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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을 조각하는 법
입력 : 2026-03-24 오후 3:06:00
[뉴스토마토 허예지 기자] 인공지능(AI) 산업 한가운데, 낯선 이력 하나가 눈에 띕니다. 스코틀랜드 출신의 여성 철학자 아만다 아스켈. 그는 오픈AI 정책팀 연구원을 거쳐 앤트로픽에서 상주 철학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주 업무는 생성형 AI '클로드'의 윤리와 정체성을 설계하는 건데요. 
 
그의 일을 간략히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클로드의 신뢰도와 합목적성을 높이기 위해 매일 방대한 대화를 나누고, 행동 지침이 되는 프롬프트를 작성하며, 돌아오는 응답을 통해 추론 패턴을 분석합니다. 이른바 파인튜닝, AI 정렬 작업입니다.
 
아스켈은 지난달 미 <월스트리트 저널>과의 인터뷰에서 "AI에게 인간적인 측면을 인정한다"며 "AI 모델들은 필연적으로 자아를 형성하게 될 것"이라고 소신을 밝혔습니다. 그의 궁극적 목표는 클로드를 '선한 존재'로 만드는 것이라는데요.
 
그는 자신의 일을 아이를 양육하는 데 비유하기도 했습니다. 부모가 자녀를 대하듯, 단순히 명령어를 입력하는 게 아니라 AI가 스스로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고 싶다는 것이죠. 그는 최근 본인 소셜미디어에 "클로드의 '영혼'을 완성하는 일이 삶의 목표"라고 적기도 했습니다. 
 
단순한 도구를 넘어, 스스로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존재. 영혼에 빗댈 만큼의 인격을 가진 존재. 이것이 현재 글로벌 AI 기술을 선도하는 기업의 '윤리 담당자'가 그리는 AI의 정체성인 셈입니다. 그의 생각은 한 개인의 소신에 그치지 않고, 일상과 전쟁, 산업을 통해 전 세계로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문득, 그의 행보 위로 오래된 신화 속 인물 하나가 겹쳐 보입니다. 자신이 만든 조각상을 사랑하게 된 조각가. 자기 작품을 살아 있는 존재처럼 대했고, 신의 도움을 받아 그를 연인으로 맞이하게 된 피그말리온인데요.
 
이 신화에서 비롯된 심리학 용어 '피그말리온 효과'는 타인에 대한 기대와 믿음이 실제 결과로 이어지는 현상을 가리킵니다. 아스켈 뿐 아니라 인류가 AI를 대하는 방식은 사실 피그말리온과 닮아있습니다. AI 기술에 많은 것을 기대하면서 그것이 현실화하길 바라고 있죠. 수익성과 생산성, 선의와 공정성, 윤리, 책임감, 효율성, 정서적 능력, 상품성, 노동력, 창의성까지. 바라는 게 많기도 많습니다. 
 
결국 하나의 질문이 남았습니다. 인류는 과연 피그말리온이 될 수 있을까요? AI를 향한 이 집단적 믿음이 현실로 이어질지, 오늘날의 끊임없는 투자와 기대가 훗날 역사에 AI의 '영혼을 조각한 시간'으로 기록될지 궁금합니다. 상용화한 AI 서비스에 윤리적 기준을 부과하는 건 반드시 필요한 절차이지만, 우리가 너무 인간적인 나머지, 기계에 지나치게 마음을 투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피그말리온을 지켜보던 마을 사람들의 시선을 상상해 봅니다. 한 발짝 거리를 두고 보면, 그의 사랑은 기행에 가까웠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앤트로픽 상주 철학자 아만다 아스켈. (사진=아만다 아스켈 웹페이지)
 
허예지 기자 rang@etomato.com
허예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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