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플랫폼 경제’의 시대다. 한국인터넷진흥원은 플랫폼에 대해 “정보통신기술(ICT) 발전과 함께 플랫폼 개념은 수많은 상품과 인원이 공간 제약 없이 교류하며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공간이라는 의미로 확장됐다”고 설명했다. 구글과 페이스북 같은 대형 플랫폼이 눈부신 속도로 성장하면서 이들을 이용하는 업체도 우후죽순처럼 생겼다.
그러나 디지털플랫폼은 언제나 열려있는 운동장은 아니다. 애플과 구글, 페이스북, 트위터 등 전 세계적으로 확고한 기반을 갖추고 있는 플랫폼들이 하나 둘 문을 걸어 잠그기 시작했다. 사용자 정보보호와 편의성을 강화하기 위해서, 자체적인 수익성을 키우기 위해서 등 그 이유는 다양하지만 결과적으로 이들 플랫폼에 기대있던 영세 사업자에게는 큰 타격이 됐다. 플랫폼이 경제의 다양한 분야로 퍼지며 이들의 변화에 휘청이는 곳도 데이터 분석업체부터 온라인 광고업체까지 광범위해졌다.
◇데이터에 빗장 채운 ‘페이스북’
페이스북은 전세계에 걸쳐있는 거대 플랫폼을 통해 수집한 빅데이터에 빗장을 채웠다. 지난 5월부터 외부 업체에 공개하는 사용자 정보의 범위를 대폭 줄인 것이다. 지난해 사용자들에게 알리지 않고 그들의 프로필 데이터 등을 외부업체에 제공하고 있다는 점이 문제가 되자 정보제공 중단을 선언한 것이다. 사용자의 이름이나 연령대, 이메일, 성별, 프로필 사진, 지역정보 등은 기존처럼 제공되지만 생일, 학력, 종교, 고향, 좋아요, 친구목록 등은 페이스북에서 별도의 승인을 얻어야만 받을 수 있다. 현 거주지나 기타 사진 정보 등 일부 정보는 아예 제공되지 않는다.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최고경영자. 자료사진/로이터
전 세계 15억명에 이르는 페이스북 사용자들은 자발적으로 그들이 어디서 태어나 어디에서 공부했는지, 또 어느 회사에 다니고 있는지를 기록한다. 페이스북에 접속하면 기본적인 프로필 뿐만 아니라 무엇을 좋아하는지, 누구와 친구를 맺고 있는지도 알 수 있다. 따라서 이 정보를 막는다는 것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인간관계에 대한 정보를 가장 풍부하고 갖추고 있는 원천이 막혀버린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페이스북의 이번 조치로 스타트업 기업들이 줄줄이 곤혹스러운 상황에 처했다”며 “페이스북 데이터를 사용하던 스타트업 수십개가 문을 닫거나 인수됐으며 일부는 사업을 조정했다”고 전했다. 스타트업 뿐만이 아니다. 페이스북 자료를 바탕으로 소셜미디어 활동과 약물중독의 상관관계를 연구하던 미국 다트머스대 연구진의 연구활동은 잠정 중단됐으며 내년 미 대선을 앞두고 페이스북을 통해 유권자들의 사회적 인맥을 활용하려던 정치 컨설턴트들도 새로운 방법을 찾아야 하는 상황이다.
벤처캐피탈 회사 레드포인트벤처스의 파트너 크리스 무어는 “사용자 및 유동성 확보를 위해 문을 열어두었던 플랫폼 기업들은 충분한 사용자를 확보한 다음 통제에 들어가기 시작한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페이스북이 데이터를 개방했던 지난 2007년 당시 사용자는 5800만명, 매출은 1억5300만달러였으나 올해에는 매출액이 172억달러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됐다. 지난해 페이스북의 하루 평균 사용자는 10억명에 달했다. 무어는 “다른 누군가의 소셜 그래프에 접근하는 것에 기반을 두고 지속적이고 독자적인 사업을 구축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에 점점 회의를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터 되는 플랫폼
플랫폼을 운영하는 거대 사업자들은 그 플랫폼을 활용해 살아가는 소규모 업체와 직접 경쟁에 뛰어들기도 한다. 플랫폼 사업자의 우월적 지위에 플랫폼을 활용하던 중소업체는 속수무책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다. 그야말로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다.
트위터는 과거 미르캣(Meerkat)이라는 업체를 통해 라이브 비디오 스트리밍 서비스를 제공했다. 하지만 트위터가 비슷한 업체인 페리스코프(Periscope)를 인수한 뒤로는 미르캣을 밀어내고 직접 비디오 스트리밍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스마트폰용 날씨정보 앱이나 암호저장 앱, 플래시 손전등 앱 등도 비슷한 운명을 겪었다. 해당 기능이 스마트폰에 기본으로 탑재되기 시작하면서 이를 개발해 제공하던 소규모 업체들은 내리막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다.
