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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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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범종입니다.
강제징용 손배소 각하 근거, 한일합의 뭐길래

2021-06-11 03:00

조회수 : 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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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토마토 이범종 기자] 이번주 법원이 때아닌 친일 논란에 휩싸였습니다. 강제징용 피해자와 유족 85명이 일본제철 등 16개 기업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가 각하됐기 때문입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4부(재판장 김양호)는 지난 7일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소송을 통한 개인 청구권 행사는 제한됐고, 일본 기업의 손해 배상을 인정할 경우 국제법을 어기게 된다'는 논리로 원고의 청구를 각하했습니다. 일본 기업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한 2018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선고를 정면으로 부정했습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김양호 판사를 탄핵하라는 청원이 등장했고, 현직 법관과 변호사들의 비판이 줄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이번 각하 근거가 된 '한·일 청구권 협정'은 무엇이고, 이에 대한 법원의 판단 근거는 무엇인지 궁금해집니다.
 
이 협정의 정식 명칭은 '대한민국과 일본국간의 재산 및 청구권에 관한 문제의 해결과 경제협력에 관한 협정'입니다. 1965년 12월 18일 두 나라에서 발효됐습니다.
 
당시 양국은 상대 국민의 재산과 청구권 문제를 해결할 것을 희망한다며, 협정문 1조에서 일본이 한국에 1080억엔 가치에 해당하는 미화 3억달러를 10년간 무상 제공하기로 했습니다. 2억달러에 달하는 차관도 저리에 주기로 했습니다.
 
문제는 협정문 2조를 둘러싼 해석입니다. 여기에는 "양 체약국은 양 체약국 및 그 국민(법인을 포함함)의 재산, 권리 및 이익과 양 체약국 및 그 국민간의 청구권에 관한 문제가 1951년 9월 8일에 샌프란시스코시에서 서명된 일본국과의 평화조약 제4조(a)에 규정된 것을 포함하여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이 된다는 것을 확인한다"고 적혀있습니다.
 
이번 재판부는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에 이번 손해배상 청구도 포함된다고 봤습니다.
 
먼저 2018년 10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단을 살펴보겠습니다. 당시 재판부는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신일철주금 주식회사를 상대로 낸 1억원 위자료 지급 소송 재상고심에서 원고 승소 판단한 원심을 확정했습니다.
 
당시 다수 의견을 낸 대법관 7명은 원고의 손해배상 청구권이 이 협정 적용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판단했습니다. 일본 정부의 불법적인 한반도 식민지배·침략전쟁과 직결된 일본 기업의 반인도적인 불법행위를 전제로 하는 위자료청구권은 협정 적용 대상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당시 재판부는 청구권 협정이 일본의 불법 식민지배에 대한 배상 청구 협상이 아니라, 샌프란시스코 조약에 따라 양국 간 재정적·민사적 채권·채무관계를 정치적 합의로 해결하기 위한 것이라고 해석했습니다.
 
청구권 협정문이나 부속서 어디에도 일본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언급하는 내용은 없다고도 했습니다.
 
협상 과정에서 일본 정부가 식민 지배 불법성을 인정하지 않은 채 강제동원 피해의 법적 배상을 원천 부인한 점도 손해배상 근거가 됐습니다.
 
중앙지법 민사합의34부가 따른 논리는 권순일·조재연 대법관의 반대의견입니다. 두 대법관은 원고들 개인의 청구권 자체가 소멸되거나 포기되지 않았지만, 일본이나 일본인 상대 소송으로 권리행사하는 일은 제한된다고 봤습니다.
 
이들은 한국 정부가 협상 과정에서 일본 측에 강제동원에 대한 피해보상금을 제시했고, 1965년 협정 체결 직후 해설서를 통해 피징용자 미수금과 보상금 등에 대한 각종 청구 등이 소멸됐다고 설명한 점도 반대 의견 근거로 들었습니다.
 
민사합의34부가 공분을 산 이유는, 여기서 더 나아가 일본의 한반도 식민지배가 불법인지 판단한 것이 단지 국내법적 해석에 불과하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재판부는 "제국주의 시대에 강대국의 약소국 병합이 국제법상 불법이라는 주장은 오늘날 국제사회에서 실정법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라며 "국제법을 제국주의 침략이라고 비난한 소련마저도 동유럽 약소국을 강점한 사례 등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국제법 위반으로 향후 일본의 중재절차와 국제사법재판소로의 회부 공세와 압박, 국제법 위반에 따른 패소 시 위신 추락, 미국과 관계 훼손에 따른 헌법상 '안전보장' 훼손 가능성 등을 제시하기도 했습니다.
 
한·일협정으로 일본이 제공한 돈이 경제성장의 바탕이 됐다는 취지의 글이 적히는 등 철저히 일본의 관점에서 판결문을 썼다는 비판이 거셉니다.
 
이를 두고 황병하 광주고등법원장은 9일 법원 내부 게시판에서 '힘으로 다른 나라를 합병하는 문제는 약육강식의 '사실'문제일 뿐, '규범'의 영역이 아님에도 국제법상 불법인지 여부를 따지는 것은 난센스'라는 취지로 비판했습니다.
 
양국 간 조약을 국내법적 해석으로 뒤집으면 배엔나협약과 국제법상 금반언 원칙 위반이라는 판단에 대해서도, 강제노역 손해배상은 이론적 근거인 불법행위 성립 여부를 따지는 것이어서 국내법에 따라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사람을 강제로 일하게 하고 정당한 대가를 주지 않았다면, 국내법이든 국제법이든 '법질서'에 위반되고, '불법행위 법리'는 문명국 모두에 적용되는 '법의 일반원칙'이어서 국제적으로도 인정되는 규범이라는 설명도 했습니다.
 
법조계에서는 이미 대법원이 법리를 형성해서, 상고심에서 다른 판단이 나올 것으로 내다봅니다.
 
지난 8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등록된 '반국가, 반민족적 판결을 내린 김양호 판사의 탄핵을 요구합니다'는 10일 오후 8시 기준 참여인원 27만7300여명에 달합니다. 이미 참여인원 20만명을 넘겨, 정부의 답변 대상입니다.
 
김양호 판사의 탄핵을 요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 사진/청와대 누리집 화면
 
이범종 기자 smile@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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