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진아·유지웅 기자] 한국 경제에 드리워진 먹구름이 짙어지고 있습니다. 국내 정치적 불확실성이 장기화하면서 내수 침체의 시름이 깊어지고 트럼프발 무역 장벽이 확대되면서 저성장의 경고음이 커지고 있습니다. 국내외 주요 기관들은 이미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1%대 중반대로 끌어내리면서 경기 하방 위험이 커지고 있다고 진단합니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정책에 세계 경제가 '시계 제로'에 놓은 상황에서 한국은 리더십 부재에 사실상 무방비 상태인 점을 우려합니다. 한국을 겨냥하며 점점 더 조여오는 트럼프발 관세 폭탄에 실효성 있는 위기 대응이 절실하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무역적자국 '한국' 숨통 조여오는 트럼프
한국 경제를 조여오는 트럼프발 리스크는 갈수록 커져가고 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는 다음 달 초 상호관세 발표를 앞두고 미국이 무역적자를 보고 있는 대표적인 국가 중 하나로 한국을 거론하며 비관세 장벽까지 촉구하고 나섰습니다. 실제 케빈 해셋 미국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은 17일(현지시간) 현지 경제매체 <CNBC>와의 인터뷰에서 "유럽·중국·한국에 대한 무역적자가 수년째 지속되고 있다"며 미국이 무역적자를 보고 있는 대표적인 국가 중 하나로 한국을 콕 집어 언급했습니다.
그는 "비관세 장벽이 있는 데다 관세가 높아 적자가 발생한다"며 "그들(대미 무역흑자국)이 당장 모든 장벽을 낮추면 협상은 끝난다. 그러나 장벽을 없애지 않는 나라엔 관세를 부과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그러면서 "분명히 지금부터 (상호관세가 발표되는) 4월2일까지 일부 불확실성이 있을 것"이라면서도 "그러나 4월이 오면 시장은 상호주의적 무역정책이 매우 타당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한·미 양국은 자유무역협정(FTA)으로 이미 다수 품목에서 서로 관세를 부과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날 발언은 '30개월 이상 소고기 수입 금지' 등 한국의 농산물 규제를 포함해 비관세 장벽을 모두 걷어내라는 의미로 풀이됩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상호관세를 매길 때 상대국의 관세뿐 아니라 비관세 장벽 등 불공정한 규제까지 반영하겠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국가 수장 공백에 뾰족한 묘수가 없는 정부는 난감할 수밖에 없습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다음 달 2일 전까지 미국과 실무 협의를 통해 이 문제를 풀어가겠다는 계획이지만, 미국이 어떤 의제를 구체화할지 알 수 없습니다. 앞서 정인교 통상교섭본부장은 지난 13~14일 미국을 방문해 제이미슨 그리어 USTR 대표 등을 만났을 때도, 미국 측은 "비과세 장벽 전반을 챙겨야 한다"고만 했을 뿐 구체적 품목·영역을 제시하지는 않았습니다.
현재 산업부가 미국 측 공식 요청에 앞서 선제적으로 관련 무역 장벽을 풀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정부 부처 간 협의가 필요한 사안인 데다, 국가 수장 공백 상태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담판을 짓기도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한·미 FTA 개정 가능성도 마찬가지입니다. 산업부 관계자는 "중국·유럽연합(EU)은 미국과 FTA가 없고, 미국도 상대국과 FTA 체결을 통하기엔 시간이 너무 걸리는 측면 있다"며 "미국이 FTA 말고도 다른 것도 고려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더욱이 미 에너지부(DOE)가 '민감국가 및 기타 지정국가 목록'(SCL) 최하위 범주(기타 지정국가)에 한국을 포함하면서 향후 미국과 풀어야 할 현안 과제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입니다. 국내 정치적 불확실성이 여전한 상황에서 미국과의 각종 협상 시 수세에 몰릴 것이라는 우려가 적지 않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4일(현지시간) 미 워싱턴DC 법무부에서 연설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탄핵 정국 장기화에 무너지는 '내수'
나라 밖에선 트럼프발 관세 전쟁이 갈수록 격화하는 가운데, 나라 안에선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탄핵 정국이 장기화하면서 내수 침체의 시름도 깊어지고 있습니다. 국내 정치적 불확실성 등으로 소비 위축 등 내수가 고꾸라지는 점은 연초부터 뒷걸음질한 주요 경제지표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통계청의 '1월 산업활동동향'을 보면 생산·소비·투자 등 경제활동 세 축은 2개월 만에 '트리플 감소'를 기록했습니다. 전산업 생산은 전달보다 2.7% 감소하면서 코로나19 팬데믹 당시인 2020년 2월(-2.9%) 이후 4년11개월 만에 가장 큰 폭으로 줄었고, 소매 판매도 0.6% 감소했습니다. 설비 투자와 건설 투자 역시 각각 14.2%, 4.3% 떨어졌습니다. 우리 경제의 버팀목 역할을 했던 수출마저 전년 동기 대비 감소하며 15개월 연속 증가세가 꺾였습니다. 지난달 조업일수 증가 등의 영향으로 전년보다 1% 증가하며 반등했지만, 일평균 수출액으로 보면 23억9000만달러로 5.9% 역성장했습니다.
경기 부진 우려가 커지면서 국내외 주요 기관들은 일제히 1%대 저성장을 경고하고 나섰습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전날 '중간 경제전망' 보고서를 통해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1.5%로 제시했습니다. 직전인 지난해 12월 전망치(2.1%)보다 0.6%포인트나 낮춰 잡았습니다. OECD의 성장률 전망치는 한국은행(1.5%)과 같지만 정부(1.8%), 한국개발연구원(KDI·1.6%)보다는 낮습니다. 이 같은 진단은 글로벌 관세 전쟁 우려로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 성장률을 상당폭 깎은 것으로 풀이됩니다.
양준모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대통령 탄핵으로 의사결정이 어려운 국정 마비 사태가 수개월 동안 이어지게 되면서 한국 경제의 불확실성이 크게 높아졌다"며 "미국 트럼프 정부가 무역과 국제관계에 엄청난 변화를 야기하고 있는데, 정부 간 상호 이익을 조율할 대통령 역할이 부재하면서 경제 불확실성이 더욱 확대된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박진아 기자 toyouja@etomato.com
유지웅 기자 wiseman@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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