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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시대는 새로운 가족의 탄생을 바란다
2023-06-01 06:00:00 2023-06-01 06:00:00
고독한 죽음이 늘어나고 있다. 지난 5월 18일 보건복지부는 2027년까지 고독사를 20% 감축하겠다며, ‘고독사 예방 기본계획’을 발표했다. 불과 몇 년 전까지 상상하지도 못했던 사회적 문제로 외로움이 대두되고 있고, 우리 사회의 미래를 암울하게 만드는 주된 이유 중 하나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는 이야기이다. 영국에서는 2018년 외로움 담당 부처를 지정하고 담당 부처의 장을 ‘외로움 장관’으로 지정했다.
 
우리 사회가 고독한 사회로 변화하는 것은 세계최저의 출산율과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인구 고령화를 생각해 보면 어쩌면 당연한 수순일지 모른다. 그러나, 아쉽게도 아직 우리사회의 문화적, 관습적, 제도적 체제는 당면한 현실과는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듯하다. 
 
몇 해 전 아랫배에 심한 통증으로 병원에 실려 간 적이 있다. 응급실 진단 결과 급성 맹장염이었고, 의사는 당장 수술을 해야 한다고 알려왔다. 그런데, 문제가 엉뚱한 곳에서 발생했다. 1인 가족이라 하더라도 친족의 수술 동의서 없이는 수술이 불가능하다는 병원 측의 요구 때문이었다. 결국 먼 지방에 있는 가족이 단지 수술 동의서에 사인을 하기 위해 이동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발생했다. 2021년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1인가구는 전체 인구의 33.4%에 이를 정도로 폭증하고 있는데도 제도는 여전히 관습적 관계성에 기반을 둔 가족 중심에 모든 기준이 있는 것이다.
 
몇 해 전 방송에서는 이런 이야기도 있었다. 수십 년간 혼인신고를 하지 않은 채 사실혼 관계에 있던 부부 중 한쪽이 사망했는데, 서류상 가족이 아니라는 이유로 시신이 인계되지 못하고, 고인은 무연고자로 처리되어 무연고자 집단 보관소에 방치되어 있다는 사연이었다. 결국 죽어서도 혈연중심 혹은 성애적 관계 기반의 가족이라는 개념으로 인해 법체제 안에서 제대로 된 존엄조차 보호 받지 못하고 방치된다는 것이다. 1인 가구의 인권은 전통적 개념의 가족 중심의 제도적 기반의 사회구조로 인해 모든 면에서 비정상이 되는 것이다.
 
우리가 1인가구라고 하면 흔히 20, 30대의 젊은 층을 떠올리기가 쉽다. 하지만, 인구학적으로 가장 많은 1인 가구는 노인층이고 그 중에서도 여성 노인층이 제일 많다. 수명연장으로 인해 당연히 벌어질 수밖에 없는 우리의 현실인 것이다.
 
우리가 과거의 가족 개념에 집착하고 있는 동안 대두 되고 있는 불안한 중년 독신과 빈곤한 독거 노인 등의 문제는 사회복지 수혜를 받는 기회에서 조차 외면되거나 차별의 대상이 된다. 이는 결국 현재 심각한 노인 자살율 증가가 연계되어 있기도 하다.
 
잘 알다시피 프랑스에서는 1999년 PACS 라는 동거 인정 제도를 실행하고 있다. PACS(Pacte civil de solidarite)를 단어 그대로 번역하면 '시민 연대 계약'정도로 풀이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제도의 핵심은 각 사회 구성원인 개별 시민들이, 결혼 중심의 기존 관습 개념의 가족 관계를 벗어나서, 함께 삶을 공유하고 공동체를 이루고 있다면 이들 또한 기존의 결혼 기반의 가족 단위의 사회 구성원들과 마찬가지로 각종 법적 지위와 사회 혜택을 동일하게 보장하는 제도이다. 
 
실제로 프랑스는 PACS 제도가 정착한 이후 고질적이던 저 출산율 개선 등의 여러 긍정적 변화를 있다고 진단하고 있다. 고도의 산업화와 선진화가 진행된 국가들의 가장 큰 두 가지 문제가 출생률 저하와 인구 고령화 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출생율과 관련해 가장 큰 원인으로 주거권이 꼽힌다. 또, 고령화 사회로의 진입이 불러온 가장 크게 문제로 돌봄 문제가 제기된다. 이 두 문제의 해결을 위해 매번 각 정권은 어마마한 예산과 공적 자원을 쏟아 붙고 있지만, 그 효과는 미미하다.
 
특히 기존 가족체제가 해체되는 현대에 이르러 노인을 비롯한 유아, 장애인에 대한 돌봄의 문제는 사회적 비용을 비롯해서 여러모로 우리가 해결해야 할 당면 과제가 되고 있다.
 
막대한 예산을 투입한 시설증설과 돌봄 인력 지원에만 매달릴 것이 아니라, 실제적 현실에 맞는 동거인에 대한 법적 지위 보장 같은 발상의 전환을 해 보는 것은 어떨까.
 
사회구조 변화에 따른 개인의 고립과 단절의 심화는 이미 진행형이고, 존엄한 죽음조차 보장 받지 못하는 고독사까지 사회적 문제가 되는 현재, 과연, 이성간의 성적 관계를 기본 개념으로한 가족이 더 이상 가장 유용한 개념이 될 수 있을까.
 
현실의 문제를 제도가 앞지르면 가장 좋은 예방책이 되겠지만, 적어도 현실의 변화를 반영하는 제도적 기반의 구축은 당연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좀 더 진지하고 열린 태도로 각 시민들의 다양한 형태의 가족 구성을 위한 제도적 정비가 절실하다.
 
박창진 바른선거시민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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