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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사 운명의 달)분쟁조정 수용하면 제재 낮추겠다…금감원의 금융사 길들이기

당국, 사후정산 배상안 권고…징계 경감 위해 분조위 수용…"초법적인 검사권 남용"

2021-03-03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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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토마토 우연수 기자] 금융당국이 부실 사모펀드의 피해 금액과 책임 범위가 산정되기 전에 선보상을 주문하는 가운데 증권사들은 당국이 정하는 배상 비율을 따라야 하는 처지다. 사모펀드 피해자에 대한 증권사의 피해 구제 노력을 증권사 징계 수위를 결정할 때 참작하도록 규정을 바꿨기 때문이다. 최고경영자(CEO)의 향후 거취가 달린 만큼 배임 논란에도 불구하고 당국의 분쟁조정안을 거부하기 힘든 상황이다. 
 
2일 금융당국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신한금융투자(라임 펀드)과 대신증권(라임 펀드), NH투자증권(옵티머스 펀드) 등 3개 증권사에 대한 분쟁조정위원회(분조위)가 상반기 중 진행될 예정이다. 금감원 분쟁조정은 판매사와 투자자 등 분쟁 당사자들이 소송을 통하지 않고 합의를 도출하도록 하는 성격의 제도다. 판매사와 투자자가 모두 당국의 중재안을 수용하면 성립하게 된다.
 
금감원은 신속한 피해자 구제를 위해 손해액을 사후정산하는 방식의 배상 방식을 유도하고 있다. 검사와 제재 등을 통해 사실관계가 어느 정도 확인되고 객관적으로 손해를 추정할 수 있는 경우, 미상환금액을 손해액으로 보고 배상비율을 정한 추후 추가회수액 등을 고려해 사후정산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KB증권을 시작으로 우리은행과 기업은행이 이 방식으로 분쟁조정을 받았다.
 
금감원은 금융사의 동의가 있을 경우에만 사후정산식 배상을 진행하겠다고 입장이지만, 금융사들의 분위기는 다르다. 금융당국이 피해자 구제 노력을 금융사 제재 결정에 참고하겠다고 밝힌 만큼, 금융사 입장에서는 당국의 의지에 반하는 결정을 내리기 어렵기 때문이다.
 
실제로 현직 CEO 중징계 건이 걸려있는 KB증권은 가장 먼저 사후정산식 분쟁조정에 동의했다. 라임펀드 판매사 중 현직 CEO에게 중징계가 통보된 건 박정림 대표뿐이다. 박 대표는 작년 제재심을 앞두고 금감원으로부터 '직무정지' 상당의 중징계안을 사전통보 받았으나, 11월 제재심에서 '문책경고'로 한단계 경감됐다. KB증권은 금감원 분조위의 40~80% 배상안을 수용했다.
 
옵티머스 펀드의 주요 판매사 NH투자증권도 제재심과 분조위를 앞두고 소비자 보호 책임에 대한 긴장의 끈을 조이고 있다. 금감원은 상반기 중으로 분조위를 열고 옵티머스 펀드 계약취소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금감원은 다수의 외부 법률 검토 의견을 통해 '착오에 의한 계약 취소'를 적용할 수 있다는 의견을 제출받은 상태다. 펀드 판매사가 계약 당시 존재하지 않는 상품을 팔았을 경우 적용되는 의견으로, 판매사에게 100% 배상 책임이 생긴다.
 
당국의 적극적인 분쟁조정 유도책으로 금융사들이 자발적으로 소비자 보호에 나서는 점은 긍정적이다. 그러나 당국이 초법적인 권한으로 '금융사 길들이기'에 나서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그나마 과거엔 분쟁조정 결과가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일부씩 책임을 지는 양상으로 나왔지만, 요즘은 100% 판매사 배상(라임 무역금융펀드)으로까지 나오기도 해 부담은 더 클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사진/뉴시스
 
우연수 기자 coincidence@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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