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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끝없을 분쟁의 역사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피와 분노가 넘치는 땅으로

2021-05-17 16:28

조회수 : 3,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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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젖과 꿀이 흐르는 땅
 
현재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갈등을 빚고 있는 곳은 과거 '가나안'으로 불리던 지역이다. 성경의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세계 4대 문명’ 중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이집트 문명의 사이에 위치해 큰 이익을 얻었던 곳이었다.
 
이 지역의 거주민은 원래 유대인이었고 지배하는 국가와 세력들이 계속 변화했다. 로마제국이 지배하던 시절도 있었다(신약 성경의 주요 배경). 그러나 일신교를 믿었던 당시 유대인들은 다신교였던 로마제국의 지배에 반발했고, 결국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디아스포라(유대인들의 예루살렘 거주 금지) 등을 계기로 많은 유대인들이 국외로 이주하게 됐다. 
 
지역에 남아있던 유대인들은 오스만제국 등 이슬람 국가의 통치를 받으며 이슬람으로 개종했고, 이들이 지금의 팔레스타인인이다. 즉 지금 피를 흘리며 싸우고 있는 이스라엘인과 팔레스타인인은 거슬러올라가면 한 뿌리에서 나온 친척인 셈이다.
 
2. 시오니즘과 이스라엘 건국, 영국의 이중 플레이
 
중세시대 유럽 각지를 떠돌던 유대인들은 기독교인들에게는 금지됐던 '고리대금업' 등을 통해 부를 축적했고, 만만치 않은 세력을 구축했다. 
 
19세기 민족주의 열풍이 불면서 조상의 땅(팔레스타인 지역)에 유대인 민족국가를 건설하려는 '시오니즘' 운동이 본격화 됐다. 
 
*1915년 맥마흔-후세인 각서/ 오스만 제국 붕괴 이후 아랍지역에 아랍인들의 국가 건립
*1917년 벨푸어 선언/ 팔레스타인 지방에 유대인의 국가 건립
 
그런데 1차 세계대전 시절 해당 지역은 오스만 제국의 통치하에 있었다. 이를 흔들고 싶었던 영국은 지역의 아랍인들의 반란을 사주하며 1915년 맥마흔-후세인 각서를 체결했다. 또 로스차일드 가문 등 당시 유럽 경제를 좌지우지했던 유대계의 전쟁자금 지원을 기대하며 1917년 벨푸어 선언을 공표했다.
 
즉 영국은 '한 지역에 두 민족의 국가 성립'을 약속한 이중계약을 맺은 셈이다. 영국은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고, 유엔(UN) 등 국제사회에 떠넘겼다.
 
유엔은 팔레스타인 지역을 분리시켜 독립시키자는 대안을 내놨다. 그러나 자신들이 기존에 차지하고 있던 지역을 상당부분 내놔야 했던 팔레스타인과, 자신들만의 나라를 원했던 이스라엘 모두 불만을 가졌다.
 
결국 1948년 이스라엘과 아랍 연맹 사이에 제1차 중동전쟁이 발발했고, 이스라엘이 승리하면서 이스라엘이라는 국가가 정식 건국된다. 이후 4차례의 중동전쟁을 거치며 이스라엘의 영토는 늘어났고 팔레스타인은 축소되면서 지금의 상황이 됐다.
 
3.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관계
 
이스라엘은 국가가 됐고, 전쟁에서 패배한 팔레스타인은 '난민집단'이 됐다. 이후 이스라엘은 정치, 경제, 사회 등 모든 분야에서 팔레스타인인을 지속적으로 탄압해 왔다. 팔레스타인 자치구 내에 이스라엘 정착촌을 늘려가며 팔레스타인인들을 꾸준히 몰아내고 있다.
 
이스라엘의 탄압에 팔레스타인인들은 2차례의 '인티파다(봉기, 반란, 각성을 의미하는 아랍어)'와 시위, 게릴라전, 테러 등으로 대항하고 있으며 전 세계에 자신들의 상황을 호소하고 있다. 그러나 초강대국 미국의 적극적인 옹호를 받고 있는 이스라엘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이스라엘의 압제와 팔레스타인의 저항이 맞물려 끝없이 이어지면서 과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은 현재 피와 분노가 넘치는 땅이 됐다. 이슬람교와 유대교라는 종교 갈등까지 겹치면서 해결의 실마리는 더더욱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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