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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훈

(토마토칼럼)조두순은 그날 마트에 가지 않았다

2021-07-1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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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초 어느 금요일 오전 포털 사이트가 떠들썩했다. 여자 어린이를 성폭행한 혐의로 복역한 후 출소한 조두순이 마트에 술을 사러 왔다는 내용의 기사들이었다. 한두 기사가 아닌 다수의 기사가 포털에 올랐다. 출처를 확실히 알 수 없는 사진, 더구나 당사자가 누군지 확인되지 않았던 상황이기에 만약 사실이 아니라면 하루를 넘기지 못할 사안이라고 직감했다. 대다수 언론은 그렇게 판단하지 않았던 것인지 기사량은 폭증했다. 
 
결국 사진 속 인물은 조두순이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관계 당국의 공식적인 확인이 이뤄지고 나서야 사실이 바로잡혔다. 예감대로 금요일의 이슈는 주말엔 거의 자취를 감췄다. 단 하루도 넘기지 못할 이슈에 언론은 그렇게 반응했다. 물론 사진 속 인물이 실제로 조두순이었다면 단순히 처리될 사안이 아니다. 하지만 사진 속 실제 당사자 측의 호소가 있을 정도로 언론은 관행대로 받아서 썼다. 언론은 지금도 종종 그렇게 한다.
 
법무부가 '형사사건 공개금지 등에 관한 규정'을 개정한다고 한다. 이 규정은 검찰이 수사 중에는 혐의 사실, 수사 상황을 비롯해 형사 사건 내용 일체를 공개할 수 없도록 하는 내용을 담아 지난 2019년 12월부터 시행됐다. 이에 따라 형사 사건이 비공식적인 경로로 보도가 되면 규정 위반이 되고, 피의사실공표죄가 된다. 법무부 장관은 죄명부터 적절치 않다면서 유출, 누출, 누설이란 표현을 제시했다. 
 
규정 시행 이후 1년8개월여 기간 피의사실이 유출되지 않았을까. 독자의 편의를 고려해서인지 때로는 '단독'이란 단어가 제목에 덧붙여 보도되고, 다른 언론은 관행을 따른다. 독자만을 위한 편의는 아닌 듯하다. 마트에 술을 사러 온 인물이 조두순이 맞는지 아닌지는 우선이 아닌 것처럼 대부분 피의사실이란 판단에 앞서 주저 없이 받아서 쓴다. 이 경우 "알고 보니 조두순이 아니었다"는 해프닝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범죄에까지 이를 수 있다.
 
어떤 규정이라도 제정될 때부터 완전할 수 없다. 형사사건 공개금지 등에 관한 규정도 예외는 아니다. 이 규정이 구현하려는 목적인 사건관계인의 인권 보호와 국민의 알 권리 보장을 모두 충족하려면 앞으로 몇 차례 개정을 반복할 가능성도 충분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규정이 얼마나 잘 지켜지는지다. 규정은 계속해서 보완이 필요해 개정되는데,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면 유명무실해질 수밖에 없다. 전신인 인권보호를 위한 수사공보준칙부터 형사사건 공개금지 등에 관한 규정 역시 사문화됐다는 지적을 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피의사실 유출에 관한 범죄는 단독으로 성립될 수 없다. 검찰을 비롯해 경찰,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등 수사기관과 언론이 공모해 발생한다. 여기서 규정이 여전히 지니고 있는 미비함을 지적하는 것은 언론의 의무지만, 언론 스스로 규정과 무관하지 않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동안의 관행을 그대로 유지한다면 규정을 무력화하는 것뿐만 아니라 규정을 지적할 자격에 대한 의심도 사게 될 것이다. 그날 마트에 술을 사러 간 사람은 조두순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정해훈 법조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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