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효진 기자] 가맹점 수수료 인하 등으로 업황 악화에 시름하고 있는 카드사들은 데이터 사업에 힘을 쏟고 있습니다. 카드사 내 누적된 소비 데이터를 수익원으로 활용하겠다는 구상인데요. 빅데이터라는 개념이 도입된지 10여년이 지났지만 카드사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미미한 상태입니다. 카드사의 가맹점 수수료 협상력을 키울 수 있는 제도 개선을 병행하면서 데이터 활용을 위한 규제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데이터 사업 매출 비중 1% 미만
29일 금융보안원에 따르면 금융데이터거래소에 등록된 데이터 상품은 이날 기준 총 8439개입니다. 이 중 신한·삼성·현대·KB·롯데·우리·하나·NH농협·비씨카드 등 9개 카드사가 등록한 상품은 7520개로, 전체의 88%에 달합니다. 금융데이터거래소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운영 중인 금융 분야 데이터 거래소입니다.
신한카드는 데이터 사업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곳 중 하나입니다. 지난 2013년 카드사 최초로 빅데이터 센터를 설립한 이후 지난해 7월 금융당국으로부터 민간기업 최초로 데이터전문기관으로 지정받았습니다. 지난 27일에는 롯데쇼핑·호텔롯데와 데이터 기반 사업을 위해 다자간 업무협약을 체결하기도 했습니다.
현대카드는 지난달 국내 금융사 최초로 인공지능(AI) 소프트웨어 수출에 성공했는데요. 일본의 3대 신용카드사 중 한 곳인 스미토모미쓰이카드(SMCC)에 데이터 분석 기술인 '유니버스'를 공급합니다.
이 밖에도 대부분의 카드사들은 지난 2019년을 시작으로 소비 데이터를 가공한 디지털 사업에 사활을 걸고 있습니다. 본업인 신용판매업에서 수익을 내는 데 한계에 부딪혔기 때문입니다.
금융당국은 지난 2012년 여신전문금융업법을 개정하고, 3년마다 신용카드 가맹점 수수료 적격비용을 재산정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산정된 적격비용을 기반으로 카드 수수료율을 개편하는 방식입니다. 지금까지 네 차례 적격비용 재산정이 이뤄졌지만 여태껏 수수료를 인상한 사례는 단 한 번도 없습니다. 덩달아 카드사 전체 수익에서 가맹점수수료가 차지하는 비중도 추락 중입니다.
문제는 카드사의 먹거리라고 부르기에는 성과가 미진하다는 점입니다. 지난해 카드사들이 데이터 사업으로 벌어들인 돈은 각 사별 100억원 안팎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신한·삼성·현대·KB·롯데·우리·하나·비씨카드 등 8개 전업카드사의 지난해 말 가맹점수수료 수익 평균이 1조127억원인 점을 고려하면 대안이 되기엔 턱없이 부족합니다.
카드업계 관계자는 "카드사는 고객이 한 곳에서 결제한 내역뿐만 아니라 2차, 3차 매출까지 분석해 폭넓은 소비 데이터를 구축할 수 있다"며 "큰 재산인 고객 데이터를 바탕으로 마케팅 시장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는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데이터 사업은 어디까지나 부업일 뿐 신용판매업이 구심점이라는 사실은 변함없다"고 못 박았습니다.
지난해 각 사별 데이터 사업 수입은 100억원 안팎인 것으로 알려졌다. 전업카드사 8곳이 지난해 말 벌어들인 가맹점수수료 수익 평균의 1%도 채 되지 않는다.(사진=뉴스토마토)
카드사 수수료 협상력 키워야
적격비용 재산정 시기가 다시 돌아오면서 카드업계는 촉각을 세우고 있습니다. 현재 금융당국은 회계법인을 통해 적격비용 산출 용역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금융위원회는 분석 결과가 나오는 대로 적격비용 재산정을 시행해 다음 달 중으로 내년 카드 수수료율을 결정할 예정입니다.
당국이 논의하는 방향을 보면 수수료율 인하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김소영 금융위 부위원장은 지난 8월 열린 카드수수료 적격비용 제도개선 태스크포스(TF) 회의에서 "신용카드의 고비용 구조로 이해관계자 간 비용분담에 대한 갈등이 지속되는 문제 제기가 있다"며 "고비용 구조 개선을 통한 이해관계자 비용 부담 절감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카드사노동조합협의회는 수수료율 추가 인하시 총파업을 불사하겠다고 맞서고 있습니다. 지난 9월에도 가맹점수수료 적격비용제도 폐기를 촉구하며 정부 서울청사 앞에서 집회를 열기도 했습니다. 카드사들이 금융당국과 여론의 눈치에 수수료율 합리화를 주장하지 못하는 가운데 카드사 노조가 회사를 대신해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입니다.
정종우 카드사노동조합협의회장은 "당국이 수수료율 인하에 따른 당근책으로 각종 규제 완화를 내놓기는 하지만 카드사 본업인 지불 결제 시장에서 효용성이 올라가는 조치는 아니"라며 "카드사는 지불 결제 시장에서 역할이 가장 중요하므로 다시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적격비용 재산정 제도의 폐기가 필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가맹점 협상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의무수납제 폐지 등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옵니다. 의무수납제는 여신전문금융업법 제19조 1항에 근거해 신용카드 가맹점이 고객의 카드 결제를 거부할 수 없도록 한 제도입니다.
윤성중 동국대 교수는 지난 21일 열린 2024 신용카드학회 콘퍼런스에서 "현실적으로 우대가맹점에 포함되지 않은 가맹점의 가맹점수수료가 우대가맹점의 가맹점수수료를 보전하는 측면이 있다"며 "의무수납제를 폐지하고, 시장 중심으로 거래구조를 개선함으로써 가맹점의 협상력을 증진시키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카드사 노조가 지난 9월 9일 정부 서울청사 앞에서 카드 수수료 추가인하 즉시중단과 주기적 적격비용 재산정 폐기를 촉구하며 기자회견을 열었다.(사진=뉴스토마토)
이효진 기자 dawnj789@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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