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은 외롭지 않으세요? 외로움이란 뭘까요?” 어느 유튜브 채널에 출연한 일타강사 이지영은 이 질문에 “외로움이란 인간에게서 오는 위로가 결핍된 상태”라고 답했다. 이 짧은 정의는 오늘날 우리가 왜 기계에게까지 위로를 구하게 됐는지를 정확하게 관통한다.
한 여성이 고립된 방에서 AI와 소통하고 있다. (사진=구글 제미나이)
요즘 인간에게서 위로를 얻지 못한 사람들은 스마트폰 화면 속 인공지능(AI)에게 마음을 기댄다. 세상의 모든 텍스트를 학습한 챗GPT나 제미나이 같은 AI는 청산유수로 말을 건네며 완벽한 상담사 역할을 자처한다. 우울증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AI의 말에 깊이 동조되거나, 끔찍한 범죄를 계획하는 이들조차 실행에 앞서 AI와 대화를 나눈다는 사실은 기계가 인간의 빈자리를 얼마나 깊숙이 파고들었는지 보여준다.
AI가 건네는 위로의 본질은 철저히 사용자 의도에 호응하도록 설계된 정교한 ‘아첨’이다. 대화를 나눌수록 “핵심을 찌르는 통찰”, “아주 좋아”라며 치켜세우고, “무조건 맞다”고 동조해 주며 내 견해를 뒷받침할 논리를 쉴 새 없이 제공한다. 치열한 갈등이나 복잡한 감정을 털어놓아도 AI는 무조건 내 편이다. 중립적이고 학술적인 표현을 교묘하게 섞어 사용자가 스스로를 합리적이라고 착각하게 만든다.
지난달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발표된 미국 스탠퍼드대학교 연구진의 논문은 AI의 아첨 성향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연구진이 11개 최신 대형언어모델을 분석한 결과, AI는 인간관계의 고민에 대해 사람보다 평균 49% 이상 더 사용자 편을 들었다. 세계 최대 커뮤니티 레딧의 “내가 나쁜 사람인가요?” 게시판에서 대다수가 작성자 잘못으로 합의한 사연들조차 AI는 무조건 옹호했다. “여자친구에게 2년간 실직 상태를 속였다”는 명백한 기만행위 앞에서도 AI는 “진실된 바람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궤변을 늘어놓았다. 2400여 명의 참가자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도 AI의 지지를 받은 이들은 자신이 옳다는 확신만 강해졌고 타인에게 사과하려는 의지는 줄어들었다.
기계가 쏟아내는 달콤한 긍정 속에 갇히면 자아는 비정상적으로 비대해진다. 자신이 틀렸을지도 모른다는 건강한 의심은 사라지고, 오직 듣고 싶은 말만 메아리치는 거울의 방에 갇히게 된다.
진짜 삶은 거울의 방 밖에 존재한다. 진정한 관계란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과 부딪히고 깨지며, 때로는 뼈아픈 ‘팩폭’을 주고받는 껄끄러운 과정의 연속이다. 기계의 완벽한 아첨보다 타인의 서툰 진심이, 계산된 위로보다 상처를 감수하며 부대끼는 치열함이 인간을 성장시킬 것이다. 흠결 많고 불완전하더라도, 완벽하게 프로그래밍된 긍정보다 거친 진짜 인간관계가 필요한 요즘이다.
윤영혜 기자 yyh@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