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집중을 완화하겠다는 목표 아래 정부는 그간 수많은 공공기관을 지방으로 옮겼습니다. 전국 곳곳에 혁신도시가 들어섰고 각 지역에는 저마다의 성장 거점이 만들어졌습니다. 겉으로 보면 지방분권은 일정 부분 성과를 낸 듯 보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기대와 다릅니다. 지방으로 기관이 이전하고 건물이 새로 세워져도 지역 경제의 자생력은 충분히 살아나지 않았습니다. 사람만 이동한 채 지방 소외는 여전히 진행 중인 실정입니다. 결국 지방분권이라는 대의는 '기관을 어디로 옮길 것인가'라는 물리적 이전 문제에 머물러 있습니다.
이 같은 한계는 최근 다시 불붙은 금융 공공기관 지방 이전 논의에서 더욱 뚜렷하게 드러납니다.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기업은행, 금융감독원, 농협·수협 등 주요 기관들이 이전 대상으로 거론되고 있지만 금융업 특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논의되고 있습니다.
금융산업은 대표적인 집적 산업입니다. 은행, 증권사, 자산운용사, 감독기관이 한 공간에 모여야 정보가 빠르게 공유되고 의사결정이 이뤄집니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일부 기관만 떼어 지방으로 옮길 경우 효율성 저하와 비용 증가가 불가피합니다.
과거 사례도 이를 뒷받침합니다. 혁신도시로 이전한 공공기관 상당수는 여전히 주말 이동에 의존하는 생활 패턴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정주 여건이 충분히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이전이 이뤄지면서 가족과 떨어져 지내는 직원들이 적지 않습니다. 지역 내 소비와 경제활동으로 이어지는 효과도 제한적입니다.
금융 공공기관 이전 역시 같은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감독 대상과 주요 금융사가 수도권에 밀집해 있는 상황에서 감독기관만 지방으로 이동할 경우 업무 비효율이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정책금융기관 역시 산업과 기업이 모여 있는 수도권과의 연결이 약해질 경우 기능 수행에 제약이 생길 수 있습니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논의는 매번 선거를 앞두고 반복된다는 점입니다. 지역 균형발전이라는 명분은 분명 중요하지만 충분한 인프라와 산업 기반 없이 추진되는 이전 공약은 실효성을 담보하기 어렵습니다. 결국 표심을 의식한 정책 경쟁 속에서 장기적인 전략은 뒷전으로 밀릴 가능성이 큽니다.
지방분권은 단순한 이전으로 완성되지 않습니다. 기관을 옮기는 것을 넘어 산업과 일자리, 교육과 문화가 함께 움직여야 합니다. 사람이 머물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질 때 비로소 지역이 살아납니다.
공공기관 이전이 진정한 지방분권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물리적 이동을 넘어선 구조적 접근이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허울뿐인 결과를 마주하게 될 것입니다.
사진은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외경.(사진=뉴시스)
이재희 기자 nowhe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