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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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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도 투표도 두려운 트랜스젠더

인권위 트랜스젠터 혐오차별 실태 조사 결과 65.3% 차별 경험

2021-02-10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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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토마토 이범종 기자] 신분증 확인이 두려워 병원을 찾지 않거나 투표권 행사도 주저하는 트랜스젠더가 적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직장과 군대에서 성희롱·성폭행에 노출되는 등 성 소수자를 위한 법령 정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가인권위원회는 9일 숙명여대 산합협력단이 수행한 '트랜스젠더 혐오차별 실태조사'를 발표했다. 인권위는 이번 트랜스젠더 혐오·차별 실태 발표가 국가기관 최초라고 밝혔다.
 
만 19세 이상 트랜스젠더 591명은 지난해 10월 온라인 설문에서 자신들이 겪어온 혐오와 차별에 대해 9가지 주제로 답했다. 응답자의 65.3%는 지난 12개월 동안 트랜스젠더라는 이유로 차별 당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매체별로는 소셜 미디어(SNS) 등 인터넷(97.1%)과 방송·언론(87.3%), 드라마·영화 등 영상매체(76.1%)에서 혐오 발언과 표현 등을 접했다고 응답했다.
 
 
복잡한 법 절차에 성별 정정 포기
 
트랜스젠더 차별의 대표 사례는 성 정체성을 부정하는 신분 증명 체계다. 응답자 중 법적 성별을 바꾼 사람은 8%(47명에) 불과했다. 정정 절차를 밟고 있는 응답자도 4.7%(28명)로 적었다.
 
성별 정정을 시도하지 않은 응답자들은 성전환 관련 의료적 조치에 드는 비용(58.9%), 복잡한 법 절차(40%), 의료 조치에 따른 건강상 부담(29.5%) 등을 이유로 들었다.
 
특히 법적 성별을 바꿨거나 시도해 본 82명은 이 과정이 어려웠다고 답했다. 가장 큰 이유는 성전환 의료 조치 관련 요건 갖추기(78.1%)였다.
 
지난 2016년 주민등록변경제도가 시행됐지만, 신청 자격이 엄격하다. 주민등록 유출로 생명·신체·재산에 피해를 입거나 입을 우려가 있거나, 성범죄 피해자인 경우에 한정된다. 생년월일과 성별을 제외한 6개 뒷자리만 바꿀 수 있다.
 
해외에서는 트랜스젠더의 법적 성별 변경 권리를 인정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아르헨티나는 지난 2012년 의료적 조치 없이 행정절차로 성별 변경을 가능케 한 '성별정체성법'을 제정했다. 신청인은 지역 공공관서에 성별 정정을 신청할 수 있다. 미성년자는 법정 대리인 동의가 원칙이지만, 동의 받지 못해도 법원이 최선의 이익을 고려해 결정한다.
 
영국에선 2004년 이후 정신과 소견서를 의료적 요건으로 내세운다. 독일의 경우 2011년 성적 외관 변화를 규정한 관련법에 위헌 선고가 내려졌다. 미국에선 캘리포니아와 뉴욕 등 15개 주와 워싱턴 D.C.에서 외과적 수술 없이 성별을 바꿀 수 있다.
 
반면 신분증 제시에 부담을 느낀 응답자들은 일상 용무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을까봐 의료기관 이용(21.5%)을 포기한 적이 있다고 했다. 담배 구입이나 술집 방문을 포기했다는 응답도 16.4%에 달했다.
 
신분증 확인에 대한 두려움은 투표권 행사에도 영향을 줬다. 응답자의 19.5%(115명)가 지난해 국회의원 선거 투표를 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이 가운데 신분증 확인으로 법적 성별이 드러나는 것이 두렵거나(27명), 현장에서 주목받는 일이 두려워서(26명) 투표하지 않았다는 응답이 많았다.
 
가족에게 성전환 사실을 숨기거나 지지 받지 못한다는 응답도 적지 않았다. 본인이 트랜스젠더라는 사실을 가족이 모르는 경우가 34.4%(203명)으로 가장 많았다. 성전환을 반대하거나 무시하는 경우가 25.7%(152명)으로 뒤를 이었다.
 
트랜스젠더에 대한 가족의 대응은 무시 또는 억압이 대다수를 차지했다. 모른 체 한다는 응답(56.6%)이 가장 많았고, 원하는 성별 표현을 못 하게 한다는 응답도 절반에 가까운 44%에 달했다.
 
