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원수경기자] 장장 일곱시간에 걸쳐 책 한 권에 대해 수다를 떠는 남자가 있다. 그냥 수다가 아니라 '독자를 저자로 만들기 위한' 수다다. 김학원 휴머니스트 대표는 지난 2월부터 책을 쓴 저자와 손님 몇 명을 초대해 팟캐스트 '독자적인 책수다' 방송을 시작했다. 김 대표는 앞으로 10년 동안 100명의 저자와 수다를 떨며 독자와 소통하겠다는 남다른 스케일의 포부를 밝혔다.
김학원 휴머니스트 대표. 사진/원수경 기자
김학원 대표는 출판계에서 25년을 보냈다. 편집자로 보낸 10년 동안 '출판계 대표 미다스의 손'이라는 별명을 얻었고 지난 2001년부터 휴머니스트를 설립해 이끌고 있다. 휴머니스트는 지난 15년 동안 무려 1000종의 책을 만들며 숨 가쁘게 달려왔다.
최근 김 대표는 지금까지 확보한 1500~2000명에 달하는 국내 저자와 함께 새로운 실험을 시작했다. 100명의 저자와 함께하는 팟캐스트를 진행하며 책을 통한 커뮤니케이션을 본격적으로 확장한다는 계획이다.
"우리가 만든 책 중에서 10대에서 60대까지 같이 읽고 토론할 수 있는 책 100종을 골라 100명의 저자와 10년 동안 방송할 계획입니다. 각각의 책을 7~9시간에 걸쳐 장별로 읽으면서 독자와 소통한다는 목적으로 팟캐스트를 런칭했죠. 전국에 있는 100곳 이상의 독서모임과도 연계해 함께 방송에 참여하도록 할 것입니다."
팟캐스트 '독자적인 책수다(책수다)'가 고른 첫 책은 정재찬 한양대 교수의 '시를 잊은 그대에게'였다. 지난 3월6일 시작한 수다는 이달 17일에서야 마무리됐다. 7회에 걸친 방송의 총 길이는 7시간20분이 넘는다. 지난 24일부터는 이진우 포항공대 석좌교수가 쓴 '니체의 인생 강의'에 대한 방송이 시작됐고, 다음 타자로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의 책 '문장의 품격(가제)'이 대기 중이다. 김 대표는 올해 말이면 책수다가 1만명의 정기구독자를 확보할 것으로 전망했다. 궁극적으로는 10년 동안 '10만인 독서클럽'을 만드는 것이 그의 목표다.
팟캐스트 '독자적인 책수다'의 5월 가정의 달 특별방송 '가족에게 권하는 인문학' 편을 진행하고 있는 김학원 대표(왼쪽 두번째) 모습. 사진/휴머니스트
'깊이 읽기' 통해 삶에 질문 던져야
한 권의 책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이유는 "저자와 독자 사이의 경계를 허물기 위해서"다. "근대적인 책읽기는 저자를 강단 위에 세워 일방적으로 질문하는 것이었지만 이제는 저자가 독자와 눈높이를 맞춰 열린 소통을 해야 합니다. 또 독자가 책을 읽은 이상 그 책은 저자의 책이 아니라 자신의 책이 됩니다. 책을 읽고 내 것으로 만드는 것이죠. 이제까지 1500명의 저자를 만났다면 지금부터는 독자 속으로 들어가 1만명, 10만명의 독자를 저자로 만드는 작업을 하고 싶어요. 독자로서의 피동적인 삶을 버리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거죠."
깊이 읽기의 이유는 또 있다. 책이 개개인의 삶을 가치 있게 바꿀 수 있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책은 사실 중산층의 문화입니다. 중산층은 삶의 목표가 성공이 아니라 '가치'인 사람들입니다. 왜 살고, 무엇을 위해 사는지에 대한 가치를 만들고 꿈을 실현하는 것이 중산층의 목표인 셈이죠. 지금은 중산층이 점점 내몰리고 사회가 양극화되고 있지만, 자신이 어떤 삶을 살고자 하는지 질문을 던지고 답을 스스로 찾게 하는 데에는 책만한 미디어가 없습니다. 읽는 과정은 어렵지만 그 속에서 저자를 따라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질문하고 답을 찾아나갈 수 있기 때문이죠."
"유럽 가서 출판시장 들여다보고파"
김 대표는 팟캐스트 이외에도 다양한 도전을 이어나갈 계획이다. 앞으로 15년간 1500종 이상의 책을 발간해 휴머니스트의 도서목록을 3000종으로 늘린다는 목표도 그 중 하나다. 그 과정에서 인문교양에 집중된 현재의 목록도 다변화하겠다는 계획이다. "다양한 시대와 세대에 맞게 질문을 던지려면 1000종, 2000종 더 나아가 1만종의 책이 필요합니다. 지금까지는 인문교양서 중심으로 질문을 던졌는데 앞으로는 좀 더 질문을 다양하게 던지려 합니다. 환경이 변하면서 젊은 세대들에게 필요해진 질문들을 하는 책으로 넓혀나갈 생각입니다."
책을 기초로 하는 '원소스 멀티유즈' 확장도 지속할 계획이다. 휴머니스트는 대표 콘텐츠 중 하나인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을 종이책에서 팟캐스트, 전자책, 스마트폰 앱으로 확장했는데 영문판까지 범위를 넓힌다는 계획이다. "오는 11월이면 20권 분량의 번역이 모두 다 끝나고 내년에 영문 전자책과 종이책, 앱이 나올 예정입니다. 이후에는 번역팀을 중심으로 영문판 팟캐스트를 진행할 생각입니다."
지난 2007년 미국으로 훌쩍 떠났던 그는 향후 유럽으로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밝히기도 했다. "유럽 출판에는 책이 가지고 있는 문화적 속성이 뿌리박혀 있습니다. 우리에게 접목할 가능성 있는 것이 (미국보다) 더 나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최소 3개월에서 길면 1년까지 유럽에 나가있고 싶은 생각입니다. 앞으로 10년 동안 이전에 했던 것과는 또 다른 열정으로 (출판을)해보고 싶습니다."
원수경 기자 sugyung@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