 20%) 대출잔액은 올해 1분기 기준 120조원으로,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4분기보다 27.6%나 늘어났다. 이같은 부채급증세는 늘어난 가계부채와 함께 앞으로 한국경제에 큰 부담을 줄 것으로 우려되기도 한다. 
 
기생충이나 오징어게임 같은 작품은 어디까지나 허구이다. 그렇지만 외면할 수 없는 한국 사회의 현실이 그대로 투영돼 있다. 말하자면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를 넘는 '선진국' 한국사회의 자화상이요 전신거울이다. 
 
작가와 출연배우, 감독을 비롯한 제작진 등은 작품을 만드는 것으로 자신들의 몫을 다했다.  이들의 노고와 작품의 작품성은 높은 평가를 받아 마땅하다. 그리고 작품의 메시지나 배경을 진지하게 성찰하고 대안을 찾는 것은 한국사회 구성원의 몫이다.
 
차기태 언론인(folium@nate.com)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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