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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계 증권사 단타 놀이터 전락한 스팩
변동성 올라탄 외국계…당일매매로 거래량 15% 가져가
시장감시 '무용지물'…투자주의 지정에도 이어진 단타
스팩, 주가조작에 취약…"스팩 상장 제한 필요성도"
2023-05-24 06:00:00 2023-05-24 06:00:00
[뉴스토마토 박준형·신대성 기자] 비상장기업과의 합병을 목적으로 상장된 기업인수목적회사 스팩(SPAC)이 해외 증권사 및 기관투자자들의 단타 놀이터로 전락했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페이퍼컴퍼니인 스팩은 다른 회사와 합병하는 것을 유일한 사업목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다만 시장에선 스팩이 당초 취지와 다르게 이용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전문가들도 특별한 상장제한이 없는 국내 스팩 제도가 고질적인 문제를 만들었다고 평가하는 만큼 제도 개선이 필요해 보입니다. 
 
스팩 변동성 키운JP모건,  거래량 15% '단타매매' 
 
24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JP모건은 지난 22일 한국제10호스팩(409570) 지분 5.49%(29만7128주)를 보유하고 있다고 공시했습니다. 한국제10호스팩은 비상장사 크라우드웍스와의 합병이 결정되면서 지난해 12월 거래가 정지됐던 종목입니다. 지난 4월 거래소의 예비심사가 종료되면서 거래가 재개됐죠. 
 
한국제10호스팩은 인공지능(AI) 학습 데이터 플랫폼 기업 크라우드웍스와의 합병소식에 주가 변동폭이 극심해졌습니다. 거래재개 첫날 2945원에 한국제10호는 상한가(29.03%)를 기록하며 3800원까지 상승했으나, 이내 마이너스 9.51%까지 떨어졌습니다. 종가는 시초가 대비 5.26% 하락한 2790원. 이날 한국제10호 고점과 저점의 변동폭은 42.59%에 달합니다.
 
변동성을 좇는 투자자들이 한국제10호에 몰린 가운데 외국계 증권사 JP모건도 변동성을 쫒았습니다. JP모건은 지난 16일 한국제10호 주식 19만427주를 매수했는데요. 주가가 100원(3.55%) 가량 오르자 일부 주식을 즉시 매도했습니다. 주가가 다시 매수가로 내려가면 또다시 주식을 매수하며 ‘데이트레이딩’을 했습니다.
 
이날 하루 한국제10호의 고점대비 저점 변동폭은 22.94%인데요. JP모건의 매수·매도 물량은 50만687주 이날 전체 거래량(337만8490주)의 14.82%에 달합니다. 사실상 JP모건이 변동폭을 키운 거죠. 실제 한국거래소는 이날 한국제10호를 단일계좌(JP모건) 거래량 상위종목으로 투자주의 종목에 지정했습니다. 16일부터 18일까지 JP모건은 한국제10호 주식을 9차례에 걸쳐 매매했습니다. 
 
JP모건은 한국제10호 외에도 지난달 19~20일 양일간 유안타제8호스팩(367480) 주식 매수·매도를 8차례에 걸쳐 반복했고, 19~20일 단일계좌(JP모건) 거래량 상위종목으로 투자주의 종목에 지정됐습니다. 이밖에도 지난해 합병상장한 화인써키트(127980)(신영해피투모로우6호스팩), 비스토스(419540)(SK5호스팩), 라이콤(388790)(IBK제16호스팩), 메쎄이상(408920)(SK ACPC 제7호스팩) 등에서 ‘데이트레이딩’을 반복했습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증권사가 세력? 주가조작 취약한 스팩
 
업계에서는 외국계 증권사의 스팩 단타매매는 국내 스팩 제도의 구조적 문제점에 있다고 지적합니다. 다른 회사와의 합병이 유일한 사업목적인 스팩은 기본적으로 주가 조작에 취약한 구조입니다.  
 
스팩은 중소기업들의 주식시장 진입 문턱을 낮춰 원활한 자금조달을 돕기 위한 제도입니다. 기업공개(IPO) 흥행이 필요한 기업들이라면 굳이 자금조달 규모가 적은 스팩합병을 선택할 이유가 없습니다. 결국 IPO를 통한 자금조달이 쉽지 않은 기업의 차선책이라고 볼 수 있죠.
 
때문에 스팩의 규모도 작아질 수밖에 없는데요. 국내 증시에서 스팩은 시가총액이 보통 100억~200억원 수준입니다. 하루 거래량이 몇백만주조차 안되는 곳들도 많죠. 게다가 현재는 공매도조차 되지 않습니다. 특정세력이나 증권사 등이 적은 거래량만 일으켜도 변동폭이 커지게 됩니다.
 
스팩은 특별히 영위하고 있는 사업 없이 인수합병(M&A)만을 목표로 하는 만큼 기본적으로 투자자들이 알 수 있는 정보도 제한적입니다. 투자자들이 참고할 수 있는 것은 스팩의 초기 자본금을 대고, 스팩의 경영진으로 합병대상을 발굴하는 발기인의 과거 평판이나 M&A 레퍼런스 등에 불과합니다. 때문에 ‘어떤 기업과 상장한다더라’라는 단순 ‘하더라’식 소문에도 주가가 크게 움직이곤 합니다.
 
십수년째 제자리걸음 "스팩 상장 제한 필요성도"
 
스팩의 ‘정보불균형’과 주가조작에 취약한 구조에 대한 지적은 수십년째 이어지고 있습니다. 국내에 스팩 제도가 도입된 2009년 이후 △묻지마 스팩 투자, △스팩 폭탄돌리기, △스팩 과열 등은 투자업계 및 언론에서 꾸준히 지적해왔던 사안입니다.
 
전문가들은 특별한 규제 없이 스팩 상장이 가능한 점이 이같은 문제를 키웠다고 지적합니다. 스팩의 경우 일반적인 기업공개(IPO)와 다르게 증권사가 가져가는 수수료가 많기 때문에 증권사들도 상장에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지난해 상장한 스팩수만 총 45개에 달하며, 증권사별로 최대 5개의 스팩을 상장시켰습니다.
 
피합병대상을 찾기 힘든 대형 스팩 상장이 줄어들자 공모규모를 줄인 소규모 스팩 상장 수가 늘어난 거죠. 실제 2010년에는 3개의 유가증권 스팩이 상장했지만, 이후로는 전무합니다. 2010년 900억원(대우증권스팩) 규모에 달하던 스팩 공모 규모는 2023년 100억원 수준으로 줄었습니다.
 
소규모 스팩이 무분별하게 상장하면서 증권사들의 관리 책임도 희석됐습니다. 증권사별로 최대 5개의 스팩을 상장시키면서 합병대상을 찾기 위한 노력도 분산되고 있다는 겁니다. 
 
IB업계 한 관계자는 “스팩의 경우 합병이 성사되지 않더라도 투자자들에게 원금이 상환되는 만큼 소규모에 다수 상장하는 현재 스팩 시장 구조에선 특정세력들에게 휘둘리기 쉬울 수밖에 없다”면서 “발기인 선정 특혜 논란 등 각종 부작용도 있는 만큼 증권사들의 스팩 상장에 일정부분 제한이 필요할 것 같다”고 밝혔습니다. 
 
박준형 기자 dodwo90@etomato.com
신대성 기자 ston9477@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증권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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