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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살균제 피해' 애경·SK케미칼 경영진 모두 '무죄'

재판부 "살균제 판매와 상해·사망 사이에 인과 관계 없다"

2021-01-12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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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토마토 이범종 기자] 유독성 가습기 살균제 판매 혐의로 기소된 전직 SK케미칼·애경산업 대표가 1심에서 증거 부족으로 무죄를 선고받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3부(재판장 유영근)는 12일 업무상과실치사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홍지호 전 SK케미칼 대표에 대해 "피고인들이 제조·판매한 가습기 살균제 판매와 상해·사망 사이에 인과 관계를 인정하는 공소사실에 대해 더 살필 필요 없이 모두 범죄의 증명이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함께 기소된 안용찬 전 애경산업 대표와 SK케미칼·이마트·필러물산 임직원 등 12명도 전부 무죄 판결 받았다.
 
같은 혐의로 따로 재판 받은 최기승 전 SK케미칼 스카이바이오팀 팀장 등 4명 역시 같은 재판부가 증거 부족으로 무죄 선고 했다.
 
쟁점은 '애경 가습기메이트'와 '이마트 가습기 살균제' 등에 포함된 클로로메틸이소티아졸리논(CMIT)과 메틸이소티아졸리논(MIT)의 유해성이었다. 앞서 가습기 살균제 사건으로 2018년 신현우 전 대표 실형이 확정된 옥시레킷벤키저 제품은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을 사용했다.
 
재판부는 CMIT와 MIT 성분이 PHMG와 달리 사망·상해·천식을 일으키거나 기존에 앓던 천식을 악화시키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2014년 질병관리본부가 펴낸 가습기 사건 백서와 2018년 한국환경산업기술원의 관련 연구, 후속 실험, 전문가들의 법정 증언 등이 근거였다.
 
국립환경과학원 주관으로 2018년 진행된 두 성분 독성 시험에서 권장 사용량의 833배로 설정해 4주간 하루 20시간, 주 7회 빈도 실험을 했지만 폐섬유화는 관찰되지 않았다. 다른 기관들의 연구도 두 성분과 폐질환의 직접적인 인과관계를 밝히지 못했다. 관련 연구 책임자들도 단정적인 결론을 내기 어렵다는 취지로 증언했다.
 
재판부는 "가습기 살균제 피해 인정 기준은 근본적으로 PHMG 성분 가습기 살균제 피해 사례로부터 도출된 것"이라며 "물질적 성질이 상당히 다른 CMIT·MIT 성분 가습기 살균제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국가가 피해 구제 차원에서 순차적으로 피해 인정 기준을 완화했지만, 형사재판은 인과관계가 명확해야 한다는 설명도 이어졌다. 재판부는 "피해 구제 차원에서 마련된 피해 인정 절차에서의 피해 인정 결과를 엄격한 증명을 필요로 하는 형사사건에 그대로 적용해서 인과관계를 인정하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두 성분이 포함된 살균제를 단독 사용한 피해자 11명의 경우, 개별적 인과관계를 의심할 사정이 여럿 있다고 봤다.
 
재판부는 "가습기살균제 사건은 어마어마한 피해가 발생한 사회적 참사로 인식되고 있다"며 "이 사건 CMIT·MIT 성분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피해도 접수되어 있고, 바라보는 심정이 안타깝고 착잡하기 그지없다"고 말했다.
 
이어 "재판부가 2년여 동안 심리한 결과 CMIT·MIT 성분 가습기살균제는 지난번 유죄판결을 받았던 PHMG, PGH 성분 가습기 살균제와는 성분이나 위해성에서 많은 차이가 있다"며 "향후 추가 연구결과가 나오면 역사적으로 어떤 평가를 받게될 지 모르겠지만, 재판부 입장에서는 현재까지 나온 증거를 바탕으로 형사사법의 근본 원칙의 범위 내에서 판단할 수밖에 없었다"고 소회를 밝혔다.
 
선고 직후 가습기 살균제 참사 전국 네트워크와 일부 피해자들은 기자 회견을 열고 항소 방침을 밝혔다.
 
가습기 살균제로 천식을 앓게 됐다는 조순미 씨는 "그 제품을 써서 사망에 이르고, 지금까지 치료 받으면서 투병하는 저희 피해자들은 과연 무슨 제품을 어떻게 썼다는 말이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장동엽 참여연대 선임간사도 "검찰 수사 결과 피해 인과관계가 확정된 사망자가 12명인데, 그분들은 누가 죽였단 말이냐"며 "교통사고도 이렇게는 판결할 수 없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홍지호 전 SK케미칼 대표는 2002~2011년 CMIT·MIT 등으로 만든 '가습기 메이트'를 제조·판매해 인명 피해를 낸 혐의를 받는다. 홍 전 대표는 2002년 SK케미칼이 애경산업과 '홈크리닉 가습기 메이트'를 출시할 때 대표이사를 지냈다.
 
안용찬 전 애경산업 대표는 CMIT와 MIT 등이 인체에 유해하다는 점을 알고도 이를 적용한 가습기 메이트 제품을 판매한 혐의를 받는다. 그는 1995~2017년 애경산업 대표로 일했다.
 
SK케미칼과 애경산업, 이마트가 2002~2011년 제조·판매한 가습기메이트는 옥시의 '옥시싹싹 가습기당번' 다음으로 많은 피해자를 냈다. 환경부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기준 옥시싹싹 피해자는 뉴가습기당번과 가습기당번을 합쳐 2768명이다. SK케미칼과 애경, 이마트 제품 피해자는 총 1077명이다. 지난 8일 기준 가습기 살균제 피해 접수 인원은 7161명이다. 이 가운데 판정이 끝난 생존자는 1025명, 사망자는 257명이다.
 
유해 물질 가습기 살균제 유통·판매 혐의로 기소된 SK케미칼·애경 전 대표와 임직원들이 무죄를 선고 받은 12일 오후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조순미 씨가 선고 결과에 대한 입장을 밝히다 얼굴을 감싼 채 눈물 흘리고 있다. 사진/이범종 기자
 
이범종 기자 smile@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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