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아연과 영풍·MBK의 경영권 분쟁으로 업계의 이목이 쏠렸던 고려아연 정기 주주총회는 예상보다 더 분명하게 고려아연 경영진 쪽으로 기울었던 것으로 보인다. 기관투자자와 소액주주들이 생각보다 더 적극적으로 고려아연 측에 표를 실어준 것이다.
지난 24일 서울 중구 코리아나호텔에서 고려아연 제 52기 정기 주주총회가 열렸다.(사진=뉴시스)
24일 열린 고려아연 제52기 정기 주주총회에서는 핵심 안건이었던 ‘집중투표에 의하여 선임할 이사의 수 결정의 건’에 대해 고려아연 측이 내놓은 ‘이사 5인 선임안’이 통과됐다. 앞서 고려아연과 영풍·MBK 측은 각각 ‘5인 선임안’, ‘6인 선임안’을 내놨다.
고려아연은 영풍·MBK 측의 이사회 진입 규모를 최소화하기 위해 5인 선임안을 제시했고, 영풍·MBK 측은 이사회 진입 폭을 넓히기 위해 6인 선임안을 제안했다. 이사 선임 규모 자체가 양측의 유불리를 가르는 구조였던 만큼, 이번 주총의 최대 쟁점으로 꼽힌 것이다.
이날 ‘이사 5인 선임안’은 찬성 62.98%로 가결됐다. 영풍·MBK 측이 제안한 ‘이사 6인 선임안’도 52.21%로 보통결의 요건은 충족했지만, 다득표 방식에 따라 더 많은 찬성을 얻은 고려아연 측 안건이 최종 채택됐다. 두 안건 간 격차는 약 10.8%포인트였다.
지분 구조를 감안하면 이 결과는 더 눈에 띈다. 업계와 시장에서는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측 우호 지분을 37~40%, 영풍 측 지분을 41~43% 수준으로 본다. 소수주주 지분율은 약 15% 수준이다. 이런 구도를 고려하면, 상당수 소액주주와 기관 자금이 고려아연 측 안건으로 향했다고 볼 수 있다.
이사 선임 결과도 같은 흐름을 보여준다. 1위는 미국 제련소 프로젝트 합작사 크루서블 JV가 추천한 월터 필드 맥라렌 메리티지캐피탈 이사회 의장으로 1561만2955표를 받았다. 2위는 최윤범 회장(1560만8378표), 3위는 황덕남 후보(1560만8288표)였다. 상위 1~3위를 모두 고려아연 측 인사가 차지했다.
특히 캐스팅보트로 꼽혔던 국민연금이 기권한 점까지 감안하면, 이번 결과는 더 명확해진다. 국민연금 지분율이 5.3%라는 점을 고려하면, 고려아연 측 후보들이 상위권을 휩쓴 배경에는 외국인과 기관, 소액주주의 지지가 예상보다 더 강하게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이사회 재편도 고려아연이 원하는 방향대로 흘러갔다. 업계에서는 이번 주총 결과에 따라 고려아연 측과 영풍·MBK 측의 이사회 구도가 9대6, 많게는 8대6 수준까지 재편될 수 있다고 봤다. 하지만 실제 표심은 고려아연 측에 더 힘을 실어줬고, 결과적으로 이사회 구도는 9대5 수준으로 정리됐다. 여기에 오는 9월 상법 개정안 시행으로 감사위원 선임 폭까지 확대되면 10대5 구도까지도 가능하다는 관측이 나온다.
결국 이번 주총은 단순한 승패를 넘어, 주주 표심이 어느 쪽으로 기울었는지를 확인한 자리였다. 영풍이 최근 3년 연속 영업손실을 낸 반면, 고려아연은 창사 최대 실적을 냈다. MBK 역시 최근 투자·경영 사례를 둘러싼 시장의 불안감을 완전히 해소하지 못했다. 주주들은 분쟁의 명분보다 실적과 경쟁력, 장기 성장 가능성에 더 무게를 실은 것으로 보인다.
결국 표심을 움직인 것은 복잡한 여론전이나 명분 싸움이 아니었다. 주주들은 결국 ‘누가 나에게 돈을 더 벌어다주냐’가 중요했던 것이다. 사실 가장 기본 중의 기본이다. 이번 고려아연 주총은 결국 그 가장 단순한 원칙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금 보여줬다.
박창욱 기자 pbtkd@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