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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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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같은 삶을 꿈꿨다가 진짜 영화 같은 삶을 살게 된 이란성 쌍둥이 아빠입니다....
(인터뷰)설경구는 ‘자산어보’에서 연기를 하지 않았다

데뷔 이후 첫 사극 출연, ‘소원’ 이후 두 번째 이준익 감독 ‘믿음’

2021-04-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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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몇 명 되지 않는다. ‘믿고 보는 배우라는 말. 그리고 믿을 수 있는 배우라는 찬사. 하지만 하나 더 넘어가보자. 저 타이틀 안에 존재하는 그들. ‘배우란 직업을 갖고 있는 그들. 그들의 궁극적인 목표는 아마도 연기를 하지 않는 연기가 아닐까 싶었다. 드라마 또는 영화 속에서 우리는 연기를 하는 사람을 보게 된다. 우리가 보는 그들은 배우들이다. 배우들은 연기란 거짓을 통해 우리에게 진짜라는 착각을 선물한다. 간혹 그 착각이 긴 여운을 가져다 주고, 그 여운 때문에 감정에 몰입해 기쁨과 슬픔을 꽤 긴 시간 동안 느꼈다면 우린 그걸 준 배우에게 최고의 연기력이란 찬사로 되돌려 준다. 하지만 배우들은 언제나 그럴 것이다. ‘거짓이 아닌 진짜를 하고 싶다. 하지만 그들이 연기를 하는 작품 자체가 창작이란 굴레에서 절대 벗어날 수 없으니 연기는 궁극적으로 거짓의 굴레에서 절대 벗어날 수 없다. 하지만 최근 개봉한 한 영화 속 배우가 이런 선입견을 깨버려 주는 연기를 선보였다. 사실 그는 연기를 하지 않았다. 그저 그 영화 속에서 말을 하고 있었다. 그가 말을 하는 것인지 그가 거짓으로 꾸며낸 그 인물이 말을 하는 것인지 시간이 지날수록 경계가 흐려졌다. 영화 자산어보속 설경구와 정약전. 두 사람 사이에는 무려 200년이란 시간이 존재한다. 그런데 설경구와 정약전은 같은 사람처럼 다가왔다. 두 사람이 하나를 말하고 있었다.
 
배우 설경구. 사진/씨제스엔터테인먼트
 
설경구가 이준익 감독과 만난 건 2013년 영화 소원이후 8년 만이다. 그리고 두 번째 작품이다. 영화계에서 두 사람은 각각 배우와 감독이란 영역에서 어떤 경지를 구축한 실력자들이다.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둘 다 이번 작품에 대한 우려는 있었을 것이다. 그 우려가 두 사람이 공통된 사안이었다. 이준익 감독은 자신의 장기인 사극에 설경구를 캐스팅한 것, 그리고 설경구도 자신이 처음 접한 사극에 출사표를 던진 것이다. 두 사람 다 사실 흥미로웠을 것이다.
 
예전에도 사극 제안이 있었지만 거절한 작품도 있고, 거절한 후 제작돼 개봉이 돼서 잘 된 작품도 있고. ‘난 안 해!’ 이건 아니었어요. 근데 하다 보니 여기까지 온 거 같아요. 낯선 것에 대한 거부감 이랄까. 사극 속 내 모습에 자신이 없었던 것 같아요. 근데 하긴 해야지싶었던 시기에 자산어보시나리오를 보게 됐고, 이준익 감독 작품이기에 믿고 갈 수 있었죠.”
 
자산어보가 특색이 있다면 우선 첫 손에 꼽는 게 흑백일 것이다. 이미 이준익 감독은 전작 중 한 편인 동주를 흑백으로 선보인 바 있다. ‘흑백은 과거에는 주류였지만 지금은 옛 것또는 철 지난때로는 특별한것 정도로 치부되고 있다. 경력이 화려한 설경구이지만 그도 사실 흑백은 처음이다. 우선 그는 연기를 하는 사람이기에 흑백이란 색의 제한이 자신의 연기에 어떤 영향을 끼친 것은 있는지 궁금했다.
 
배우 설경구. 사진/씨제스엔터테인먼트
 
배우가 색이 어떤지에 대한 고민은 하지 않죠. 대신 색이 없으니 연기가 고스란히 보이는 게 있어요. 그러니 대충이 안 되는 거에요(웃음). 근데 저도 좀 특별한 경험이랄까. 첫 촬영을 하고 모니터링을 하는 데 색이 안 느껴지더라고요. 그냥 그 시대의 색깔이 저랬을 것 같단 느낌이 왔어요. 그걸 느낀 이후부턴 내가 저 위에 색을 입혀도 되겠구나싶은 게 오더라고요. 흑백? ‘구닥다리가 아니라 진짜 세련된 것일 수도 있겠구나를 느꼈죠.”
 
그런 세련된 흑백속에 설경구가 그려낸 인물은 조선 역사에 실존했던 실학자 정약전이다. 대한민국 모든 국민이 아는 목민심서의 저자 정약용 선생의 친형이다. 정약용은 누구나 잘 알고 있지만 정약전에 대해선 사실 잘 알지 못한다. 정약전은 생전 몇 권 되지 않는 저서를 남겼다. 그 중 하나가 자산어보. 동생 약용이 수백권의 저서를 남긴 것과는 대비되는 생애다. 그리고 정약전은 기록도 거의 남아 있지 않다고 한다. 그런 설경구가 만들어 낸 정약전은 이랬다.
 