미국 최대의 온라인 유통업체인 아마존도 개별 상인들과 직접 경쟁에 나서고 있다. 아마존의 사업에서 중개 장터 역할을 하는 플랫폼이 차지하는 비중은 사실 크지 않다. 오프라인 상점과 비슷한 구조를 가지고 있어 대부분의 상품을 직접 구매해 판매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마존은 점차 중개 장터에서도 입지를 키워가고 있다.
제프 베조스 아마존 최고경영자. 자료사진=뉴시스/AP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에 따르면 지난 2013년 6월 아마존 장터에서 제3의 상인이 판매하는 상품 중 아마존이 직접 판매하지 않는 아이템은 16만4000개였다. 하지만 10개월 후 같은 조사를 한 결과 아마존은 이 중 3%인 5000개 아이템을 직접 팔고 있었다. 펑 주 하버드 경영대 조교수는 “3%가 크지 않아 보일 수 있지만 짧은 시간 안에 늘어난 것 치고는 큰 숫자”라며 “장기적으로는 중개장터를 이용하던 상인들이 아마존과 직접 경쟁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아마존이 직접 판매에 나선 상품을 분석해본 결과 수요가 많고 판매자도 많으며 배송비는 적고, 가격이 높은 상품들이라는 특징이 있었다. 플랫폼 사업자가 플랫폼에서 자유경쟁을 유도한 뒤 가장 수익성이 높은 모델이나 아이템을 선택해 어부지리를 취할 것이라는 우려가 사실로 입증된 셈이다.
HBR은 “상품 판매 가격이 변하지는 않지만 아마존의 무료배송 정책으로 결과적으로 소비자는 가격 인하 효과를 볼 수 있다”며 “이같은 아마존의 행동은 혁신적인 상품을 공급하고 아마존을 통해 사업을 키워보려는 소규모 사업자들의 의욕을 꺾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플랫폼을 통해 상품을 판매할 계획이라면 “공급자와 독점공급 계약을 맺거나 상품을 직접 만드는 것이 좋다”며 “플랫폼 업자는 광범위한 인기 아이템을 선호하는 만큼 다양한 틈새 아이템을 발굴해야 한다”는 조언도 덧붙였다.
◇‘콘텐츠 블로킹’, 플랫폼의 또 다른 위협
플랫폼의 역습에 비상이 걸린 또 다른 곳은 온라인 광고업계다. 골드만삭스는 최근 리포트를 통해 “플랫폼 업계에서 큰 변화가 나타남에 따라 온라인 광고업계도 구조적으로 근본적인 변혁을 겪게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광고 플랫폼의 변화를 예고한 것은 애플이었다. 애플은 최근 새로운 모바일 운영체계인 iOS9에 광고차단 기능을 탑재해 배포했다. ‘콘텐츠 블로킹(contents blocking)’이라는 이름의 기능을 통해 애플의 웹브라우저 사파리에 붙은 광고를 제거할 수 있다. 사용자로서는 원치 않는 광고를 제거할 수 있어 편리하지만 광고업자에게는 사업의 존립을 위협하는 변화다.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 자료사진=뉴시스/AP
애플의 콘텐츠 블로킹 기능이 소개된지 보름여 밖에 지나지 않았으나 그 여파는 상당하다. 지난 16일 공개된 광고차단 앱 크리스탈은 누적 다운로드가 10만건을 넘어섰으며 애드블록 앱 개발사인 아이오는 광고를 걸러내지 않는 조건으로 70여개 업체로부터 돈을 받고 있다. 애드블록 앱 ‘피스’ 개발자는 걸러낼 광고와 남길 광고를 임의로 정하는 데에 양심의 가책을 느끼며 애플 앱스토어에서 피스앱을 제거해 환불 소동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골드만삭스는 과거 애플이 음원서비스에 접근했던 방식과 비교하며 온라인 광고에 대한 애플의 영향력이 더 커질 것으로 전망했다. 애플은 지난 2001년 MP3 플레이어인 아이팟을 내놓고 2년 뒤 콘텐츠 마켓인 아이튠즈 뮤직을 출시하면서 0.99달러에 음원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이후 2007년 아이폰을 출시와 함께 아이튠즈, 뮤직, 아이튠즈라디오 등으로 콘텐츠 앱을 확대 적용했다. 순차적으로 자체 콘텐츠 마켓의 범위를 늘려가면서 일종의 생태계를 조성하고 사용자들이 거부감 없이 이를 받아들이도록 한 것이다.
현재 애플이 운영중인 자체 광고 플랫폼 아이애드(iAd)는 미국 전체 모바일 광고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3%가 채 되지 않을 정도로 영향력이 미미하다. 하지만 애플뉴스와 같은 콘텐츠 서비스와 결합해 독자 맞춤형 광고를 제공한다면 아이애드를 축으로 하는 애플의 광고 사업은 크게 확장될 수 있다.
애플이 광고 차단 기능으로 사용자를 유치한다면 안드로이드를 운영하는 구글도 같은 전략을 채택할 가능성이 높다. 전문가들은 광고차단이 활성화되면 웹사이트나 앱의 환경에 맞춤형으로 적용된 ‘네이티브 광고’가 더 각광받게 될 것으로 전망했다.
원수경 기자 sugyung@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