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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빛과 그림자 사이
입력 : 2026-03-30 오후 5:09:33
회로를 이탈하다와 슈퍼모멘텀 서적.(사진=백아란기자)
 
지난 주말 두 권의 책을 읽었다.
 
하나는 SK하이닉스가 고대역폭 메모리(HBM)로 AI 시대의 핵심 플레이어가 된 과정을 담은 ‘슈퍼 모멘텀’, 나머지 하나는 반도체 직업병 피해자들의 삶을 기록한 ‘회로를 이탈하다’였다. 책은 반도체라는 하나의 산업에 대해 한쪽은 불황의 터널을 뚫고 나온 승리의 서사를, 다른 한쪽은 그 화려한 공정의 틈새에서 부서져 간 노동자의 몸과 삶을 이야기했다.
 
먼저 ‘슈퍼 모멘텀’은 SK의 자본과 기술, 그리고 집요한 승부사 기질이 만들어낸 ‘성공의 정석’을 보여준다. 1949년 설립된 국도건설부터 현대전자, 하이닉스, SK하이닉스까지 여러 차례 간판이 바뀌는 과정 속에서도 행진을 멈추지 않았기 때문이다.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사무실 형광등을 하나씩 빼고, 식당 냅킨이라도 아껴보자고 손수건 가지고 다니기 운동까지 했던 SK하이닉스의 성공 스토리는 깊은 울림을 남긴다. 반도체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이들이 가졌던 강한 의지와 행동이 결국 시장의 판을 뒤집은 까닭이다.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가 있었기에 반도체가 한국 경제의 엔진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엔진이 거세게 회전하며 굉음을 낼수록, 그 엔진 아래에서 열과 진동을 온몸으로 견뎌낸 이들이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에서 내놓은 ‘회로를 이탈하다’는 바로 그 지점을 응시한다.
 
한때는 반도체 미세 공정을 지탱하던 정밀한 톱니바퀴였으나, 이제는 병과 싸우며 자신의 고통이 ‘산업재해’임을 증명해야 하는 15명의 반도체 직업병 피해자들. 어떤 이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들어갔던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의 하루가 얼마나 고됐는지 이야기했고, 또 다른 이는 30대의 젊은 나이에 얻게 된 병을 이야기했다.
 
어린 아이들에게 ‘교대 근무하는 삶을 살지 말라’고 유언한 엄마와 아픈 자식을 떠나보내고 홀로 싸우는 삶을 택한 엄마, 가족들에게 미안하다는 40대 아빠는 반도체 축제의 이면이었다.
 
두 책을 나란히 놓는 순간, 반도체 호황은 다르게 읽힌다. 기술 경쟁의 승리는 값진 것이지만 무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반도체 호황의 빛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 빛이 광휘가 되기 위해선 아래에 깔린 그림자까지 함께 봐야 한다.
 
백아란 기자 alive0203@etomato.com
백아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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