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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율

(영상)"알맹이 빠진 '플랫폼 종사자법'…노동법서 되레 배제하는 격"

플랫폼 노동 당사자·시민단체, 입법 반대

2021-10-05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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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토마토 이선율 기자] 플랫폼들의 독점 지위 횡포를 두고 여야가 해결해야 할 문제로 주목하고 있는 가운데 시민단체가 현장의 목소리를 담은 실효성있는 법안 마련을 촉구했다.
 
라이더유니온·전국대리운전노동조합·웹툰노조·공공운수노조 택시지부·참여연대·민변 노동위원회 등 8개 시민사회단체는 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현재 국회에 상정된 '플랫폼종사자법'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배달 라이더, 대리운전 기사, 웹툰작가, 택시기사 등 플랫폼노동 당사자 단체와 시민사회단체가 5일 여의도 국회 앞에서 플랫폼노동자의 노동조건 개선과 권리 보장을 위한 실효성있는 대책을 촉구하는 내용의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이선율 기자
 
이들 단체는 "최근 카카오를 비롯한 플랫폼기업들의 독점적 횡포의 심각성이 사회문제가 되고 있으나 정작 플랫폼 노동 당사자의 목소리가 배제돼 있다"면서 "현재 국회에 상정된 '플랫폼종사자법'이 실질적으로 플랫폼노동자의 노동기본권을 가로막을 수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새로운 법 대신 플랫폼 노동자의 노동조건을 개선할 실질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플랫폼 종사자 보호 및 지원에 관한 법률안(플랫폼종사자법)은 근로기준법에 포함되지 못하는 플랫폼 종사자들을 보호하는 취지에서 만들어졌다. 라이더·택배기사·물류창고 일용직 등을 '플랫폼 종사자'로 규정하고, 서면 계약을 의무화화 하는 등 이들을 보호하는 내용을 담은 새로운 법안으로 지난 3월 더불어민주당 장철민 의원이 대표발의했다.
 
그러나 시민사회단체들은 플랫폼 노동자를 기존 노동법의 보호 아래 두는 방식이 아닌 별도 법률을 통해 구분짓고 있고 있어 제대로 보호받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단체는 "플랫폼종사자법은 플랫폼 노동자로부터 노동법을 빼앗고, 플랫폼 기업의 책임을 면제해주는 해롭고 위험한 법"이라며 "이 법의 추진을 중단하고, 플랫폼 노동에 노동법을 적용하며 이를 제도화하기 위한 입법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플랫폼 노동의 권리를 보호하려면 정부가 해야할 일은 무익하고 유해한 가짜 보호법을 만드는 게 아니라 플랫폼 기업을 통해 일하는 노동자에게 노동법을 적용하고 일하는 모든 사람이 보호받을 수 있도록 기존 노동법을 확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5일 열린 플랫폼노동 당사자 및 시민사회 기자회견에 참석한 김주환 전국대리운전노동조합 위원장이 카카오모빌리티의 불합리한 알고리즘 배차에 대해 지적하고 있다. 사진/이선율기자
 
현장의 플랫폼 노동자 단체들은 알고리즘의 불공정성을 바로잡는 일이 중요한데 현재 플랫폼종사자법에 이 내용이 빠져 있다는 점도 꼬집었다.
 
박정훈 라이더유니온 위원장은 "배달노동자들에게 중요한 이슈가 알고리즘인데, 플랫폼이 사용하는 알고리즘에 대한 정보접근권과 협상권을 부여하고, 배달노동자들의 최소한의 수익을 보장하며, 배달사업자에 대한 규제가 필요하지만, 플랫폼종사자법에는 이런 핵심 내용이 빠져 있다"면서 "현재까지 기업들은 영업기밀을 이유로 알고리즘 공개를 꺼리고 있다. 플랫폼 노동자들의 의견을 토대로 플랫폼종사자보호법이 아닌 근로기준법을 통해 노동자들을 보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주환 전국대리운전노동조합 위원장은 "카카오는 택시와 마찬가지로 대리운전기사들에게도 프리미엄, 프로서비스, 일반 등으로 차등을 둬 불공정 배차를 하고 있다"면서 "하루 수천번씩 바뀌는 알고리즘 로직과 이유에 대해 물어보면 카카오는 AI가 하는 일이라고 모른다고 한다. 하루 생계 벼랑끝에 내몰린 대리운전기사들은 울며 겨자먹기로 콜을 수행할수밖에 없다. 플랫폼 종사자들에게 노동기본권을 보장하는 것부터 법안 추진이 시작돼야 한다"고 거들었다.
 
김병철 웹툰작가노동조합 부위원장은 "웹툰의 경우 노출이 얼마나 되느냐에 따라 작가 수입이 10~100배까지 차이가 나는데, 현실적으로 인공지능이 아닌 사람의 손을 거쳐 운영되고 있다"면서 "카카오엔터테인먼트에 작가가 잘 보이지 못하면 수입이 아예 없을 수도 있는데, 카카오모빌리티와 별반 운영방식이 다르지 않다는 것에 놀라울 따름이다"라고 꼬집었다.
 
김 부위원장은 "작가가 수익을 내고 플랫폼과 중간 CP사에서 더 많은 수수료를 떼 줄 수 있는 계약을 하는 작가에게 기회를 더 주고, 저작권을 더 많이 양보하는 작가에게 광고와 연재 기회가 주어진다"면서 "플랫폼은 사회적 책임을 져야 한다. 사용자성이 강한 플랫폼과 단순 일자리 중개만 하는 플랫폼을 하나로 퉁친 이번 법안들은 더욱 비극적 현실을 가져올 것"이라고 한숨지었다.
 
전문가들은 플랫폼 종사자법에 속한 플랫폼 노동자들을 지칭하는 '종사자'를 용어자체가 노동법 영역에서 배제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기본적 권익을 위해 만들어진 취지와 다르게 근로기준법을 비롯한 노동법의 적용을 받지 못해 취업방해금지, 해고의 제한 등에 대한 보호를 받지 못한다는 설명이다.
 
범유경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노동위원회 변호사는 "이번 법은 플랫폼 노동자에게 플랫폼 종사자라는 새로운 이름을 부여하고, 노동자라는 말을 빼버림으로써 노동법과 플랫폼 노동자 사이에 벽을 세운다. 그렇게해서 플랫폼노동자들은 노동법 보호를 받지 못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범 변호사는 이어 "근로기준법의 취업방해금지, 해고의 제한, 중간착취 금지 등에 준하는 내용은 없어 문제가 생기면 노동자들이 근로자성을 스스로 입증해야 하는 어려움이 생길 수 있다. 미국처럼 입증 책임을 전환해야 한다"고 해결책을 제시했다.
 
이외에도 "법에서는 플랫폼 노동자가 대등한 지위에서 계약을 공정하게 체결해야 한다고 정하고, 계약 내용 변경이나 해지시 10일(변경) 혹은 15일(해지) 전에 서면으로 제공해야 한다고 정했지만 현실에서 플랫폼은 말을 듣지 않으면 곧바로 해고한다"고 꼬집었다.
  
이선율 기자 melody@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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