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게 크게 작게 작게 메일
페이스북 트윗터
초인을 꿈꾼 프랑켄슈타인
입력 : 2026-03-31 오후 2:07:54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영화 ‘프랑켄슈타인’에서 생명을 창조해 자연의 질서를 단숨에 넘어서겠다는 주인공 빅터의 오만한 시도는 참혹한 비극을 낳는다. 의사인 빅터 프랑켄슈타인은 전혀 섞일 수 없는 이질적인 시체 조각들을 억지로 꿰매고 이어 붙여 완벽한 ‘초인’을 빚어내려 했다. 하지만 목적 없이 거대하게 부풀려진 기괴하고 흉측한 결과물 앞에서, 빅터는 자신이 저지른 맹목적인 행위의 끔찍함과 마주한다. 결국 그는 걷잡을 수 없이 커져버린 생명체에게 가장 먼저 등을 돌리며 스스로 책임마저 내팽개치는 무책임한 창조주가 되고 만다.
 
프랑켄슈타인이 된 대기업들.(사진=챗GPT)
 
스크린 속 흉측한 피조물의 모습에서 묘하게도 한국 자본시장을 호령하는 거대 기업들의 그림자가 겹쳐 보인다. 작금의 대기업들을 들여다보면 스스로를 모든 분야에서 전능한 ‘초인’이라 믿는 듯하지만, 실상은 섞일 수 없는 이질적인 사업들을 덕지덕지 이어 붙인 ‘프랑켄슈타인’과 다를 바 없다. 세계 최고 수준의 반도체를 구워내는 삼성그룹은 그룹의 한편에서 호텔을 운영하고 옷을 만들며 놀이공원의 롤러코스터를 돌린다. 과거 통신과 정유를 주력으로 삼다 글로벌 반도체 기업으로 도약한 SK 역시 여전히 토종 스마트폰 앱 마켓 ‘원스토어’를 운영하고 거대한 유선방송 ‘SK브로드밴드’를 거느리고 있다. 자동차 제조업체인 현대자동차는 현대건설과 현대카드의 최대 주주다. 각자의 핵심 경쟁력과는 논리적 연관성을 찾기 힘든 기이한 포트폴리오다.
 
우리나라 대기업 특유의 문어발식 팽창은 척박했던 고도성장기의 유산이다. 당시에는 부품부터 물류, 금융까지 모든 것을 자체 해결해야만 했기에 불가피한 선택이었을지 몰라도, 성장의 시대가 저문 지금까지 낡은 관성이 훈장처럼 남아있다. 거대한 제국을 3세, 4세 후계자들에게 고루 떼어주기 위해 진입 장벽이 낮은 외식업이나 호텔, 유통 사업 등을 억지로 껴안아야 하는 승계 구도의 폐해가 뼈대를 이룬다. 여기에 첨단 산업 투자에 필요한 막대한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매일 국민들의 지갑에서 현금이 들어오는 소비재 사업을 이른바 ‘캐시카우’로 쥐고 놓지 않으려는 구시대적 경영 방식도 한몫을 차지한다.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은 철저히 다른 문법으로 움직인다. 애플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현금을 쥐고 있으면서도 결코 엉뚱한 호텔을 짓거나 숙박업에 뛰어들지 않는다. 구글이나 MS 역시 자신들의 영토인 소프트웨어와 데이터 생태계 밖으로 함부로 촉수를 뻗지 않는다. 자신이 무엇을 가장 잘하는지 명확히 알고 있으며, 본업의 뼈를 깎는 혁신에만 자본을 집중한다. 섣부른 외형 확장 대신 클라우드나 인공지능(AI)처럼 기존 생태계의 지배력을 더욱 공고히 만들어줄 필수 기술에만 천문학적인 투자를 단행하는 것이 변하지 않는 원칙이다.
 
‘선택과 집중’이라는 글로벌 자본 시장의 상식과 달리, 한국형 문어발의 촉수는 전혀 무관한 일상의 틈새까지 불쑥 뻗어 있다. 플라자CC 용인 그늘집에는 ‘벤슨’ 아이스크림을 판다. 지난해 스타벅스에서 처음 맛본 뒤 꾸덕하고 고소한 풍미에 반해 쿠팡 프리미엄으로 종종 주문해 먹던 디저트였다. 당연히 미국 제품으로 여겼으나 알고 보니 한화갤러리아에서 론칭한 브랜드로, 김동선 미래비전총괄 부사장이 기획부터 출시까지 주도한 ‘야심작’이었다. 장갑차와 우주 발사체를 만드는 굵직한 방산 기업의 둥지 안에서 프리미엄 아이스크림이 팔리고 있는 풍경은 길을 잃고 팽창하는 한국 대기업의 현주소를 명징하게 보여준다.
 
이러한 기형적 팽창은 미래 에너지를 선도하겠다는 한화솔루션에서 절정에 달한다. 태양광 기업의 곳간에 휴양용 리조트 지분이 가득하고, 한화호텔리조트는 단체급식 회사 아워홈까지 삼켰다. 심지어 한화솔루션은 프로야구단 한화이글스 지분도 40% 넘게 쥐고 있는 데다 뜬금없는 부동산 개발과 디지털 헬스케어까지, 본업과 무관한 무차별적 확장의 연속이다.
 
문제는 이렇게 이질적인 사업들을 억지로 이어 붙인 기형적인 덩치가 온전히 유지될 수 없다는 점이다. 가장 뼈아픈 대목은 꿰매어진 피조물의 가면이 찢어지고 내재된 부실이 터져 나올 때 드러난다. 맥락 없는 확장으로 본업의 경쟁력을 잃고 경영의 스텝이 꼬일 때, 묵직한 실패의 책임은 어김없이 주주들의 몫으로 돌아온다. 흉측해진 결과물 앞에서는 책임을 회피하는 무책임한 창조주의 모습이다.
 
모든 분야에서 승리할 수 있고, 모든 것을 다 가져야만 직성이 풀리는 재벌의 낡은 서사는 이제 마침표를 찍어야 한다. 진정한 위대함은 이질적인 조각들을 꿰매어 몸집을 불리는 데 있지 않고, 무엇을 과감하게 잘라낼 것인가를 결단하는 데 있다. 스스로 초인이라는 환상에서 깨어나지 못하는 거인들에게 시장은 더 이상 관대하지 않다.
 
윤영혜 기자 yyh@etomato.com
윤영혜 기자
SNS 계정 : 메일


- 경제전문 멀티미디어 뉴스통신 뉴스토마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