순전히 제가 느낀 그 시대의 정약전이란 인물은 정말 위험한 사람이었어요. 영화에서도 등장하지만 원래는 약전이 강진’, 약용이 흑산도유배였는데 바뀌잖아요. ‘약전이 더 위험하다라고 하면서. 지금 관점에선 너무도 맞는 생각인데, 조선시대 관점에선 약전 선생의 생각은 말도 안 되는 진보적 개념이잖아요. 그 분이 왜 생전 저서를 몇 권 남기지 않고 또 유배 기간 동안 세 권의 저서만 남겼을까. 자신의 생각을 투입한 책을 잘못 썼다간 자신은 고사하고 가족들 그리고 동생 약용까지 살아 남지 못할 게 뻔하거든요. 그런 분이었던 것 같아요.”
 
배우 설경구. 사진/씨제스엔터테인먼트
 
그 시대의 위험한 인물로 바라본 정약전을 설경구는 본인 자신으로 만들어 냈다. ‘자산어보를 보고 있으면 설경구가 아닌 정약전이 보인다. ‘찬사가 아니다. 사실 설경구는 굉장히 드라마틱한 배역을 연기하는 데 기술적으로 탁월한 배우다. 그가 출연해 온 영화만 봐도 알 수 있다. 그게 그의 배우적 능력치를 평가 절하시키는 판단 근거는 아니다. 그런데 자산어보속 설경구는 뭔가 달랐다. 아니 지금까지의 설경구와는 전혀 달랐다. 다른 누가 했다면 ‘OOO의 정약전이 됐을 게 뻔하다. ‘자산어보의 정약전은 설경구의 정약전이 아니었다. 그냥 정약전이었다.
 
배우가 들을 수 있는 최고의 상찬이라고 생각합니다. 너무 감사하고요. 글쎄요. 약전 선생은 기록자체가 거의 없고, 그 얼마 안 되는 기록에 매달려 만들어 낼 수 있는 인물은 아니었어요. 피상적으로 배우가 떠올릴 수 있는 이미지를 형상화 시키는 것도 한계가 있을 것 같았죠. 저도 어떻게 설명이 안 되는 데, 굳이 가져다 붙이자면 촬영 현장의 편안함이랄까. 그게 저한테 정약전을 만들어 준 것 같았어요. 고민을 하면 잡념이 들어오게 되는 데, 그 편안함이 잡념을 떨쳐 내 준 것 같아요.”
 
그런 편안함은 여러 이유가 있었겠지만 배우들이 공통적으로 꼽는 건 이준익 감독 스타일이다. 이준익 감독과 함께 한 작품이라도 해본 배우들은 그의 현장을 사랑하게된다고. ‘자산어보에서 몇 장면 등장하지 않은 배우 최원영(정약종 역) 조차 떠나고 싶지 않은 현장이라고 소개할 정도다. 이준익 감독은 배우들에게 진심을 끌어 내는 데 탁월한 재주가 있는 것 같았다. 설경구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배우 설경구. 사진/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특별한 재주가 있긴 있어요. ‘소원촬영 때였는데, 그때 정말 얄미웠어요(웃음). 그때 전 너무 감정적으로 힘들었죠. 근데 제 딸로 나온 이레만 감독님이 챙기는 거에요. 뭐 그건 당연하죠. 어린 아이가 혹시나 감정적으로 다칠까 봐. 근데 나도 좀 챙겨주지 싶었죠(웃음). 그때 감독님이 딱 한마디 하시더라고요. ‘그 감정은 당신 하나면 돼, 여기 전부가 그러면 어떻게 영화 만들어라는 데 아차 했죠(웃음). 현장의 균형감과 밸런스를 맞추는 감각은 이준익 감독님이 아마 최고가 아닐까 싶어요.”
 
지금도 가끔씩 자산어보촬영 현장 그리고 그곳의 숙소가 생각이 난단다. 한 작품이 자신을 만나고 떠나갈 때면 꽤 잘 지냈고, 또 아주 사이 좋게 이별하는 스타일이라고. 하지만 자산어보만큼은 아직도 그게 잘 되지 않는 것 같다며 아쉬워한다. 데뷔 이후 첫 사극이란 상징도 있겠지만 그저 그 현장과 그 곳의 사람 그리고 그 작품, 궁극적으론 그 작품 속 이야기가 자신을 좀 더 행복하게 만들었던 것 같단다.
 
배우 설경구. 사진/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현장에서 감독님에게도 그랬어요. 사극 한 번 더 해보고 싶다고. 흑백으로 해봤으니 다음에는 컬러로 도전해 보고 싶어요. 어떤 현장이든 비슷하지만 특히 자산어보현장은 제 배우 인생에서 TOP3안에 들어요. 좋은 기억 외에는 없는 것 같아요. 지금도 가끔 그곳이 생각이 나고 그래요. 이런 행복한 기분, 관객 분들도 꼭 느껴 보셨으면 좋겠어요. 제목이 어려워서 그렇지(웃음) 그냥 쉽게 들어오셔도 되는 영화에요.”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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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같은 삶을 꿈꿨다가 진짜 영화 같은 삶을 살게 된 이란성 쌍둥이 아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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