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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효선

(영상)당한 것도 억울한데 돈도 못 돌려 받아…두번 우는 사기피해자들

해마다 사기사건 급증…피해액 미회수 건수, 85% 이상

2021-07-2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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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토마토 박효선 기자] #. 경찰이 ‘가짜 수산업자’의 100억원대 범죄수익 몰수·보전 방안을 검토했으나 법적으로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다. 사기 등의 혐의를 받는 피의자가 범죄수익을 빼돌릴 수 없도록 기소 전 몰수·보전할 수 있도록 하는 ‘부패재산몰수법’은 다단계, 유사수신, 보이스피싱 등에만 적용되기 때문이다.
 
#. 피해 규모 각 1조5000억원 안팎의 라임, 옵티머스 피해자들은 수사 착수 1년이 훌쩍 지났지만 여전히 원금 회수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펀드 실사 후 코스닥 상장사, 비상장사, 부동산개발업체 등 부실 한계기업, 페이퍼컴퍼니 등에 돈이 흘러가 막대한 손실을 입은 것만 확인했을 뿐이다.
 
사기 사건이 해마다 늘어나며 수법은 날로 지능화되고 있다. 그러나 범죄수익을 환수한 사례는 드물다. 피해자가 피해액을 보전 받으려면 사기범 판결 확정까지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사기범은 재산을 빼돌리고, 수년간 피해자 속만 타들어간다.
 
최근 3년간 사기 피해 회수 현황. 출처/대검찰청
  
사기 피해액 대부분 회수 못해
 
법원행정처에 따르면 최근 3년간 기소된 사기·공갈 사건은 2018년 4만335건에서 2019년 4만3931건, 지난해 4만9826건으로 해마다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사기 피해액 회수 건수는 비교적 미미한 수준이다. 대검찰청 범죄분석 통계자료를 살펴보면 지난 4년간 사기 피해액 미회수 건수는 전체의 85% 이상을 차지했다. 2017년 16만6299건(89%), 2018년 17만8158건(87%), 2019년 19만3401건(85%)이다. 사기 피해자들은 대부분 피해액을 보전 받지 못하는 셈이다.
 
반면, 사기 피해액 전부회수 건수는 2017년 1만2800건(전체의 6.8%), 2018년 1만5800건(7.7%), 2019년 1만9487건(8.6%)에 머물렀다. 2분의 1이상 회수 사건은 2017년 1675건(0.9%), 2018년 1976건(0.9%), 2019년 2438건(1.1%)이었다. 2분의 1 미만 회수 2017년 6338건(3.4%), 2018년 8622건(4.2%), 2019년 1만2044건(5.3%) 등으로 집계됐다.
 
이토록 피해 보전이 어려운 이유는 현행법상 사기범 재산 몰수가 부가형이기 때문이다. 사기범에 대한 법원의 판결이 있어야 범죄수익 몰수·추징이 가능하기 때문에 피해자로서는 실형 확정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사기범은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제3자 등을 통해 재산을 은닉할 수 있지만, 피해자는 범죄자 판결 때까지 수년을 기다렸다 민사소송을 제기해도 정작 피해액을 돌려받지 못하는 이유다.
 
사기범들, 노역으로 때우면 끝
 
정웅석 한국형사소송법학회장(서경대 법학 교수)은 ”사기 범죄수익은 통상 제3자가 관리·보유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를 강제 추징할 수 있는 법이 없고, 사기범이 사망하거나 도주해 공소시효가 완성되면 부가형인 몰수조차 불가능해진다”며 “정작 사기범은 노역으로 벌금을 탕감 받을 수 있고, 일부 변제함으로써 쉽게 구속을 면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를 막기 위한 여러 특례법이 나왔지만 혼란만 유발할 뿐, 적용되는 사례도 거의 없다는 부연이다.
 
전 재산이 29만원이라던 전두환 전 대통령 재산 추징과 희대의 사기꾼 조희팔 사망 공식화 등이 대표적 사례다. 이른바 전두환 추징법이라는 공무원 범죄에 관한 몰수 특례법까지 시행됐지만 대법 판결 후 25년여가 지난 지금까지도 범죄수익 추징은 절반 남짓 이뤄졌다.
 
