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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가습기 살균제 2심, 새 접근법 필요하다

2021-05-1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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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는 단언하지 않는다.'
 
지난 1월 법원이 홍지호 전 SK케미칼 대표와 안용찬 전 애경산업 대표 등 13명의 업무상 과실치사 등 혐의에 무죄를 선고한 데 대한 학계의 반박 요지다.
 
이 비판을 법원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관심을 모은다. 서울고법 형사2부(재판장 윤승은)는 18일 가습기 살균제 사건 항소심의 첫 공판준비기일을 연다.
 
원심의 무죄 근거는 '엄격한 증명'이었다. 재판부는 '애경 가습기메이트'와 '이마트 가습기 살균제' 등에 포함된 클로로메틸이소티아졸리논(CMIT)과 메틸이소티아졸리논(MIT)이 사람의 폐에 영향을 준다는 증거가 없다고 봤다.
 
재판부는 엄격한 증명을 요구하는 형사재판의 법칙을 따랐다고 자평했다. 하지만 과학자들 시선은 달랐다.
 
재판부는 국립환경과학원 주관으로 2018년 진행된 두 성분의 독성 동물 시험이 권장 사용량의 833배로 진행됐음에도 폐섬유화를 발견하지 못했다며, 이 조건이 "가혹하다"고 했다.
 
반면 한국환경보건학회는 선고 일주일 뒤 성명서를 내고, 사람에 적용되는 기준치가 동물실험 수준보다 100배~1000배 낮은 농도로 적용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학회는 "고농도 실험조건이라고 무시하면 세상의 독성 참고치는 폐기돼야 한다"며 "대부분의 일일허용섭취량, 노출허용량과 같은 기준은 바로 그 가혹한 조건에서 도출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이 단정적인 표현을 하지 않은 점도 무죄 근거였다. 재판부는 어느 누구도 자신들의 실험 결과를 가지고 'CMIT·MIT 성분과 폐질환에 따른 사망·상해·천식에 인과관계가 있다'는 취지로 진술하지 못한 점을 판단 근거로 세웠다.
 
과학자들은 1심 선고 일주일 뒤 원심 판단을 반박했다. 공판에 참여한 백도명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과학자는 반증 가능성 때문에 단정하지 않도록 훈련받는다고 설명했다. 박동욱 한국방송통신대 환경보건학과 교수는 기형아 출산으로 문제된 임산부 입덧 방지약 탈리도마이드와 살충제 DDT처럼 동물실험 결과에 문제가 없어도 사람에게 치명적인 사례가 많다고 지적했다.
 
그로부터 4달 뒤, '인과관계가 합리적인 의심의 여지 없이 입증될 것을 요구하는' 형사재판 2심이 열리게 됐다. 이번 재판부는 피고인의 의도와 행적, 무엇보다 동물이 아닌 사람이 피해자라는 점을 두루 살펴야 한다는 요구를 받고 있다.
 
과학자로 구성된 패널을 도입해 연구 결과와 의견을 종합적으로 판단하라는 박태현 강원대 로스쿨 교수의 제언을 새겨들을만하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뇌물죄 파기환송심 재판은 삼성 준법감시제도에 대한 전문심리위원 도입 등 실험적인 진행으로 이목을 끌었다. 사건이 발생한 근본적인 원인을 끄집어내 다각도로 검토했다.
 
이번 항소심 재판부도 애초에 기대 못할 과학자의 단언을 벗어나 인과관계를 따질 수 있는 재판을 연구해야 한다. 선고 직후 "내 몸이 증거"라며 울부짖은 피해자 앞에서 동물실험 결과만을 다시 꺼내들수는 없다.
 
이범종 사회부 기자 smile@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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