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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익도의 밴드유랑)‘설국 코어’로 돌아왔다, 컴배티브포스트

6년 만의 정규 2집 ‘Whiteout’…‘헬조선’ 한국 사회에 통렬한 일갈

2020-11-06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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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대중음악신의 ‘찬란한 광휘’를 위해 한결 같이 앨범을 만들고, 공연을 하고, 구슬땀을 흘리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럼에도 TV, 차트를 가득 메우는 음악 포화에 그들은 묻혀지고, 사라진다. 어떤 이의 넋두리처럼, 오늘날 한국 음악계는 실험성과 다양성이 소멸해 버린 지 오래다. ‘권익도의 밴드유랑’ 코너에서는 이런 슬픈 상황에서도 ‘밝게 빛나는’ 뮤지션들을 유랑자의 마음으로 산책하듯 살펴본다. (편집자 주)
 
밴드 컴배티브포스트 멤버들. 왼쪽부터 조진만(드럼), 이일우(기타), 황규영(보컬), 사진/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여기 방어 주시죠! 우리 음반도 ‘제철’에 나왔으니까. 소주, 맥주도 한 병씩. 말아서 시원하게, 캬.”
 
장소 제안에 “노량진 수산시장”이라 답한 팀은 이 시리즈 연재 역사상 두 번째. “그곳은 지난해 ‘아마도이자람밴드’가 선점했다”고 미리 선포했으나, “우리 만의 스토리가 또 있다”는 이들의 혈기를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지난달 26일, 서울 노량진 수산시장의 한 음식점에서 오랜만에 신보를 낸 록 밴드 컴배티브포스트는 무척이나 고양된 표정이었다. 큰 접시에 ‘대(大)’ 자리 방어가 배달되자 입이 헤벌 쭉이다. 회칼로 무심히 툭툭 쳐내 상에 막 오른 두툼한 조각들, 간장에 비단결처럼 번지는 와사비 한줌. 일렬로 세운 맥주잔에 콸콸 쏟아지는 ‘소맥’이 황금비율을 이룰 때, 시원한 입들이 다시 열린다. 폭포수처럼 아름다운 직선으로 메다 꽂히는 이들의 음악 같이. 
 
“자, 일단은 쭈욱, 들이 키고 가시죠.” 쿵. 동시에 잔을 내려놓는 이들에게서 ‘뭔가 해냈다’는 후련함이 읽혔다. 
 
컴배티브 멤버들이 지난달 26일 노량진수산시장에서 방어를 주문하고 있는 모습. 사진/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지난 9월25일 밴드[황규영(보컬), 이일우(기타), 연제학(베이스), 조진만(드럼)]는 2집 ‘Whiteout’을 내놨다. 2014년 1집 ‘The Ghost’ 이후 6년 만의 정규 앨범. ‘한국형 멜로딕 하드코어’의 대표주자로 불려오던 이들은 이제 자신들의 이름을 건 새 장르 개척에 나선 듯하다. ‘설국(雪國) 코어’. 25분 남짓 되는 앨범 전체(곡당 평균 재생시간 2분30초)를 몇 차례 돌리다 이 단어면 적절할 것 같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신보는 댐핑 좋은 고가 드럼의 블라스트 비트를 근간으로 아찔한 ‘사악’의 세계를 창조한다. 이 사악이란, 째질 듯한 하이햇과 심벌 난타에 날카로운 스크리밍이 뒤섞이는 원초적 밀림이다. 여기에 퍼즈와 오버드라이브를 건 전자기타의 공간계 잔향, 희망을 섞은 가사들은 기묘한 이율배반을 이룬다. 영화로 치면 누벨바그풍의 폭주 하는 열차랄까. 
 
보컬 황규영이 직접 디자인한 컴배티브포스트 2집 앨범 커버. 사진/컴배티브포스트
 
앨범커버가 모든 것을 함축한다. 세상의 모든 경계가 사라지는 우윳빛깔 극 지방을 연상했단다.
 
“멜로딕 하드코어라고 말해왔지만 이젠 단일 장르로 우리를 묶을 순 없다고 봅니다. 블라스트 비트에다가 아르페지오를 섞고, 그냥 해보고 싶은 것들은 다 때려 넣었달까. 커버 이미지는 포스트록 같기도 하고 뭐 좋아요.”(이일우)
 
드러머 조진만이 한 손엔 드럼스틱을, 다른 손엔 펜을 쥐고 가사를 적었다. 
 