또 4조원대 유사수신 사기범 조희팔 사망이 공식화되며 피해자들은 피해액을 돌려받지 못했지만 공식 사망 확인 전 중국 등 해외에서 조희팔 목격담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법무법인 대건 한상준 변호사는 “사기범들의 범죄수익 은닉 수법은 갈수록 더욱 교묘해지는데 반해 피해자들을 위한 몰수·추징 조치 관련 법안은 실효성이 많이 떨어진다”며 “부패재산몰수법의 경우도 피해 규모가 크더라도 피해자 수가 적으면 적용이 불가능하고, 그 기준도 모호하다”고 꼬집었다.
 
한 변호사는 “결국 피해자들이 피해액을 보전 받으려면 피의자 실형 확정 후 민사소송(손해배상소송) 절차를 거칠 수 밖에 없는데 그 사이 사기범들은 시간을 벌어 재산을 은닉할 수 있다”며 “이 때문에 피해자들이 피해액을 보전 받는데 상당한 어려움을 겪을 수 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특례법, 혼란만…‘독립몰수제’ 도입해야”
 
법조계와 학계에선 실질적인 범죄수익 환수가 이뤄지려면 부패재산몰수법 등과 같은 특례법이 아닌 ‘독립몰수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독립몰수제는 범죄자의 해외 도주나 사망 등으로 형사재판을 할 수 없거나 판결이 나오지 않아도 민사재판으로 범죄수익을 몰수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김대근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사기범들은 수사기관보다 한발 빠르게 재산을 관리하다 보니 현행법상 부가형으로 이뤄지는 재산 몰수는 취약점이 너무 많다”며 “부패재산몰수법과 같은 특례법 형태가 아닌 독립몰수제를 도입해 범죄수익 은닉을 사전에 막는 방안이 매우 필요하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정웅석 학회장은 “유죄 확정 판결 때까지 기다리는 부가형이 아닌 공소 제기한 상태에서 빠른 시일 내 재산을 몰수 할 수 있도록 하는 ‘독립몰수제’를 도입해야 한다”며 “혼란만 유발하는 특례법이 아닌 ‘독립몰수제’를 도입하고 관련 전문기구 설립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전문가들 “몰수 전담 기관 설립 필요”
 
주요 선진국들은 범죄수익 몰수를 위한 제도적 기반을 구축해 운영하고 있다. 특히 유럽국가들은 스위스 등 조세회피처 문제가 부각되며 범죄수익 은닉 가능성을 고려해 몰수·추징 가능 범위를 높이고, 몰수·추징 대상 입증 책임도 완화했다. 금융경제범죄 수사의 경우 대체로 부패수사, 특히 정치권 부패범죄수사와 연루돼 있다는 점을 전제로 한다.
 
반면 사기 사건이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것으로 알려진 한국은 무죄추정원칙에 맞춰 범죄수익 몰수를 최종 유죄판결 후 부가형으로서 규정하고 있다. 이 때문에 수사기관의 몰수·추징 대상 입증 책임 부담도 비교적 크다. 최근 경찰이 ‘가짜 수산업자’ 재산 몰수를 법리적 이유를 들어 포기한 까닭이기도 하다.
 
정 학회장이 제시한 프랑스 ‘몰수청(AGRASC)’은 금융 범죄수익 몰수를 전담하는 별도 기관이다. 금융범죄 관련자들의 인적사항 등을 확인하기 위해 유럽연합 회원국 징수당국과 협력하며 ‘특별행정기관’으로서 범죄수익 환수에 집중한다. 국내에 이 같은 몰수 전담 기관이 필요하다는 게 정 학회장의 주장이다.
 
정 학회장은 “(사기범에 대한) 처벌이 강화되더라도 피해 회복이 없다면 그게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며 “피해자를 위한 제도적 뒷받침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연구위원도 “사기꾼들은 사기를 치면서도 중간에 변호사 등의 도움을 받아 처벌을 최대한 피하면서도 재산 은닉 등의 방법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며 “독립몰수제 관련 정부 당국의 면밀한 피해 회복 방안과 사기범 신상공개 등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효선 기자 twinseve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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