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뉴시스)
[뉴스토마토 이수정 기자] 전쟁은 멀리서 시작됐지만, 청구서는 가까운 곳에 날아들고 있습니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장기화되고 이란까지 전선이 확대되면서 중동발 충격이 국내 건설시장을 흔들고 있습니다. 호르무즈 해협 일대 물류가 막히자 철강·구리·알루미늄 등 주요 건설자재 수급에 비상이 걸렸습니다. 자재값은 치솟고, 공기는 늘어지고, 일부 현장은 사실상 공사 중단 상태에 빠졌습니다. 분양 일정을 잡지 못하는 건설사들이 늘면서 내년 입주 물량 급감은 이미 예고된 수순이 됐습니다.
최근 이런 문제를 '중동전쟁 탓'이라고 돌리지만 사실 이는 절반의 진실에 불과합니다. 이미 예전부터 건설업계는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2020년 코로나19 이후 원자재 대란이 시작됐고,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공급망은 한 차례 크게 흔들렸습니다.
그때마다 건설업계는 일시적 충격이라며 버텼지만, 금리 인상기에 공사비는 가파르게 오르고 분양가 현실화는 더디기만 했습니다. 수익성이 악화된 현장들은 착공을 미루거나 시공사 교체로 시간은 지나갔습니다. 2020년 초 100이던 건설 공사비 지수는 어느새 133까지 치솟았습니다.
하지만 공급망 다변화 논의는 수년째 제자리입니다. 특정 루트에 의존하는 자재 조달 구조는 그대로인 채, 위기가 올 때마다 외부 탓으로 넘겨왔습니다. 호황기에 분양 물량을 최대한 늘리는 데 집중하는 사이, 자재 재고 확보나 대체 공급처 개발은 뒷전이었습니다.
정부도 책임을 미룰 수 없습니다. 분양가 상한제와 각종 규제로 공급 유인을 옥죄는 사이 건설사들의 체력 떨어졌고, 미분양 리스크를 홀로 떠안은 중소 건설사들은 이미 줄도산 수순을 밟고 있습니다. 중동전쟁은 이 허약한 구조를 한꺼번에 드러낸 계기였을 뿐입니다. 공급망 다변화와 공사비 현실화라는 오래된 숙제를 이제는 풀어야 할 때입니다.
이수정 기자 lsj5986@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