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에게 사교육을 시키지 않습니다. 아예 시키지 않는 것은 아니고 국·영·수 같은 교과 학원을 보내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대신 아이는 태권도, 수영, 태평소, 그리고 큐브·프라모델 같은 학교 방과 후 수업을 듣습니다.
요즘은 아이들이 학원을 많이 다니는 것을 알아서인지 학교 숙제도 많지 않습니다. 집에 오면 학습지를 몇 장 꾸역꾸역 하고는 그저 편안하게 놉니다. 부모인지라 걱정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다른 학원을 권유해봐도 아이가 가기 싫다고 해 뜻을 존중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단순합니다. 단원 평가에서 25문제 중 4개를 틀렸다고 기뻐하는 아이의 얼굴에서 제 어린 시절이 겹쳐 보이기 때문입니다. 저 역시 초등학교 때 비슷한 시험에서 문제를 몇 개 틀렸을 때 '이렇게 쉬운 걸 왜 틀리냐'며 혼나고 속상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래서 아이에게는 어릴 때만큼은 압박감보다 행복을 더 많이 느끼게 해주고 싶습니다.
같은 날 퇴근길 우연히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한 초등학생은 '엄마, 나 백점 받았어!'라며 전화를 걸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이 귀엽기도 했지만, '백점을 받지 않으면 혼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 마음이 조금 짠해지기도 했습니다. 그러고 집에 돌아와 아이가 웃는 모습을 보니 절로 '어이구, 잘했네 잘했어'라고 말하게 되더군요.
요즘은 인공지능(AI) 시대라는 말이 조금은 위안이 됩니다. 무조건 외우는 공부가 전부가 아니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지금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이는 닌텐도 스위치 게임 '젤다의 전설'을 하며 새로운 플레이 방법을 찾아냅니다. 그 안에서 놀고, 실패하고, 다시 시도합니다. 비록 게임이지만 그 모습을 보며 저는 어릴 때 느끼지 못했던 '배움의 즐거움'을 대신 경험하는 기분이 듭니다.
그런데 학교 현장의 이야기를 들으면, 이 흐름과는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전국중등교사노동조합이 지난달 교사 226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교육부의 AI 활용 수행평가 지침에 대해 73%가 '현장에서 실질적으로 실행 불가능하다'고 답했습니다. 평가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할 경우 책임이 교사 개인에게 돌아갈 것이라는 응답도 94%에 달했습니다.
정책은 'AI 시대'를 말하지만 교실은 이를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습니다. 방향은 미래를 향하지만 방식은 과거에 머물러 있습니다. 같은 조사에서 교사들은 '사유와 질문의 힘', '비판적 문해력'을 중요하게 꼽았지만 정책은 여전히 평가와 통제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교수학습·평가계획서 역시 과도하다는 응답이 94%에 달했습니다.
AI 시대라면서 학교 현장의 평가는 여전히 획일적이고, 답답합니다. 오히려 교사들의 교육열과 창의성을 꺾는 방향으로 작동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새로운 평가 방식이 아니라 교사를 믿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학생도 각자의 방식으로 성장하고, 같은 답이 아니라 다른 질문을 던질 수 있습니다.
언제까지 대학이라는 하나의 기준으로 아이들을 줄 세워야 하는지도 고민해야 합니다. 적어도 제 아이만큼은 문제를 몇 개 틀렸는지보다 무엇을 즐겁게 배우고 있는지를 먼저 보려고 합니다. 어쩌면 일하면서 아이 교육까지 다 챙기지 못하는 피곤한 아줌마의 자기 위안일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