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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 '습격'
입력 : 2026-03-20 오후 2:49:35
케이팝 팬덤이 국민연금공단의 업무를 마비시키는 초유의 일이 벌어졌습니다. 특정 아이돌 그룹 멤버의 탈퇴를 둘러싼 해외 팬들의 항의가 집단적으로 제기되면서, 국민연금이라는 공적 자산 운용 기관이 그 대상이 된 것입니다.
 
그 출발점은 하이브 자회사 소속 그룹 ‘엔하이픈’ 멤버 희승의 탈퇴입니다. 팬들은 국민연금이 하이브 지분 약 7.5%를 보유한 주요 주주라는 점에 주목했고, 이를 '영향력'으로 해석해 인사 결정에 대한 책임까지 묻는 행동으로 이어졌습니다. 그 결과 국민연금 국제연금지원센터에는 단시간에 수천 건의 전화와 이메일이 몰리며 업무가 일시 마비되는 상황까지 발생했습니다.
 
국민연금은 국민의 노후자금을 운용하는 장기 투자자로, 개별 기업의 경영이나 인사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갖고 있습니다. 투자와 경영이 분리되지 않으면 자본시장 신뢰 자체가 흔들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이번 사안이 단순한 오해로만 보이지 않는 이유는 팬덤의 집단 행동이 주주 행동주의와 닮아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들은 법적 의미의 주주는 아니지만, 집단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며 기업 의사결정에 문제를 제기하는 방식에서는 유사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과거에는 소액주주들이 의결권을 모아 경영진을 견제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습니다. 반면 이제는 국경을 넘어 수천 명이 동시에 특정 기관에 압박을 가하는 것이 가능한 환경이 됐습니다. 이는 '조용한 주주'가 '행동하는 집단'으로 변화할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최근 상법 개정과 맞물려 주주권 강화 흐름이 본격화되고 있습니다. 행동주의 펀드의 영향력이 커지고 일반 주주의 참여도 확대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자본시장 측면에서 긍정적인 진전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방향입니다. 
 
주주 행동주의의 본질은 기업가치 제고와 지배구조 개선에 있습니다. 경영진의 의사결정이 기업가치를 훼손할 때 이를 견제하고, 장기적으로 주주와 시장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개입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그러나 이번 사례처럼 감정이나 사익이 중심이 될 경우, 행동의 정당성과 효과는 약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번 국민연금 사태는 '누가, 어떤 방식으로 기업에 영향력을 행사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팬덤의 집단 행동까지 자본시장에 등장한 것은 상법과 주주가치 개념이 일반 대중에게 확산됐음을 보여주는 신호입니다. 이제 필요한 것은 이 에너지를 기업가치 제고라는 본래 목적에 맞게 정렬하는 일입니다. 감정이 아닌 책임 있는 참여로 이어질 때 주주 행동주의는 비로소 시장을 건강하게 만드는 힘이 될 수 있습니다.
 
김민석 국무총리가 1월21일 서울 용산구 하이브를에서 케이팝 보이그룹 엔하이픈과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지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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