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음악으로 재탄생한 판소리…이날치, 1집 정규 ‘수궁가’
입력 : 2020-05-29 14:20:45 수정 : 2020-05-29 14:20:45
[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범 내려온다. 범이 내려온다. 장림 깊은 골로 대한 짐승이 내려온다.”
 
80년대 신스팝, 뉴 웨이브의 리듬 위로 구수한 한국 전래가 신명난 광대처럼 외줄을 탄다. 턱 빠진 별주부가 토생원호생원으로 잘못 부르는 바람에 난데없이 호랑이가 내려온다는 수궁가일부 내용. 호랑이 걸음걸이를 연상시키는 베이스라인과 이에 맞춰 흐물거리는 안무단들, 속사포 랩처럼 쏟아지는 아니리(판소리에서 말로 전하는 이야기로, 창과 대비되는 개념).
 
독특한 개성의 국악 요소를 현대적인 밴드 사운드에 비벼낸 이 묘한 음악은 밴드 이날치의 범 내려온다’다. 해당 네이버 온스테이지 영상은 조회수 130만을 넘어설 정도로 대중음악계의 파란을 일으키고 있다.
 
이 아찔한 곡이 포함된 이날치의 정규 1집 앨범 수궁가29일 정오 발표됐다.
 
본래 수궁가는 별주부가 용왕의 병을 고치기 위해 토끼를 속여 용궁으로 데려오지만, 토끼가 기지를 발휘해 육지로 살아 나온다는 내용의 현전 판소리 작품이다. 동물들을 주인공으로 바다 세계의 신의와 배신을 주로 다루는 이 작품은 갑질횡포, 사내정치, 살기 위해 속고 속이는 서스펜스와 반전 등 동시대에 크게 공감될 내용이 적지 않다.
 
전체를 노래하는 데만 약 3시간이 걸리는 이 원작을 밴드는 대중음악에 맞게 각색했다. 인상적인 장면을 골라 목소리로 송라인을 구성하고 여기에 베이스와 드럼, 신시사이저로 살을 붙였다. 지난해 12월부터 차례로 발표한 네 장의 싱글 어류’, ‘토끼’, ‘호랑이’, ‘자라에 수록된 8곡과 신곡 3, 11곡이 수록됐다.
 
이날치 매니지먼트사인 '잔파'의 관계자는 뉴스토마토에 수궁가 원작은 워낙 길고 방대하며 한자가 많은 탓에 이해하기 쉽지 않은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이를 대중음악으로 만들어 보겠다는 일념으로 작업했다. 80년대 신스팝과 뉴웨이브가 엿보이는 드럼, 베이스의 리듬 위로 판소리 솔로와 합창이 교차되고 반복되는 신선한 음악이라고 설명했다.
 
서브 타이틀곡 별주부가 울며 여짜오되는 간을 육지에 두고 왔다는 토끼의 말에 넘어간 용왕이 토끼의 환심을 사기 위해 잔치를 열어주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이를 본 별주부는 답답한 마음에 토끼에 속지 말라며 충언을 한다. 펑크 기운을 뿜는 간주가 곡을 고조시키고, 팽팽한 긴장감과 두 주인공의 절실함이 끊임없는 리프와 하이톤으로 노래된다.
 
용왕이 갑자기 속병을 얻었다는 약성가를 시작으로 앨범은 토끼 간을 구하기 위한 원작 서사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어류도감’, ‘신들의 고향’, ‘호랑이 뒷다리’, ‘일개 한퇴’,‘ 좌우나졸’, ‘말을 허라니, 허오리다’, ‘별주부가 울며 여짜오디’, ‘의사줌치등이 담겼다.
 
밴드 이날치. 사진/잔파
 
이날치는 영화 타짜’,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곡성’, ‘부산행의 음악감독이자 어어부프로젝트, 씽씽에서 활약한 베이스 장영규를 주축으로 한 팀이다. 장기하와 얼굴들의 베이스 정중엽, 씽씽의 드럼 이철희, 개성넘치는 소리꾼 권송희, 신유진, 안이호, 이나래로 구성돼 있다.
 
이날치라는 밴드명은 조선 후기 판소리 명창 이날치(1820~1892)에서 따왔다. 팔명창에 속하는 인물로 본명은 이경숙이다. 날치는 줄타기를 하던 젊은 시절 날치 같이 낼쌔게 줄을 잘 탄다고 해서 얻어진 예명이다.
 
2019년 초 결성된 밴드는 현대카드 큐레이티드 53: 들썩들썩 수궁가공연을 시작으로 서울인기페스티벌, 잔다리페스타 등의 무대에서 이름이 알려졌다. 두 대의 베이스와 드럼, 네 명의 판소리 보컬이 만들어 내는 오묘한 하모니와 주술 같은 가사, 앰비규어스 댄스 컴퍼니의 현란한 몸짓은 흡사 전통 시각예술을 보는 착각을 일으킨다.
 
이수정 잔다리페스타 사무국장 겸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 기획운영팀장은 북과 목소리로만으로 청중을 사로잡던 명창 이날치의 시대는 갔지만 대신 우리 시대 다양한 팝의 언어를 담은 사운드와 아트워크로 무장한 밴드 이날치가 있다밴드는 18세기 팝인 판소리를 21세기로 데려와 대중음악으로서의 본질을 전면에 내세운다. 이번 앨범으로 수궁가의 스토리와 세계관, 치명적 관계, 속고 속이는 플롯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소개했다.
 
이날치 정규 1수궁가29일 정오 디지털, 69LP로 발매된다. 이날치는 711일 여우락페스티벌, 719DMZ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에 출연한다.
 
이날치 1집 '수궁가'. 사진/잔파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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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권익도

자유롭게 방랑하는 공간. 문화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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