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수정 기자] 밀란 쿤데라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인생은 단 한 번뿐이고, 어떤 선택도 다시 할 수 없기에 결국 모든 것은 가벼울 수밖에 없다고. 처음엔 허무하게 들렸습니다. 열심히 살아도, 신중하게 고민해도, 결국 한 번으로 끝나는 게 인생이라면 뭘 그렇게 진지하게 살았나 싶어서.
그런데 곱씹을수록 반대로 읽힙니다. 단 한 번이기 때문에, 우리는 아무것도 미리 알 수 없습니다. 리허설도 없습니다. 지금 이 선택이 10년 뒤 어떤 결과를 낳을지, 오늘 만난 이 사람이 내 인생을 어떻게 바꿀지, 아무도 모릅니다.
이번 칼럼이 유통 출입처에서 쓰는 마지막 글이 될 테니 그래도 관련 이야기를 잠깐 해보겠습니다. 불과 10여년 전만 해도 대형마트는 유통의 절대 강자였습니다. 주말마다 카트를 끌고 마트를 누비는 풍경은 한국인의 일상이었고, 누구도 그 질서가 흔들릴 거라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유통업계 2위였던 홈플러스는 기업회생 절차를 밟고 있고, 이마트와 롯데마트도 매출이 줄어드는 상황입니다. 반면 쿠팡과 네이버쇼핑은 그 자리를 빠르게 채웠습니다. 마트를 규제하는 사이 소비자들은 스마트폰을 집어 들었고, 아무도 그 속도를 예측하지 못했습니다.
아이러니한 건, 지금 그 대형마트에 새벽배송을 허용하자는 논의가 한창이라는 점입니다. 골목상권을 지키겠다며 마트 문을 닫게 했던 규제가, 이제는 마트 스스로를 벼랑 끝으로 내몰았다는 반성에서 나온 이야기입니다. 누가 이 결말을 예상했을까요.
우리는 자꾸 인생을 예측 가능한 것으로 만들려 합니다. 5년 후를 설계하고, 리스크를 계산하고, 변수를 통제하려 듭니다. 유통 정책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전통시장을 살리겠다는 명확한 목표가 있었고, 대형마트를 묶으면 된다는 논리는 단순하고 명쾌했습니다. 그런데 변수는 엉뚱한 곳에서 나타났습니다. 규제의 빈자리를 채운 건 전통시장이 아니라 이커머스였습니다.
쿤데라가 말한 '가벼움'은 어쩌면 체념이 아니라 해방일지도 모릅니다.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없다는 걸 받아들이는 순간, 오히려 지금 이 순간에 더 솔직해질 수 있습니다. 계획대로 되지 않아도, 예상 밖의 일이 터져도, 그게 인생의 오작동이 아니라 인생의 본래 모습이라는 걸 알게 된다면.
이수정 기자 lsj5986@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