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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런은 길어지고, 장바구니는 가벼워졌다
입력 : 2026-04-15 오후 5:42:09
요즘 경제 이야기를 하면 빠지지 않는 말이 있습니다. 물가가 오르면서 소비가 줄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최근 서울의 한 백화점에서 전혀 다른 풍경을 봤습니다. 개점 전부터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었습니다. 가격 인상을 앞둔 주얼리 브랜드 불가리 매장 앞이었습니다. 문이 열리자마자 줄은 빠르게 움직였고 대기 인원은 금세 마감됐습니다.
 
바로 옆 까르띠에 매장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이미 가격 인상이 이뤄졌지만 여전히 입장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습니다. 가격이 오르기 전에도 사람들이 몰리고, 오른 뒤에도 매장은 붐볐습니다.
 
오픈런 풍경은 생각보다 치열했습니다. 한 가족이 정문과 후문 줄에 각각 서 있었다는 이야기도 들렸습니다. 먼저 입장한 사람이 연락을 주기로 했다는 것입니다. 가격이 오르기 전에 사두려는 경쟁이 그만큼 치열하다는 뜻입니다.
 
백화점을 나와 마트에 가면 분위기는 전혀 다릅니다. 물건을 들었다가 다시 내려놓고 휴대전화를 보는 사람들이 눈에 띕니다. 온라인 쇼핑몰 가격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같은 제품이라도 조금이라도 더 싼 곳을 찾기 위해 마트 가격과 온라인 가격을 비교합니다. 고물가 속에서 생활비 부담이 커지면서 생필품 가격을 꼼꼼하게 따지는 소비가 일상이 됐습니다.
 
시장과 마트에서 만난 시민들의 이야기 역시 비슷했습니다. 외식을 줄이고 식재료 구매량을 줄였다는 말이 이어집니다. 과일을 먹는 횟수를 줄였다는 이야기나 국산 대신 수입산을 선택한다는 말도 들립니다. 장 보는 금액은 비슷하지만 장바구니에 담는 물건이 줄었다는 이야기도 어렵지 않게 들립니다.
 
그런데 명품 시장만큼은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에르메스, 루이비통, 샤넬 등 이른바 '에·루·샤' 브랜드들은 지난해 국내에서 모두 역대 최대 매출을 기록했습니다. 가격이 계속 오르는데도 매장을 찾는 발걸음은 쉽게 줄지 않았습니다.
 
경제학에서는 이런 현상을 베블런 효과라고 설명합니다. 가격이 높아질수록 오히려 수요가 유지되거나 늘어나는 소비 현상입니다. 그래서 명품 매장에서는 "오늘이 가장 싸다"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옵니다.
 
물가 때문에 소비가 줄었다고 하지만, 어떤 소비는 줄고 어떤 소비는 늘어납니다.
 
명품은 오픈런, 생필품은 가격 검색.
 
어쩌면 지금 한국 소비는 이렇게 움직이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오전 10시30분 사람들이 줄을 서서 백화점 오픈을 기다리고 있다.(사진=뉴스토마토)
 
 
김주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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