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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혁의 스포츠에세이)이번 월드컵은 서울광장을 피하자
2014-05-19 13:40:31 2014-05-19 13:45:01
◇경기도 파주 국가대표트레이닝센터(NFC)에서 훈련하고 있는 브라질월드컵 대표팀. ⓒNews1

[뉴스토마토 임정혁기자] 2002월드컵은 4강 이상의 것들을 줬다. '광장 문화'도 그중 하나다.

새천년의 서울광장은 붉은 물결로 가득했다. 서울뿐만 아니었다. 각 지역의 광장은 응원이란 명목 아래 붉은 물결로 응집했다. 월드컵 티와 응원가는 사람들을 한데 묶었다. 국민들은 집단적 신명을 느꼈다.
 
외신들도 관심을 가졌다. 그들은 이토록 많은 사람이 모였는데 큰 사건사고 하나 없이 성숙한 응원 문화를 보였다고 높이 평가했다.

일부에서는 눌려있던 한국 사회의 감정적 폭발을 조명하기도 했다. 급격한 경제 성장을 이룬 한국 사회의 전환점을 얘기하기도 했다.
 
히딩크 감독의 어퍼컷 세리머니는 전 세계를 향한 한국의 강인함을 표현하는 하나의 기호가 됐다. 그 이후 4년마다 6월은 뜨거웠다.
 
하지만 최근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홍명보호를 둘러싼 기류가 묘하다. 아직 세월호 사고는 수습되지 않았다. 큰 축제를 앞뒀지만 예전처럼 모두가 즐길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홍명보 감독도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는 지난 8일 브라질월드컵 최종명단 23명 발표에 앞서 "여러분께서 저희 팀을 비유할 때 '홍명보호'라고 많이 말씀해 주신다. 이번 세월호 사고를 통해 제가 갖게 된 책임을 알게 됐다"며 "사명감으로 국민 여러분께 희망의 불씨를 전하도록 온 힘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화두는 서울광장이다. 아직 이곳은 세월호 희생자 분향소가 운영되고 있다. 아쉬운 발걸음이 있는 곳이다. 손에 잡히지 않는 무언가를 향한 분노가 맴도는 장소다.
 
서울광장이라는 상징성을 앞세워 계획된 모든 행사도 취소됐다. 월드컵 붉은 물결이라고 예외일 수 없다. 한 달 앞으로 다가온 세계적인 축제에 "대한민국"이란 외침이 공허할 수 있다.
 
◇서울광장에 모여 세월호 사고 희생자를 애도하는 시민들. ⓒNews1

특히 '즐겨라 대한민국'이란 축구대표팀의 슬로건은 더욱 아프게 다가온다. 모두 모여 이를 외치기엔 가슴이 쓰리고 상처가 깊게 팼다.
 
한국 사회에서 스포츠는 '3S' 중 하나로 치부될 때가 있다. 지금 20대 30대는 조금 덜하지만 나이가 많아질수록 스포츠는 그저 대중의 볼거리 정도이며 주변적인 사안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짙다. 그 안에 있는 몸짓과 고통을 넘어선 아름다움은 우선 더 중요한 것들을 충족시킨 다음에 공유되곤 한다.
 
이를 깨트렸던 것이 4년 마다 개최된 월드컵이었다. 그리고 이 가운데 2002년 한일월드컵은 큰 변곡점이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2002년 이전의 응원 모습이 필요하다. 각자의 방식으로 월드컵을 바라보는 문화가 나올 때다. 
 
모두에게 슬픔을 강요할 수는 없지만 때에 맞지 않는 즐거움을 자제하자고 조언할 수는 있다.
 
이번 브라질월드컵에서는 서울광장이 조용해야 한다. 그런 월드컵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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