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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등용

(시론)촛불혁명을 문화혁명으로 발전시키는 청년의 힘

2021-06-08 06:00

조회수 : 4,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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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재보선 이후에 우리 사회의 가장 큰 화두로 청년이 떠올랐다. 선거판을 뒤흔드는 영향력을 행사한 청년층의 마음을 사로잡으려는 정치권의 노력이 애처로울 만큼 치열하다. 대선 후보를 꿈꾸는 유력 정치인들은 청년들에게 경제적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공언한다. 처음에 1000만원에서 시작해 1억원까지 올라간 상태다. 청년소득, 청년주택, 청년인턴, 청년일자리 등의 선심성 대책도 쏟아지고 있다. 그러나 이런 지원 정책은 청년들로부터 외면받을 뿐더러 오히려 반감만 사고 있다. 
 
청년 정책이 호응을 받지 못하는 근본적 이유는 복지 관점에서 청년을 접근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청년 정책은 청년을 빈민층으로 보는 것에서 출발해 정부 지원으로 끝난다. 이름만 ‘청년’을 갖다 붙였지 빈민층이면 누구나 필요한 지원방안만 나열하는 것이다. 청년을 구호 대상으로 보는 순간 청년 정책은 엇박자가 날 수밖에 없다. 
 
우리 현대사의 변화 주체는 청년이다. 4·19의거에서 6·29 민주화 선언 그리고 촛불혁명에 이르기까지 청년이 전면에 나서 이룩한 쾌거다. 현재 청년들이 시작한 혁명은 길거리나 대학가가 아닌 직장에서 벌어지고 있다. 입사 경쟁률이 100대1이 넘는 꿈의 직장인 국가 대표급의 대기업과 벤처기업에서 청년 직원들에 의해 기업 문화가 변하고 있다.  
 
올해 초 SK하이닉스에서 직원들이 성과급을 놓고 강한 불만을 표시했다. 작년에 우수한 실적을 거뒀는데 직원들에게 주는 성과급이 경쟁사에 비해 작다는 것이다. 직원들보다 임원의 성과급이 높은 것에 대해서도 이의를 제기하며 지급 기준을 밝히라고 요구했다. 이에 그룹 총수가 본인의 성과급을 포기하고 직원들에게 나눠주겠다고 했지만 불만은 가라앉지 않았다. 
 
사상 초유의 일이다. 누구나 선망하는 대기업의 직원들이 급여나 근로 조건이 아닌 성과급을 갖고 따진 것이다. 이전에는 감히 입 밖에 내지 못한 총수와 임원의 성과급을 가지고 말이다. 주면 좋지만 안 줘도 그만인 성과급이 작다 많다라고 따지는 일은 과거에 상상도 할 수 없었다. 현대차는 기존의 노조가 생산직 노동자의 권익만을 대변한다고 사무직 직원들이 별도의 노조를 구성하기도 했다. 사측과 노조의 기득권에 대한 공식적 반발이다. 이런 변화에 화들짝 놀란 삼성전자는 사장단이 젊은 직원들과 소통의 자리를 마련하고 조직문화 혁신을 강조했다. 
 
높은 연봉을 자랑하는 선도적 IT기업인 카카오도 불공평한 복지 혜택으로 진통을 겪고 있다. 고성과자에게 격려 포상으로 서울 시내 호텔 숙박권을 부여하는 것에 대해 성과 책정 근거가 불분명하다고 직원들이 문제삼았다. 포상 자체보다는 기준을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는 것에 대한 불만이 컸다. 
 
네이버도 직장내 갑질 사고가 불거지면서 홍역을 치르고 있다. 지난 달에 상사의 폭행과 폭언을 견디지 못한 직원이 극단적 선택을 하면서 폐쇄적이며 경직적 기업문화가 도마 위에 올랐다. 경영진이 직장 내 괴롭힘을 소홀히 대처했다는 비판이 일자 최고운영책임자(COO)와 관련 임원이 업무 정지 처분을 받기도 했다. 무신사와 같은 유니콘 벤처도 섬세한 청년 문화를 무시했다가 창업자가 물러나는 곤욕을 당하기도 했다.
   
이런 변화의 바람은 정치권에도 불어 닥치고 있다. 야당의 대표를 선출하는데 약관의 30대 후보가 돌풍을 일으키며 주목을 받고 있다. 국회의원 경력도 없는 청년이 제1 야당의 당수로 유력하다는 사실은 충격적이다. 
 
자기가 속한 직장과 조직을 변화시키는 청년들에 의해 위계와 권위가 지배하는 한국 사회의 문화가 바뀌고 있다. 누가 기획하거나 어느 단체가 주도하는 인위적 변화가 아니다. 중국 홍위병의 문화혁명이나 중동의 봄을 촉발한 자스민 혁명과는 차원이 다르다. 
 
지금 청년들은 표면적인 권력 구도와 질서를 넘어 우리 사회의 내면적 가치관과 규범도 변화시키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촛불혁명으로 시작된 지난 몇 년 동안의 사건들이 응축되며 쌓였던 압력이 터져 나오며 분출된 문화혁명이다. 
 
기본적으로 청년들은 기존의 질서와 기성 세대를 믿을 수 없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여당과 야당, 진보와 보수, 기업과 노조가 다투는 것도 다 같은 통속으로 기득권을 누가 더 많이 차지하느냐 하는 싸움이라고 생각한다. 내로남불의 위선적 지도자들은 자신의 이권만 지키려 할 뿐 우리 사회의 문제를 해결할 의사와 의지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그 누구에게 의지하지 않고 청년들 스스로 나서서 기업의 문화와 사회의 구조를 변화시키기로 한 것이다. 
 
청년은 더 이상 시혜성 지원을 받아 연명하는 종속적 존재가 아니다. 변화의 주체로서 수직적 상하관계의 권위주의 문화를 수평적 평등관계의 민주주의 문화로 바꾸는 영향력을 십분 행사할 것이다. 이런 변화의 흐름은 대세인 만큼 막거나 거슬를 수 없다. 역사적 변곡점에서 책임있고 양식있는 기성세대는 꼰대처럼 훈수두거나 가르치려 하지 말고 조용히 뒤로 물러나 지켜봐야 할 것이다.   
 
임채운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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