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결백함을 보여줘
입력 : 2015-09-13 13:59:25 수정 : 2015-09-13 14:00:01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 중국 고전인 대학(大學)에 나오는 문구이지만 만고불변의 진리로 통한다. 평범한 범인이 머무를 수밖에 없는 수준과 지도자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일반적인 사람은 세속의 온갖 욕심과 번뇌에 휘둘리게 되고 이를 헤쳐 나가기조차 쉽지 않다. 발버둥을 쳐봐야 갈 수 있는 수준은 제 한 몸 추스르는 정도에 머무른다. 자기 스스로를 갈고 닦고 가족까지도 다스리는 수준이 되면 드디어 천하에 나가 사자후를 토하더라도 가로막힘이 없다. 적어도 지도자라면 말이다. 한국 정치가 깊은 수렁에 빠져있다. 범인들의 경계인 자기를 벼리는 수준은 물론이거니와 가족을 다스리는 일마저 구멍이 숭숭 뚫려있다.
 
대통령 선거에서 3번 도전했지만 결국 고배를 마신 이회창 전 총재의 경우도 가족 이슈와 무관하지 않다. 대법관과 국무총리를 역임했고 대쪽 총리라는 대국민 이미지로 승승장구했었다. 보수정당의 총재로서 ‘대세론’ 여세를 몰아 대통령 당선 문턱까지 갔었던 그였다. 그러나 이 전 총재를 마지막 순간에 추락시킨 원인은 자신의 개인적 비리도 대선후보로서의 능력 부족도 아니었다. 아들의 병역 문제였다. 이 전 총재의 아들이 대통령이 되는 일도 아니었지만 국민들은 가족의 논란을 좌시하지 않았다. 결국 98년 대통령 선거의 가족 문제는 2007년 10여년에 걸친 이 전 총재의 대선 도전을 가로막았다. 이 총재에게 아들이 없고 딸만 있었더라면 역사는 달라졌을까. 현 정부 들어서도 정치 지도자의 가족 문제는 사라지지 않았다.
 
박근혜 정부의 초대 국무총리 지명자인 김용준 전 헌법재판소장 역시 가족 문제라는 허들을 넘지 못하고 좌초되었다. 법관으로 인품으로 김 전 재판소장을 흠모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임명되는 시점만 하더라도 여론은 대체적으로 호의적이었다. 대통령의 지역 안배에 따른 통합적 인사에 대한 찬사마저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가족 문제가 불거지며 호의적 여론은 돌연 비판으로 돌아섰다. 두 아들의 병역문제가 걸림돌이 되었다. 면제 사유에 대해 일반 국민들은 수긍하기 힘들었고 자녀의 취업에 대해서도 특혜 논란이 제기될 정도였다. 국민들은 김 전 재판소장에 대해 국무총리로서의 수행능력은 의심하지 않았을 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지도자 중 한 사람이 될 인물이 ‘제가(齊家)’하지 못한 것으로 국민들은 여겼고 ‘치국평천하’는 안 될 일로 판단했다.
 
인간의 망각은 본능적이지만 최근 여의도 정치권이 다시 국민들로 하여금 수신제가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를 머릿속에 되뇌게 하고 있다. 집권여당인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사위의 마약문제로 정치적 곤경에 빠져있다. 일부에서 제기하는 판결에 영향력을 행사했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정쟁적 의혹이 아니라 객관적인 법리적 해석이 이루어져야 마땅하다. 그렇지만 정치적으로는 여론의 호된 뭇매를 비껴가기는 힘들어 보인다. 김 대표 자신이 저지른 일도 아니고 딸의 일탈도 아니었다. 그저 가족의 일원이 된 사위의 과거 불미스런 행적에 불과하다고 억울함을 토로할지도 모르겠다. 문제는 김 대표가 평범한 일반인이라는 아니라는 점에 있다. 그냥 장삼이사(張三李四) 저잣거리의 한 사람이라면 모를 일이다. 비중 있는 정치인이고 차기 대통령 후보로 떠오르는 우리 사회 리더 중 한사람이고 그 가족의 일이기에 그냥 넘기지 못하는 이유이다.
 
사실관계가 더 명확하게 밝혀져야겠지만 새정치민주연합윤후덕 의원의 자녀 의혹 논란 또한 대중들의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가족관계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새누리당 심학봉 의원은 여성 성추행 파문으로 최초의 여성 대통령 탄생 의미마저 무색하게 했다. 정치적인 부담뿐만 아니라 내년 총선을 앞두고 여성유권자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을 전망이다. 사위 문제로 드러났지만 새누리당 김 대표 자녀의 결혼식은 일반인은 엄두조차 내기 힘든 고급스런 장소에서 치러졌다. 하객들로 빼곡히 들어찬 천정배 무소속 의원의 자녀 결혼식도 우리 사회에서 요구되는 ‘작은 결혼식’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리서치앤리서치가 KBS의 의뢰를 받아 지난 8월 10~11일 실시한 조사(전국1000명 유무선RDD전화조사 표본오차95%신뢰수준±3.1%P)에서 ‘앞으로 대한민국의 발전을 위해 가장 우선적으로 해결해야할 과제’를 물어본 결과 ‘정치권의 무능과 대립’, ‘부정과 부패’가 가장 높았다. 지도자는 국민들이 모범으로 삼을 수 있는 행보를 내딛어야 한다. 그냥 일반인들의 삶처럼 세속적인 욕심에서 벗어나지 못할 정도라면 ‘리더’의 자리는 내놓아야 한다. 92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된 클린턴의 캐치프레이즈는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였다. 지금 정치권 리더들에게 던지는 우리 국민들의 캐치프레이즈는 ‘결백함을 보여줘, 문제는 가족이야’로 모아진다.
 
 배종찬(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