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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려라 늑구
입력 : 2026-04-16 오후 3:38:42
육아를 하다보면 동물원을 찾는 일이 아이에게는 설렘이고, 부모에게는 잠시 숨을 고르는 쉼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어느 날, 좁은 우리 안을 끝없이 맴돌다 벽에 몸을 계속 부딪히는 호랑이를 본 순간 그 감정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그 움직임은 단순한 이상행동이 아니라, 공간을 빼앗긴 존재가 보내는 구조 신호처럼 보였습니다. 
 
예전에 근무하던 스타트업은 대학교 안에 자리하고 있었는데, 학교 뒤편의 큰 산에서 살던 들개들은 퇴근 무렵이면 교내 버스정류장까지 내려왔습니다. 곳곳에는 '들개 조심'이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습니다. 늑대처럼 보이던 그 큰 개들은 인간이 빠져나간 자리에서 그들의 영역을 주장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최근 대전 오월드 동물원에서 탈출한 늑대 '늑구' 사건은 이런 기억들을 다시 떠올리게 합니다. 탈출 이후 열흘이 되어가지만 늑구는 포획되지 않은 채 수색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마취총을 피하고 2미터 옹벽을 넘으며 야산을 오가는 늑구의 모습은 그저 살아남으려는 본능처럼 보입니다.
 
어린 늑대 한 마리를 잡기 위해 대규모 인력이 동원되는 와중에도 인간의 개발로 인해 수많은 동물들이 삶의 터전을 잃고 있습니다. 이는 결국 인간에게도 되돌아옵니다. 조류독감으로 대량 살처분이 반복되고, 고라니로 인한 교통사고도 빈번하게 발생합니다. 코로나19 역시 박쥐에서 시작된 감염병으로, 인간이 자연의 경계를 무너뜨린 결과라는 분석이 제기된 바 있습니다.
 
이처럼 자연이 사라진 자리에는 더 많은 갈등과 불안이 자리 잡습니다. 인간은 동물을 포함한 자연에 대해 더 강한 통제와 관리로 대응합니다. 과거에는 '호환마마'라는 말처럼 호랑이와 같은 맹수가 두려움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뒤바뀌었습니다. 인간이 만든 울타리 안에 갇힌 동물은 더 이상 위협적 존재가 아니라, '늑구맵'이 등장할 정도로 연민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늑구'는 단순한 탈출 개체가 아니라, 우리가 만든 환경의 균열을 드러내는 존재일지도 모릅니다. 인간이 만든 공간에서 벗어나 자연으로 돌아가려는 움직임은 본능이지만, 그 본능조차 허용되지 않는 현실은 씁쓸합니다.
 
늑구가 언제 잡힐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이 사건이 단순한 해프닝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자연과 어떤 방식으로 공존할 것인지, 지금의 개발과 도시화를 다시 돌아보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늑구야, 힘내라! 그리고 쉽지는 않겠지만, 누구에게도 잡히지 말고, 누구를 해치지도 말고 멀리멀리 가서 훨훨 자유롭게 살거라.
 
서울대공원에서 태어난 시베리아 새끼 호랑이 '설호'가 지난해 11월11일 경기 과천시 서울동물원 맹수사 호랑이 방사장에서 관람객들을 바라보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지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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