‘Hell…It's chosen’은 ‘헬조선’이라 불리는 한국 사회에 대한 통렬한 일갈. “일종의 병폐 같은 한국의 정치 문화, 갑질이 난무하는 이 사회적 고질병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최근 택배노동자의 열악한 근무 환경을 보면서도 많은 영감을 받았습니다.”(조진만)
 
그러나 사회를 작심하고 비판하는 듯하면서도, 앨범은 전작에 비해 내면으로 향하는 감이 있다. 전체적으로는 지금의 삶을 성찰하고 미래의 긍정을 마주보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역경이 있을지라도 앞길을 개척하자는 앙칼진 희망가(2번 트랙 ‘Against The Odds’)는 온갖 사회의 부조리를 마주하며(3번 트랙 ‘Hell…It's chosen’) 뒤틀릴 때도 있으나, 계속해서 이들음악의 직진성처럼 앞으로 나아간다. 
 
일과 가정의 양립 속에 “점차 꿈과 멀어지고 있는” 자신을(6번 트랙 ‘Farewell To My Dreams’) 한탄하면서도 “어떠한 고난이 있더라도 나 자신을 찾겠다”(10번 트랙 ‘The Identity’)며 끝내 ‘백화’ 한다. 가히 ‘설국(雪國) 코어’다.
 
음반 작업 중인 밴드 컴배티브포스트. 사진/컴배티브포스트
 
실제로 밴드 멤버들은 지난 6년 간 개인사에 크고 작은 변화가 많았다. 잠비나이 활동을 병행하는 이일우는 지구를 몇 번이고 돌다 올해 코로나 여파로 국내에서 음악 작업에만 전념했다. 멤버 3명은 밴드활동과 회사생활을 병행하며 가정을 이뤘다. 
 
“굳이 저희가 하드코어란 장르라고 삶이 하드코어인 것 같진 않아요. 그렇게 티를 내는 건 오히려 유난인 것 같고... 따지고 보면 한국에서 음악을 한다는 것 자체가 하드코어 아닌가요? 아니, 그냥 어떻게 보면 이 세상을 살아가는 자체가 하드코어 아닐까요?”(이일우) 
 
마스터링 등 후반 작업은 몰 스튜디오의 조상현 감독이 맡았다. 서태지, 넬, 혁오, 잠비나이 등 국내 슈퍼 밴드들의 색깔에 맞게 사운드를 잡아주는 전문가. “노래 파트에서도 한 번은 ‘너 그거 목 간 상태에서 부르는 거야’라고 따금하게 말씀해주신 적이 있어요. 세세한 지도 덕에 모니터링이 수월했던 것 같아요.”(황규영)
 
컴배티브포스트 공연 모습. 사진/컴배티브포스트
 
최근 코로나 여파로 밴드 역시 ‘음반 후 활동이 쉽지 않은’ 상황을 맞고 있다. “음악부터 시시콜콜한 모든 고민을 늘 이곳(노량진 수산시장)에서 나눈다”는 이들에게 이날 회동은 음반을 내고서 첫 자리기도 했다. 방어회 ‘전사(戰死)’ 뒤 나온 둥그런 매운탕 그릇 앞에서 이들은 소주잔을 부딪치며 12월쯤 열릴 공연 계획을 도모했다.
 
마지막으로 이번 앨범을 여행지에 빗대달라고 요청했다. 볼이 살짝 빨갛게 변한 이들이 템포를 살짝 늦추더니 생각에 잠겼다.
 
“놀이 공원의 롤러코스터. 공간계 이펙터로 만든 리버브 가득한 소리들이 신보의 핵심입니다. 확 올라갔다가 고꾸라지듯 하는 소리의 체험을 해볼 수 있는 그런 공간이지 않을까.”(이일우)
“일우 말 받고 저는 이정표로 갑니다. 돌아보면 하드코어 자체가 제 삶의 이정표였어요. 당연히 돈은 안됐는데 지금까지의 가치관 만들 수 있게 해준 음악 자체라, 그런 고민이 있는 친구들과 함께 나누고 싶네요.”(조진만)
 
“두 형님 말 받고 저는 연초 타임. 하드코어 키드부터 현실 맛을 알아가는 어른으로, 그런 시간의 연속성을 풀어낸 것이 꼭 연초를 필 때 하는 생각하고 비슷한 것 같아요. 잠깐 머리를 식히면서, 나에 대해 이런 저런 생각을 해보게 되는, 그런 느낌 같아요.”(황규영)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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