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고아성 "다른 사람이 되는 재미를 알아버렸다"
입력 : 2015-08-27 18:12:27 수정 : 2015-08-27 18:12:27
[뉴스토마토 함상범기자] 영화나 드라마에서 고아성은 늘 단단한 인상을 풍겼다. 성격은 제각각 달라도 맡는 인물마다 굳은 심지가 엿보였다. 괴물에게 잡혀가기도 하고(<괴물>), 표정 변화 없이 총살을 하며(<설국열차>), 하나 밖에 없는 동생이 자살하는 시련을 겪고(<우아한 거짓말>), 스무 살에 아이를 출산해야 했으니(<풍문으로 들었소>) 아무래도 강인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영화 <오피스>에서 고아성이 연기한 미례의 얼굴은 기존의 얼굴들과 사뭇 다르다. 처음에는 나약하고 불안하다. 정규직이 되지 못할까 노심초사해 하는가 하면 사내 왕따를 당하기도 한다. 그저 선배들에게 굽실거리기 일쑤다. 영화 후반부부터는 잔인하고 섬뜩하다. 그간 어디서도 보여주지 않았던 얼굴이다.
 
<오피스>에서 열연을 펼친 고아성. 사진/포도어즈 엔터테인먼트
 
새 얼굴로 돌아온 고아성을 지난 26일 서울 삼청동 한 커피숍에서 만났다. 지난해 <우아한 거짓말> 개봉을 앞두고 인터뷰했을 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풍겼다. 당시 극중에서 교복을 입었었기 때문인지 몰라도 고아성은 풋풋했다. 1년이 지난 뒤 <오피스>에서 의상은 블라우스로 바뀌었다. 화장기가 짙은 숙녀의 모습이다. 1년 사이 몰라보게 성숙해진 그는 그간 작품과 연기에 대한 생각이 많이 변화했다고 털어놨다.
 
고아성은 <우아한 거짓말>을 끝내고 <오피스>를 선택했다. <우아한 거짓말>에서 고아성은 동생의 자살이라는 커다란 슬픔을 꾹꾹 누르며, 동생의 죽음을 파헤쳤던 만지로 분했다. 나이가 많은 엄마보다 더 담담했었다. 120분 동안 감정을 표현하는 장면은 단 한 번뿐이었다.
 
<오피스>에서는 감정을 극단적으로 오간다. 중반부까지는 다소 웅크린 듯한 모습이지만, 후반부에서는 가공할 만한 분노의 감정을 드러낸다. 여느 영화에서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진폭이 큰 캐릭터다. <오피스>를 선택한 배경을 들어봤다.
 
고아성은 "작품을 선택할 때 패턴이 있다. <설국열차>가 끝나고 '자연스럽고 현실적인 역할'을 해야겠다고 생각해서 <우아한 거짓말>을 했다. 그 때는 감정을 눌러 연기했다. 그래서 다음에는 감정을 한껏 발산하는 연기를 하려 했다. 그래서 정신력이 뼛속까지 약해 급기야 엇나가게 되는 미례를 선택했다"고 말했다.
 
고아성은 '스릴러 마니아'다. 거의 모든 스릴러물을 봤을 정도다. 하지만 스릴러 장르에 도전한 적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스릴러 마니아는 "신선한 스릴러를 보여줄 수 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에 이번 영화를 택했다"고 밝혔다.
 
"이 영화에는 스릴러에 특화된 인물이 없어요. 타고난 사이코패스나 절대 악이 없어요. 피해자와 가해자가 나뉘어져 있는 것도 아니에요. 반전도 분명히 있는데, 확 놀라게 하는게 아니라 서서히 스며드는 느낌이죠. 이 영화를 꼭 하고 싶었어요. 조직생활에 깊숙이 스며든 폭력을 말하고 싶었거든요."
 
그의 설명대로 영화 속에는 신선한 시도가 널려있다. 그래서일까, <오피스>를 두고 직장인의 애환을 다룬 드라마 <미생>이 떠올랐다는 이도 있고, 혹자는 영화 스릴러와 호러 장르를 접목시킨 <숨바꼭질>이 생각났다고도 했다. "앞으로 후배들에게 잘해줘야겠다"는 반응도 적지 않았다. 영화의 성격을 한 마디로 규정하기 힘들지만 다양한 이야기 거리가 생기는 영화인 것만큼은 분명하다.
 
영화의 중심을 이끌어 가는 인물은 고아성이 연기한 미례다. 영화 속 소심하고 나약한 미례는 일련의 사건을 접하면서 '괴물'이 된다. 잔인한 액션을 감행하기도 한다. 얼굴은 악마라도 씌인 듯 무섭기 그지 없다. 카메라가 그를 비출 때마다 객석에서 비명이 터져나온다.
 
고아성에게 "이제껏 보지 못했던 고아성의 섬뜩한 얼굴을 봤다"고 했더니 흡족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연기적인 면에서 많은 이들에게 인정받는 고아성은 예상 밖으로 일 못하는 미례에게 어렵지 않게 공감한 듯했다.
 
"아마도 미례가 나랑 닮아서 더 자연스럽게 생각한 것 같아요. 나도 성실한 것 말고는 내세울 게 없거든요." 모순된 발언 같아 속내를 좀더 들어봤다.
 
"어느 날 연기를 열심히 하고 집에 왔는데, 뭔가 찝찝했어요. 연기를 열심히는 했는데, 잘한 것 같지는 않았거든요. 그 때 '나도 열심히 하는 것 말고는 무슨 무기가 있지?'라는 생각이 들었죠. 그 때 많이 놀랐어요. 늘 열심히만 하고 성과는 없는 사람들을 연민하고 있었는데, 그게 나였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고아성. 사진/포도어즈 엔터테인먼트
  
한때 <괴물> 이후 작품 활동이 뜸했던 그는 어느새 다작 배우가 됐다. 2년 전 <설국열차>를 시작으로 <우아한 거짓말>, <오피스>, <풍문으로 들었소>, <뷰티 인사이드>, <오빠 생각>, <지금은 맞고 그 때는 틀리다>까지 적잖은 작품에 등장했다. 계기가 궁금했다.
 
"꾸준히 작품을 내놓는 재미를 알게 됐어요. 이전에는 제 리듬이 1년에 한 작품이었어요. 준비하고 촬영하고 빠져나오고 하면 딱 1년 걸리거든요. 이제는 그렇지 않아요. 빠져나오는 시간이 빨라졌어요. 그리고 다른 사람이 되는 재미를 알아버렸어요. 연기하는 게 정말 즐거워졌어요. 스케줄이 겹치지만 않으면 더 많이 작품 활동을 하고 싶어요."
 
열심히 한 덕에 고민도 덩달아 깊어졌지만 앞으로도 더 많은 작품에 출연하겠다는 게 고아성의 생각이다. 연기의 재미를 알아버린 그는 앞으로 즐기는 연기자가 되겠다고 했다. 고아성의 차기작은 이한 감독의 영화 <오빠 생각>이다. 현재 행복하게 촬영을 하고 있다는 그는 "아마 차기 영화에서는 정신이 건강한 아이를 볼 수 있을 거예요"라면서 웃음을 지었다.
 
함상범 기자 sbrai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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