언어 폭력(39.4%)과 경제적 지원 중단(12.9%), 신체 폭력(9.9%)을 겪었다는 응답도 있었다.
 
자신의 정체성을 바꾸기 위해 상담사나 종교인에게 데리고 가는 경우(9.9%), 집에서 내쫓는 경험(9.4%)도 적지 않았다.
 
지난해 6월 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주한미국대사관 외벽에 성소수자 인권의 달을 맞이해 무지개색 플래카드가 부착돼 있다. 주한미국대사관은 지난 1일 트위터를 통해 '주한미국대사관은 만인의 기본적인 자유와 인권을 기념하고자 레인보우 배너를 대사관 건물에 걸었다'고 밝혔다. 사진/뉴시스
 
법적 보호 없이 학교·직장으로
 
교육 현장에서도 성 소수자 혐오를 겪었다는 응답이 많았다. 중·고등학교를 다닌 응답자 584명 중 92.3%(539명)이 성소주자 관련 성교육 부재와 정체성과 다른 교복 착용 등 힘들었던 경험이 하나 이상은 있다고 했다.
 
중·고등학교 수업 때 교사가 성소수자 비하 발언을 한 경우는 67%였다.
 
대학교·대학원을 다닌 469명 중 교수 등이 수업 또는 다른 시간에 성소수자 비하 발언을 했다고 답한 비율이 각각 42.4%와 24.7%였다.
 
성 역할에 대한 편견은 구직 활동과 직장 생활에도 영향을 준다. 구직 활동 경험이 있는 469명 중 57.1%(268명)이 성별 정체성과 관련해 직장 구하기를 포기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이들은 구직·채용 과정에서 외모 등이 남자 또는 여자답지 못하다는 반응(48.2%), 주민번호에 적힌 성별과 성별 표현이 맞지 않는 점(37%), 출신 학교를 써야 하는 지원 서류(27%) 등을 어려워했다.
 
사내에서 성 정체성에 대한 불필요한 질문을 받거나(17.1%), 동의 없이 성 정체성을 다른 사람에게 알려지거나(8.9%), 성희롱 또는 성폭행(8.2%) 당한 경험이 있다는 답변도 나왔다.
 
산학협력단은 보고서에서 "직장에서 트랜스젠더 노동자가 불합리한 대우와 차별, 성희롱 등을 당하는 경우 피해를 호소하고 구제를 요청할 수 있는 근거 법령이 부재한 상황"이라며 "포괄적 차별금지법·평등법 제정 또는 노동법 개정을 통해 법률로써 노동권을 보장받을 수 있는 시민의 영 역에 트랜스젠더를 포함시키기 위한 다각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성소수자부모모임,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인권센터 관계자들이 지난해 9월 22일 오전 서울 종로구 한국기독교회관 앞에서 '평등세상을 바라는 호소문 발표 긴급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일상적 혐오에 속수무책
 
트랜스젠더는 집 밖에서 화장실 쓰기도 어렵다. 응답자의 40.9%(241명)가 자기 정체성과 다른 성별의 화장실을 이용한다고 답했다. 화장실 사용을 피하려 취식을 피하거나(37.2%) 화장실 이용을 포기한 경험(36%)도 있었다.
 
관공서 직원에게서 모욕적이거나 불필요한 질문을 들은 경험(12.5%), 추가 서류나 절차를 요구받은 경우(10.1%)도 있었다.
 
성소수자 차별 발언은 군대에서도 이어졌다. 남성으로 태어나 군 복무중이거나 전역한 109명 중 성희롱이나 성폭력을 당했다는 응답이 12.4%였다.
 
수사기관에서 조사받은 적 있는 157명 중 25명(15.9%)은 성 정체성에 맞지 않는 호칭을 듣거나(18명), 모욕적인 말을 듣거나(17명), 독립되지 않은 곳에서 조사해 성 정체성이 알려진 경우(7명) 등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고 응답했다.
 
인권위는 "이번 실태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전문가, 다양한 이해관계자 등의 의견을 수렴해 개별·구체적 사안을 검토하고 정책 대안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번 조사에 참여한 응답자 가운데 트랜스 여성은 189명(32%), 트랜스남성 111명(18.8%), 논바이너리 지정성별 여성·남성 각 221명(37.4%), 70명(11.8%)이었다.
 
이범종 기자 smile@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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